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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일

스탠리 피시

by 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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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쓰기의 괴로움을 모르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길을 걷다, 끼니를 준비하다, 마법처럼 번뜩 떠오르는 순간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진을 빼놓는 것이 첫 문장의 역할이 아닐까 의심마저 든다. 생각을 하다 보니 맞는 것 같아, 글을 쓰는 지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에게 첫인상이 있듯, 글에는 첫 문장이 있어, 함부로 휘갈기고 넘기기에는 자칭 작가라는 지위가 부끄러워진다. 적당한 긴장감, 거북하지 않은 신선함, 약간의 의미심장함,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첫 문장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최근에 정착한 방법은 무의식에 기댄다. 아침에 일어나 대충 글을 훑어보고, 오후나 저녁, 심지어 다음 주까지, 운에 기대어 떠오르기를 기다리다 실패하기 일쑤다. 물론, 열흘에 하루 정도는 기적 같은 문장이 선물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그 문장이 첫 문장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고로, 오늘, 개성 없고 형편없는 첫 문장, '첫 문장 쓰기의 괴로움을 모르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에 대한 양해를 구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어쩌겠는가. 다만, 오늘 내 재주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을. 죄스러워 기우는 건 고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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