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Sep 09. 2024

미친 짓 연대기: 맥주 5L부터 강도까지

Travel Resume

 뉴칼레도니아:  8세, 동생과 바다뱀 굴을 막대로 들쑤시기

- 가이드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해안가의 뱀굴을 막대로 들쑤셨다. 동생이 먼저 했다. 수십 마리의 뱀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그 즈음의 나는 은은하게 돌아있었고, 동생 놈은. 음. 그냥 미쳐있었다. 호기심으로 포장하기 어려운 광기 정도로 하자.



 타히티:  9세, 상어와 수영하고, 모르는 외국인 50명 앞에서 전통 춤을 추기

- 상어와 수영했다. 사람을 먹지는 않는다니 안전이야 했겠지만, 동생 녀석이 계속 상어와 가오리 등에 올라타려고 유난을 떨었던 건 똑똑히 기억한다. 춤은 반은 등 떠밀려, 반은 추고 싶어, 호텔 레스토랑 공연에 난입했다. 신나게 흔들어 재꼈다. 끝나고 박수세례는 덤.


 미국:  11세, 탄피 반입 후 공항경찰한테 끌려가기

- 초등학교 6학년, 범죄학 프로그램을 들은 후, 총알을 기념품으로 주겠다던 교수의 제안을 거절하고 탄피만 받는 기지를 발휘. 그럼에도 잡혔다. 배터리가 든 전자사전을 위탁으로 부친 게 문제인 줄 알았으나 탄피가 문제였다.


밖에서 기다리던 부모님이 끌려오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탄피는 반입 가능한 것으로 법이 바뀌었으니 나의 논리가 틀리진 않았다. 천재는 늘 시대를 앞서간다. 나는 악필이지만 천재는 아니다.


 튀르키예:  12세, 첫 그리고 아직까지는 마지막 식중독

- 물을 잘못 마셨던 것 같다. 어디 동굴 안에서 식사하는 프로그램이 괴레메 근처에서 있었는데, 화장실 물을 그냥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두 발자국 나가서 식탁에서 마시지. 그걸 못 참고…하루이틀 고생했다.


나의 장은 거뜬해 군에서 치킨을 먹은 부대원 24명이 복통 및 설사로 고생했을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튀르키예에서 자처한 식중독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탈이 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내년에 인도에서 확인해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중국:  13세, 천문산999 계단 뛰어올라가기

- 이건 동생과 내기를 해 먼저 뛰어올라가는 사람이 이긴다나? 대가도 없었다. 난 끝까지 뛰어올라갔다. 동생은 중간에 낙오했다. 형한테 덤비면 좋은 꼴 못 본다. 물론 이긴 형도 얻은 건 없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유리잔도를 걷는데 무서워하는 것 같아 볼썽사나웠다.


 대만:  19세, 일일 53500보

- 다사다난한 날. 친구가 여권을 비행기에 놓고 내려 교통편 끊긴 오밤중에 숙소까지 1시간 30분 걸어간 것을 시작으로, 중간에 24/7 우육면집 냄새가 너무 자극적이라 또 왕복 1시간 거리를 걸어 우육면을 먹고 왔다. 5시에 자서 6시 30분에 일어난 후 하루죙일 걸어 다녔다.


 일본:  19세, 지진

졸업 기념 여행으로 친구들과 도쿄에 놀러갔다 지진이 났다. 이미 깨먹었던 휴대폰 액정이 살짝 더 깨졌고, 별의별 호들갑을 다 떨었던 창피한 기억이 선명한데, 결국 지진이고 나발이고 술 마시고 다 뻗었고, 비싼 숙취해소제를 너무 많이 사 구박을 들었다는 게 결말.


 스페인:  이ㅆ십세, 소매치기한테 가방 열어주기

- 지하철에서 가방이 의심스럽다길래 가방을 열어 보여줬는데, 웬걸 집시. 소매치기였다. 돈은 더 안쪽에 있어 털어갈 것도 없었지만, 나중에 상황을 곰곰이 되새긴 친구 왈 소매치기였다고...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 욕먹어도 싸다 이건. 미안하다.



 벨기에:  20세, 투모로우랜드 페스티벌

- 2020년 졸업 여행으로 기획한 페스티벌 참가가 코로나19로 취소됐고, 티켓이 우연찮게 22년으로 밀려, 핑계 삼아 첫 유럽배낭여행 겸 떠났다.


첫날, 맨 앞까지 가서 8~9시간 동안 어떻게 뛰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돈 주고 하래도 못한다. 뒤에서 게이 한 명이 계속 친구에게 비벼대려 하고 추근대길래 친구가 주변 여자들한테 SOS를 쳐 상황을 모면했던 기억이 있다. 웃어서 미안하다.


