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결승. 그리고, 경기를 보지 않는 사람들

관람과 경험. 그 사이

by 노마드

22.12.18: Day 3,


오늘도 7시 30분에 눈을 떴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온갖 그래피티로 뒤덮인 건물들도 신기했지만, 무엇보다도 9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에도 클럽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이없으면서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는 사람을 봤을 때의 충격이란...(한국 기준으로 너무나도 많이 쉬는 타국 사람들을 보며, 가끔 성장의 동력이 휴식인지 혹은 저개발의 이유가 휴식인지 궁금해진다.)


<벽화와 흉물 그 사이 어딘가. 아침임에도 클럽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일전 택시 기사에게 추천받은 현지 식당에서 오믈렛으로 가볍게 끼니를 때운 후 길거리에서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 하나를 손에 쥔 채 호스텔로 향하는 요시를 발견했다.


저녁에 술자리를 함께한 친구들과 함께 다른 호스텔로 넘어가 월드컵 결승을 관람하기로 했기에, 짐을 싸맨 후 요시와 함께 30분가량을 걸어 호스텔에 도착했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칵테일을 홀짝이며 플레이볼을 기다렸다.


<경기를 보러 온 건지 얘기를 하러 온 건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렇게 시작한 월드컵 결승.


정시에 맞춰 혹은 10분, 30분씩 일찍 도착해 음식을 시키고 킥오프를 기다리는 한국과 다르게 전반이 끝날 때 즈음이 돼서야 사람들이 다 왔다.


터무니없는 여유로움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모인 사람들의 목적이 월드컵 결승 시청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Chill 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깨닫자 선입견을 가졌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한국에서도 가끔 의아해했던 부분이었는데, 여행을 하니 평소 자각하지 못했던 점들도 깨닫게 되는 듯 하다. 다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스크린에 집중하기 보다는 서로에게 집중한다는 점은 확연히 달랐다.)


홀로 볼 것이라면 애당초 술집으로, 식당으로, 바로, 삼삼오오 모일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사소한 볼 터치 하나, 패스 줄기 하나, 라인 정리 따위에 집중했던 전반전과 달리, TV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주위 사람들과 조금 더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골 장면도 한 번 놓치고 이야기를 나누다 터져나오는 탄식에 뒤늦게 화면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즐거웠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 순간들이었다.


샹그리아만 홀짝이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호스트 아주머니로부터 밥도 한 끼 대접받았다.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음식을 두 접시 주문시키고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너무 많이 시켰다며, 라비올리를 권하는 아주머니로부터 한국에서 으레 할머니를 찾아뵈면 접했던 푸근한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렴. 좋은 게 좋은 거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특정 팀을 응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장전, 승부차기를 거쳐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끝났고, 이어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가 온 호스텔에 울려 퍼졌다.


나 역시 신나게 분위기를 타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승리가 아닌 축제의 기쁨을 온전히 누렸다. 이제야 Kpop 등으로 알려지는 중인 동북아 변방에서 자라온 내가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웃고 즐기고 있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진한 여운 속에서 에콰도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콜롬비아 엘도라도 국제공항에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한 후 환승해 마리스칼 수크레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새벽이었고, 인근 숙소에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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