써지지 않는다
작년 가을 다녀온 조지아 여행을 회고하는 글을 쓰고 있다.
수천 권의 책을 읽으며, 사람에게 첫인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글의 첫 문장, 첫 문단, 그리고 첫 장임을 배웠기에 첫 페이지를 쓰는데만 장장 일주일을 보냈고, 그 자체로 완벽해 보이는 첫 페이지를 완성했다. (몇 번이고 뒤엎을 게 뻔하지만 일단은 그렇다.)
그렇게 두 번째 장을 쓰다가, 문단 사이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는 나' 부분에서 막혔다.
11월 1일, 카즈베기 산골에서 잃어버린 시간의 흐름을 다루는 두 번째 장은 기억이 혼재돼 혼란스러워하는 나의 모습을 그리는 동시에, 마을 주민과 여행자의 대비를 드러내는, 여행자로서의 나를 자각하는 중요한 장이다.
'더욱이 나는 내가 맞이한 것이 오늘의 아침인가 내일의 아침인가 알 수 없게 된다.'와
'마을은 고요하고 인적은 드물다.'
사이에 침대에서 누워 빈둥거리던 내가 떠올린 생각들을 묘사하려 하는데, 점심 먹기 전 10분 동안 고민했던 문장을 돌아와서 30분 동안 들여다봐도 표현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고, 이후 수업을 마친 후 3시에서 4시까지 앉아 수십 번도 더 문장을 고쳤지만 축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절묘하게 그려낼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천장을 날아다니는 파리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좌표계를 고안했다는 데카르트의 일화를 들며, 그의 공간적 지각력에 비해 시간에 대한 나의 의견은 보잘것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목표인데, '축'이라는 단어를 들어 좌표계의 상을 빌림과 동시에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담자 하니 문장이 길어질뿐더러 맛이 없어지고, 그렇다고 짧게 쓰자니 너무도 불친절한 문장이 되어버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도무지 나의 한심함과 세상에 대한 무용함을 한 두 문장 내에 담아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후, 숨을 돌릴 겸 공부를 했고, 그럼에도 미완성된 문장이 아른거려 글로 그 초조함을 토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상 요즘의 브런치는 도피처라 봐도 무방한 게 오늘처럼 글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진즉 생각해 놓았던 주제들에 대한 글을 써가며, 작은 만족을 얻는다. 그럼에도 원하는 문장을 완벽하게 표현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너무도 중독적이라 불가능을 좇고야 마는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타임카드를 찍듯이 하루에 거의 정확하게 20매를 쓰는" 하루키보다는 "하루 400에서 700 단어를 쓰기 위해 연필 7자루를 2번 깎아 쓰는" 헤밍웨이에 가깝다.
하루키의 몽환적인 문체와 헤세의 사색, 그리고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함을 지향하는 (지향만 하고 있다. 일단은) 내게 대문호들이 알려주는 법은, 사실 알려줄 것도 없이 알고 있는 방법은 그저 쓰는 것.
작가가 할 일이라고는 타이프라이터에 앉아 피를 흘리는 것뿐이라던 헤밍웨이의 말마따나
All you do is sit down at a typewriter and bleed
앉아서 닥치고 써야겠다.
허연 천장이 나를 내려다 보고, 내 앞의 종이 역시 허옇다.
내 머릿속 같이 허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