 에콰도르:  21세, 사자와 수영하고, 피 흐르는 뒤꿈치로 자고 있는 상어 밟기

- 키커락에서 바다사자와 교감한 경험은 - 비록 망치상어를 보지 못해 다시 와야겠다 다짐했지만 -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남아있다.


다음 날 다른 투어를 하며, 돌부리에 뒤꿈치를 크게 베였다. 시야가 1미터도 안 되는 물속에서 수영하다 돌인 줄 알고 밟은 게 자고 있는 상어였다... 나는 맛이 없어서 먹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당시에는 아찔했다. 물속에서 내가 그리 빨랐던 적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나는 5분 후 다시 물에 들어갔다...


 코스타리카:  21세, 첫 히치하이킹

- 4인승 차에 8~9명이 탄 건 넘어가고, 포아스 화산 보러 갔다 오는 길에 택시가 없어 히치하이킹을 했다. 또 다른 날에는 폭포 찾아 차도를 3시간 걸어가다 치일 뻔했다.


 바하마:  21세, 물 없이 걷다 쓰러질 뻔함

- 35도, 70%의 습도, 태양이 작열하는 바하마의 길을 걷다 물통을 숙소에 놔두고 왔음을 깨달았다. 이미 30분이나 걸었는데 다시 돌아가긴 싫어서 계속 걷다 쓰러질 뻔했다.


인심 좋은 아저씨가 차머리를 다시 돌려 나를 태우러 왔고, 덕분에 살았다. 친척 결혼식에 가신다는데 그런 결혼식 몇 분 늦어도 뭐라 할 사람 없다는 그분, 크으, 뒤에 광채가 비치는데, 멋있었다.


 니카라과:  21세, 첫 치킨 버스

- 셋이 앉아가야 할 자리에 다섯이 앉아가니 고역이었다.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1시간 30분 거리를 3시간 걸려 갔다. 은근슬쩍 아이 둘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는 두 명의 아주머니가 매우 성가셨다. 어쩌겠는가... 이내 두 분 모두 잠에 빠져 기대기 시작했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저 차창 밖을 바라보며 영겁 같은 시간을 버텨냈다.



 도미니카 공화국:  21세, PADI 스쿠버다이빙 자격증 취득

- 숙소를 잘못 잡아 잠을 못 잤고, 피곤한 상태로 다이빙을 하니 계속 코피가 터졌다. 지역 축제를 에어비앤비 바로 뒤에서 새벽 4시까지 하길래 결국 마지막 날에는 포기하고 가서 축제를 즐겼다.


참는 건 이류고, 웃는 자가 일류라는데, 헛웃음도 쳐주는지는 모르겠다.



 과테말라:  21세, 활화산 옆에서 하룻밤 보내기

- 생각보다 대단한 건 없고, 과테말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카테낭고 트랙킹을 다녀왔다. 고산병 온 친구의 가방을 짊어지고 올라가다 나도 중간에 다리 근육 경련이 왔다.


내려갈 때는 르세라핌 앨범을 틀고 미친 듯이 하늘다람쥐마냥 날아다녔다. "저 미친놈 뭐지?" 할 순간에 모두를 지나쳐 갔기에 '어글리 코리안'을 눈치챈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라 희망해 본다. 괜히 르세라핌한테 미안하다.



 체코:  21세, 맥주 5L 마시기, 비어 스파

- 빠니보틀 채널이었나, 여하튼 유튜브에서 프라하에 가면 맥주로 스파를 할 수 있다길래 냉큼 다녀왔다. 맥주가 무제한으로 주어지길래 12잔인가 13잔 마시고 이후 다시 또 다른 식당에 가 코젤을 2잔 더 마시고 숙소에 돌아와 뻗었다. 주량은 컨디션 따라 다르지만 4병까지는 들어간다.


 잉글랜드:  21세, 옥스퍼드에서 여름학기

- 프랑스 비자 문제로 미국에 귀국하느라 며칠 못 있었지만, 영국 음식의 맛은 안 좋은 쪽으로 강렬해 기억에 남았다.


 스코틀랜드:  21세,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 고등학교 동창 보러 스코틀랜드 갔다 실컷 웃고 왔다.



