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콜브
대국은 없다. 필요하면 가면도 쓰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더라도 양보도 하는 게 외교고, 협상이고, 정치일 텐데, 현실의 정치판에는 힘만 앞세우는 삼류 건달, 뒤에서 비겁하게 조종하는 흑막뿐이다. 이 판은 아름답지 못하고, 중심을 세울 수도 없다.
대리전을 벌이고, 잘못한 일은 전 정부 혹은 시대적 상황을 탓하며, 나 몰라라 방치하거나, 핵심 자원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세계대전을 경험한 세대가 사라져 가는 지금, 인류는 다시금 전쟁의 길로 나아간다. 비교적 평화로웠던 수십 년을 뒤로하고, 다극화를 지나 무극화로 향한다.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문제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국은 다툴 수밖에 없다.
어릴 때는 UN이 말하면 모든 국가가 협의해 따르고, WTO에 사건이 제소되면 합의가 이루어지는 게 국제 정치인 줄 알았다. 그러나 군에서 1,000건의 기사를 번역하며 가장 자주 접한 단어는 ‘이익(Interest)’이었다. 자선과 인정은 빵 부스러기에 불과하고, 힘의 논리에 따라 상대의 파이를 빼앗는 것이 국제 정치의 본질이겠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잡아먹어야 하고, 전쟁은 필연적으로 빈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