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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r 21. 2023

미국 유학생의 봄 방학은?

바하마, WBC 결승, 니카라과

23. 03. 13: Day -5,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결승행에 대한 내 실낱같은 희망은 1차전 호주와의 경기에서 바로 산산조각 났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호주가 저력을 드러내며 한국을 꺾었다.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머리가 지끈거렸고, 아니나 다를까 체코가 호주에 패함으로써 대표팀은 또 탈락했다.


조 편성에서 드러나는 사무국의 노골적인 밀어주기에도 불구하고 일본전을 의식한, 그리고 호주의 전력을 과소평가한 감독의 안일함은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처참한 결과로 돌아왔다.


구도 부산에서 롯데 팬으로 태어나 자라난 나는 그렇게 한국 대표팀의 결승행에 대한 꿈을 버렸다. 운이 없었다고 믿고 싶었던 도쿄 올림픽 메달 획득 실패가 사실 실력이었다는, 외면하고픈 현실을 마주했다.


비록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이해할 수 없는 투수 운영, 실력 차, 대회 전후 끊이지 않았던 잡음 등 야구계 전반의 여러 문제점들을 노출하며 자멸했지만, 매년 롯데 우승을 상상하는 미련한 나란 인간은 WBC 결승 티켓을 일찌감치 구매했고, 봄방학을 맞아 마이애미로 떠날 요량이었다.


< 한국은 떨어졌지만 고급 선진 야구를 볼 생각에 기대가 크다. >


그런 내가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된 계기는 “밥 안 주는 거 몰랐음?”이라는 룸메 녀석의 말 한마디였다.




86,000원.


“돈을 쓸 거면 여행에 쓰자”는 모토 아래 살고 있는 내가 지난 2월 쓴 돈이다.


군 복무를 하며 모아둔 돈도 바닥을 드러내고, 여행을 위해 월 500달러가량의 용돈을 최대한 모으며 생활하는 내게 (86,000원 중 절반 가량은 라면 구입에 썼다. 봉지당 1.5 달러 수준으로, 가장 저렴하게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봄 방학 중 기숙사 식당의 폐쇄는 단 하나를 뜻했다.


“추가 지출. “


< 개밥 수준. 파스타에 쌀이 섞여 있다… >


이걸 음식이라고 주는 건지 싶었던 군대 짬밥에 비견될 맛을 자랑하지만 그래도 매일 운영되는 기숙사 식당이 봄 방학 기간 동안 폐쇄될 경우, 원치 않는 추가 지출이 불가피했다.


9일간의 폐쇄, 그리고 최소 50달러 수준으로 예상되는 하루 식비(위가 크다…)…


식비, 술값, 기타 교통비 등을 합산해 보니 600 달러 정도의 지출이 예상됐다. 돈값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살인적으로 올라버린 미국 물가를 고려했을 때, 결코 지불하고 싶지 않은 액수였고, 바로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어디로든 떠나자.


즉시 스카이스캐너에 들어가 애틀랜타발/포트로더레일발/올랜도발/마이애미발 항공편을 조회했다.


방학 시작부터 WBC 전까지를 커버하는 항공편, 그리고 이후의 기간을 커버할 항공편까지.


차순위로 희망했지만 결국 입학해 버린 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지지리도 재미없는 무색무취의 도시, 애틀랜타에 살면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중남미 행 항공편의 가격이 저렴하다는 사실이다.


가장 가까운 국가로의 왕복 티켓이 40만 원을 넘어가는 한국에 살다, 페루 왕복 티켓이 가끔 40만 원 수준의 특가에 판매되는 허브 공항이 위치한 도시로 온 이상 졸업 전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보는 것이 어떻게 봐도 합리적이었고, 다행히 아직 저렴한 항공편이 많이 남아있었다.


스카이스캐너 어디든지 옵션을 사용해 확인해 보니 갈만한 국가가 꽤 나왔다.


< 정말 싸다 >


바하마부터 엘살바도르, 푸에르토리코, 과테말라,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 자메이카, 온두라스, 아루바, 니카라과, 코스타리카까지. 총 11개 국가 및 지역으로 가는 편도 티켓이 150 달러 미만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우선, 이미 가봤거나 연내에 방문할 예정인 푸에르토리코, 과테말라, 도미니카 공화국, 코스타리카를 제외했다. 2026 월드컵을 맞아 방문할 계획인 멕시코도 제외. 향후 크루즈 투어를 생각해 바하마와 아루바까지 제외하니, 갈 생각이라고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국가들만 남아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사고 젊은 대통령 아래 갱단 단속에 주력 중인 부동의 살인율 1위 국가: 엘살바도르.


어릴 적 아프리카 변방에 박혀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던 육상 강국… 그러나 마찬가지로 살인율 5위권 내를 벗어나지를 않는 자메이카.


동일한 이유로 인해 여행하기 꺼려지는 온두라스까지…


친구 여럿과 같이 다닐 계획이라면 고려라도 해보겠으나 혼자 가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하게 느껴졌고, 부모님께도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싶어, 자연스레 니카라과로 행선지를 정하게 되었다.


찾아보니 물가도 저렴하고, 화산 투어 등 즐길거리도 적당히 있어 짧게 다녀오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 스페인어 공부 >


조용히 산행을 하고, 호수 앞에 앉아 독서를 할 생각을 하니 설렜고,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스페인어가 공용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봄 방학의 후반부를 보낼 국가를 결정했다.




살인율, 관광지, 사용 언어, 방문 경험 등을 꼼꼼히 따지며 계획한 니카라과 여행과 달리 바하마행은 다소 급작스럽게, 그리고 충동적으로 이뤄졌다.


당초 크루즈 여행에 포함될 것이라 여겨 제외했던 바하마와 아루바. 그럼에도 봄 방학 전반부를 기숙사에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아무런 기대 없이 스카이스캐너에 바하마행 항공편을 검색했다.


36달러.


처음에는 내 눈이 잘못 됐나 싶었다. 중미 국가 중 하나인 벨리즈행 항공편 가격이 통상적으로 350 달러이고 바하마행 항공편 가격도 보통 150 달러 수준이기에, 여러 공항을 경유하며 요금이 덕지덕지 붙은 항공편 중 하나, 0이 하나 빠진 항공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저가 항공사인 FRONTIER가 운행하는 항공편인 것을 보아하니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서울 부산 KTX 가격보다 저렴한 36달러. 혹여 누가 채갈까 싶어 잽싸게 비행기 편 예매를 마쳤다.


< 정말 싸다. >


모든 예약을 마친 후 잠을 청했다. 이미 지난 주말에 WBC 관련 티켓은 모두 미리 사놓았기에 크게 걱정할 만한 것은 없었고, 입국 요건 등 자잘한 일들은 내일의 내가 처리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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