 독일:  21세, 옥토버페스트

- 여름에 처음으로 옥토버페스트를 접하고 독일 라거의 묵직한 매력에 반해, 뮌헨에 교환 가있던 초중학교 동창도 볼 겸 옥토버페스트에 다녀왔다. 짧은 시간에 많이 마시고 뻗어 헛소리하며 친구 기숙사로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뮌헨에 살면 행복하지만 짧게 사다 갈 것만 같다. 사인은 알코올 중독 또는 간경화려나. 사진은 놀이기구 타면서 찍었다. 미친 짓 (2)


 루마니아:  21-22세, 생일 공항에서 노숙하기

- 생일인 걸 까먹고 있다 투어 후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같이 다닌 친구가 너는 생일이 언제냐 묻길래, "어? 내일인데?"라고 답했다. 그렇게 생일을 맞아 공항에서 일어났다. 괜히 의식하니 벽 뒤의 바퀴벌레마냥 기분이 찜찜했다.


이제 몇 밤만 더 보내면 공항에서 보낸 밤도 어언 한 달이 넘어간다.



 이탈리아:  22세, 새벽 4시 역 가다 칼 든 강도한테 쫓기기

- 미친 짓 탑. 글감이 나왔으니 한 잔 하자기에는 인생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혼자 여행할 때는 이제 10시 이후로는 안 돌아다닌다.


 세르비아:  22세, 2일 간 빵 2조각으로 버티기

- 돈이 없었다. 빌어먹을 항공사에서 일정 변경을 수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00유로를 뜯어가 빵 2조각으로 이틀 버텼다.


 이집트:  22세, 경찰한테 삥 뜯김

- 외국인은 우버에 타면 안 된다는 황당한 이유 아래 삥을 뜯겼다. 법이 정말 그렇다면, 돈을 왜 뒷주머니에 쓰윽 넣었는지 물어보고 싶고, 법이 정말 그렇다면 - 5,000원 정도였지만 - 선진국이 못 되는 나라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반성해라.



 슬로베니아:  22세, 20시간 동안 기차 타기, 동굴 기차 타기

- 야간열차에 대한 쓸데없는 로망이 있었다. 기차 30분 거리의 룩셈부르크에서 직항을 타고 수도 류블랴나로 들어가면 될 것을 굳이 굳이 기차를 타고 갔다. 메스에서 스트라스부르, 바젤 거쳐 취리히까지, 취리히에서 류블랴나까지, 그리고 류블랴나에서 포스토이나까지. 이후 동굴에서 기차를 타는 색다른 경험도 하고 다시 포스토이나에서 류블랴나까지.


이틀 동안 20시간 넘는 시간을 기차에서 보냈다. 정작 기억에 남는 건 데이터가 안 터져 과제를 못 제출해, 류블랴나 국립 도서관 주위를 1시간 동안 돌면서 끊겼다 잡히는 와이파이에 분통을 터뜨렸던 일이다.



 스위스:  22세, 얼어있는 빙하호에서 수영하기 + 낙석 피해 도망 다니기

- 혈관 속 적혈구 하나하나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었다. 강력하게 비추천한다. 친구들 앞에서 체면 세운다고 혼자 1분 동안 들어가 있었지만, 들어왔다 나간 친구들아, 너네가 비록 가오는 안 살아도 현명했어.


이후 폭포 물줄기에 몸을 한 번 더 맡겼다. 더불어, 낙석이 친구 머리 바로 밑에 떨어져, 가방을 머리 위에 올리고 등산로를 뛰어다녔다.



 호주:  22세, 첫 서핑

- 새로운 취미를 찾는 건 늘 설레는 일이다. 울산에서, 그리고 엘살바도르에서 한 번씩 더 했고, 멕시코, 페루에서 연내 두 번은 더하지 않을까?


허니문으로 타히티에 돌아가기 전까지 실력을 충분히 갈고닦을 필요가 있지만, 우선 파트너부터 먼저 찾아야 함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혼자 칸쿤, 몰디브까지는 몰라도 (이미 글렀다. 텄다. 텄어.) 타히티는 제발 혼자 가지 말자 제발...



 그리스:  22세, 3일 11일 기로스

- 같이 동행한 친구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아직도 기로스가 그립다. 5천 원에 싸이버거 두 개 정도의 양이 나오는데, 맛도 있다. 다 먹고 세보니 많긴 했다. 미안타 얘들아.




인스타그램을 들락날락하다 Travel CV (한국말로 하면 여행 이력서 즈음?) 관련 게시물이 자주 보여 나 역시 한 번 기록해 봤다. 정말 미친 짓을 많이도 했다.


아직 스카이다이빙, 윙슈트, 카이트 서핑, 히말라야 등반 등 할 게 많이 남아있으니 리스트는 길어지면 길어졌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꽉 채워서 살다 갈 거다.


밀라노에서 죽을 뻔한 이후로 1.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2. 고점에서 죽는 것 두 개가 삶의 목표다.  


여행은 계속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