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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r 23. 2023

화딱지 나는 여행 준비

니카라과 입국 서류 작성, WBC, 바하마

2023. 03. 14 ~ 03. 17, Day 0,


한국 여권의 파워를 익히 알고 있기에, 또한 황열병 예방 접종까지 이미 마쳤기에, 이번 여행이야 말로 별다른 준비 없이 떠날 수 있겠다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미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인 바하마도.

마이애미에서 개최될 WBC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직 니카라과만이 문제였다.


우선은 입국 전 제출 서류…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육로를 통해 입국하는 여행자의 경우 https://solicitudes.migob.gob.ni ​를 통해 입국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항공편을 통해 입국하는 여행자에게도 이 서류가 필요한지가 확실치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아무리 늦어도 입국 7일 전에 작성돼야 하는 서류라고 명시돼 있었기에, 필요 여부는 일단 차치하고 서류 작성을 시작했다.


< 입국 필요 서류, 말라리아는 안 적혀 있다… >


이미지를 눌러야 링크로 연결되던 에콰도르 정부 사이트는 양반이었다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만들어진, 사용자의 편의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졸속한 웹사이트였다.


가장 눈에 띄는 문제점은 그 어디에도 설명이 없다는 점이었다. 스페인어로 찾아보지 않아서 안 나왔을 수도 있겠지만, 절차에 대한 설명이 적힌 페이지가 전무했다. 설명은 없더라도 간단히 기재해야 하는 정보를 알려주는 창 정도는 띄워줘야 할 것 아닌가. 그 무엇도 없었다.


< 레지던스 넘버와 버튼들 >


첫 페이지에서 바로 문제에 봉착했다. Residence No. 와 Date of Issuance of Residence를 요구했는데, 우편번호를 요구하는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주거 번호라는 게 발급된 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검색을 해도 정보가 나올 리 만무했다. 결국, 임의로 우편 번호를 적어놓고, 일자도 내 마음대로 기숙사 입소일을 입력한 후 비자 소지 여부를 묻는 Do You Have A Valid Visa? 버튼을 눌렸다.


클릭되지 않는 버튼… 내가 뭔가를 잘못했나 싶어 사이트에 재접속한 후 정보 입력을 두 번 더했다. 그렇게 찾아낸 이유.


개발자가 누군지는 몰라도, 윗 칸을 먼저 채우면, 버튼을 클릭할 수 없게 홈페이지를 설계해 놓았다… 사이트에 접속 후 우선 Visa 관련 버튼을 클릭하고 그 이후에 다른 정보들을 입력해야 하는 체계였다. 코드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짠 건지…


모바일로 시도하니 순서와 무관하게 별 탈 없이 됐는데, 인터넷은 왜 안 되는 것인지.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첫 페이지 입력에 1시간을 허비했다. 사용자가 직접 사이트의 작동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에도 열이 뻗쳤지만, 공식적으로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게 무엇보다도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넘어간 두 번째 페이지…


< 육로 입국자만 작성하라며? >


육로 입국자에게만 위 서류가 요구된다는 정부 홈페이지의 설명과 배치되게 입국 수단에 International Airport, 즉 국제공항이라는 선택지가 버젓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혹시 몰라 채워놓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국제공항 이용이라는 선택지가 있는 것을 보니 불안했고, 그렇게 30분가량 인터넷을 뒤졌다. 찾아보니 각양각색의 후기가 나왔다.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는 여행객부터, 공항에서 확인했다는 여행객에, 아비앙카(Avianca) 항공을 이용할 경우 항공사에서 서류를 기내 배부한다는 얘기, 마국발 여행객은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 등 일관된 기준이 없었다. 어쩌겠는가. 써야지.


Brand, Model, Plate가 각각 항공사, 기종, 번호를 요구하는 것인지도 불확실했다. * 도 없기에 결국 공란으로 비워뒀다.


이후 D) 연락 정보 란에서 또다시 문제에 봉착했다.


Natural Person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여행을 목적으로 온 관광객에게 Contact Phone/Address in Nicaragua (니카라과 내 전화번호 및 주소), Company or Organization Representative (대표 회사 혹은 단체), Full Name of Contact in Nicaragua (니카라과 내 연락처 성명), Name of the (Institution, Association, NGO, Church, Company) they represent (기업 및 단체 명), Identity Document No. (주민등록번호)를 왜 요구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일단 국경을 넘어야 유심을 살 수 있지, 혼자 왔는데 무슨 대표에 단체인지, 그리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뭔 연락처니 주민등록번호인지… 화가 났다.


공란으로 비워둘 수 있는 항목들도 아니었기에, 결국 인터넷을 또 30분가량 뒤져댔고, 마침내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에서 No Aplica (해당 없음)으로 기재하라는 정보를 찾았다.


장장 2시간이 걸린 서류 작업, 설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불친절한 사이트에 넌덜머리가 났다. 필요한지도 확실치 않은 일에 시간을 허비하니 짜증이 밀려왔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는 점… 황열병 예방접종은 이미 끝냈기에 안심하고 있었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말라리아였다.


혹시 하는 마음에 말라리아 분포 지도를 확인해 보니 나라 전역이 시뻘건 것이 아무래도 약을 사가야 할 듯싶었다.


< 안 위험한 데가 없다. 출처: Fit for Travel >


급히 학교 보건센터에 이메일을 넣고, 금요일에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예약했다. 바하마 출국이 토요일이었음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급박한 일정이었다.


이미 필요한 모든 예방접종을 다 마친 데다, 대학 생활 동안 짬을 내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는 나를 좋게 봐주신 의사 선생님 덕분에 한 번의 진료로 필요한 모든 약을 다행히도 처방받을 수 있었다.


한 학기에 200만 원 하는 보험이 한 정에 5천 원, 총 6만 원가량 하는 말리리아 약 비용을 커버했다.


< 말라론. 입국 이틀 전부터 출국 일주일 후까지 하루 한 정 >


이것저것 서류들을 준비하고  100% J답게 1, 2, 3안으로 구성된 여행 계획을 세우다 보니 한 주가 금방 갔다.


< 계획 및 비용 추산 초안 >


< 이런 액셀 파일들을 정리하며 안정을 느낀다… >


계획을 세우며, 즐길 건 즐기되 최대한 절약하는 것을 여행의 목표를 설정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미국에서 돈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여행이 낫다며 합리화를 하는 마당에, 돈을 펑펑 써서는 안 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맞게 모든 짐을 책가방 하나에 다 쑤셔 넣었고, 총 10박 중 3박은 공항에서 보낼 계획을 잡았다. 몸으로 때울 수 있을 때 때우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 아닐까…


바하마에서 2시간 이내 거리는 무조건 걷고, 라면으로 세끼를 해결하며, 니카라과에서 1박에 8달러 하는 숙소에 머무르고, 공항에서 몇 밤 자다 보면, 몸은 조금 힘들어도 돈은 굳지 않겠냐는 게 내 생각이자 무모한 계획이었다.


< “배낭” 여행. Personal Item 하나면 비행기 값이 쌀 수밖에 없다. >


그렇게 여행은 가고 싶지만 돈이 없는 내 두 번째 배낭여행의 날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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