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키토, 고산병
22.12.19: Day 4,
고산병의 가장 큰 문제는 고산병의 증상과 고산병 약 부작용의 증상이 유사해 다시 한번 올라가 보는 길 외에는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다이아목스(이뇨제)의 부작용이 얼얼한 얼굴이고 고산병의 부작용이 얼굴 부기라면, 부어서 얼굴이 얼얼한 것인지, 아니면 얼굴마저 부은 것인지 도무지 판단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약을 과다복용한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약 없이 올라갔다 약 덕분에 저번에는 살았구나, 그리고 이번에는 자칫하다가는 골로 가겠구나 느끼는 것보다 아찔한 결말은 없을 것이기에, 일상으로서의 여행을 꿈꾸는 나는 고산병이 지금도 두렵다.
육로를 이용해 고산 지대로 천천히 올라가게 된다면 몸이 그에 맞춰 적응하기에 조금 더 낫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이미 비행기 표는 끊어놨고 해발고도 2548m에 위치한 콜롬비아 보고타의 엘도라도 국제공항에서 아무런 증세가 없었기에 안심하고 키토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는 새벽 공기를 헤쳐 마리스칼 수크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와 온 공항에 아시아인이라고는 당최 나밖에 보이질 않았다. 내가 멀리 떠나왔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존에 알던 익숙한 세계와 완전히 격리된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가끔 어린아이들이 외계인 쳐다보듯이 나를 관찰하고 지나갔다.
부모님의 좋은 유전자를 모두 물려받은 것인지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잘생긴 동생과 달리, 나는 주관적으로, 아침 거울 앞에서(만?), 잘생겼기에, 어린아이들에게 웃어주면 고개를 돌리는 아이가 반 (부모님 다리 뒤로 숨지 않으면 다행이다), 마주 보며 활짝 웃어주는 경우가 반 정도 된다. 그래서 보통은 사탕이나 껌을 들고 다니며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사탕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웃으려고 노력한다. 인생 처음 보는 한국인 혹은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가 "엄마, 저 아저씨 이상해. 무서워."로 남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공항에서 앞을 못 보고 달려오다 내 다리에 부딪힌 여자 아이에게 껌도 하나 쥐어주고, 오는 도중에 엉성한 스페인어로 옆좌석 여성 승객과 시답잖은 대화도 나눴던 나는 (이륙 전 디엠을 보내던 내게 다른 이모티콘의 사용을 추천하고 그 대가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당시 나는 갈라파고스에 대한 기대로 잔뜩 들떠 있었고 착륙 후에도, 공항 인근 호스텔에 체크인한 후에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고산병 별 거 없네.”라는 복선을 깐 채 잠에 들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다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새벽 4시 30분에 자 7시에 일어났기에 당연히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 수 있다고 여기며 식사를 마친 후 택시를 잡아타고 키토 시내에 예약한 호스텔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 캐리어를 쥔 채 계단을 올라가며 몸 상태가 심상찮음을 직감했고, 호스트의 설명도 들은 채 만 채 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반 시간 가량 꼼짝 못 하고 그렇게 누워 있었다. 고산병(혹은 고산병 약의 부작용)의 증세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답답한 고통을 내게 선사했다.
숨을 아무리 가쁘게 쉬어보아도 공기는 모이지 않고 흩어져 폐의 반절도 채우지 못했고, 온몸의 혈이 머리로 몰렸다. 솜털이 바짝 선 얼굴을 건드리면 전 말초신경계가 부르르 떨며 하반신까지 온몸이 저려왔고, 얼굴을 쓸어내리기라도 하면, 피부 아래 혈의 위치를 선명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안면 피부 아래 혈관으로 지도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이, 피부층, 혈관, 그리고 골이 박리돼 따로 노는 기묘하고도 소름 끼치는 감각이었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렇게 누워있기를 1시간 30분, 이대로 눈을 감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 어기적 어기적 몸을 침대에서 끌어낸 후 휘청이며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참으로도 무모한 결정이었다.
하필 가고자 하는 성당은 저만치 위에 있었고 2,800m에서 100m가량 더 올라가 봤자 별 일이 생기겠나 싶어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리석은 결정을 후회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걸음걸음마다 손으로 무릎을 쥐고, 핑 도는 머리에 고개를 아래로 박고 헛구역질을 하며 언덕을 올라갔고, 도착해서 또다시 성당의 첨탑을 올랐다. 오래 있으면 사달 나겠다는 생각에 마지막에는 힘을 쥐어짜 계단을 뛰어올라 갔는데 돌이켜보면 미쳤었나 싶다. 실제로도 뇌에 산소가 공급이 되지를 않으니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을 터이다.
다만 첨탑에 오를 가치는 충분했다.
탁 트인 전경도 인상 깊었지만, 이 높은 도시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살다 마을을 이루고 끝끝내 도시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인간의 위대한 개척 정신이, 무척이나 대단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골골대며 첨탑 계단을 뛰고 걷기를 반복하며 내려와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십자가 형태를 띠는 전체적인 구조와 커다란 원형 모자이크 장식이 눈을 사로잡았으나 채광이 뛰어나지는 않아 전반적으로 칙칙한 음영이 짙게 묻어나 있는 성당이었다. 안내소에서 미사 시간을 확인한 후 호스텔로 복귀했다.
들어가려 하니 문이 말썽이었다. 갖은 수를 써도 열리지 않는 문에 결국 벨을 눌러 호스트에게 작동원리를 물었고, 작은 카메라 앞에서 되지도 않는 스페인어를 써가며 온갖 손짓을 다했다. 손을 카메라로 가까이 댔다가 오른쪽으로 돌리는 모션을 취하자 Si라는 대답이 들려왔고 그렇게 문을 따고 들어가려던 찰나 손을 찧었다. 그래도 어찌 됐든 문을 딸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숙소로 들어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었다. 중요하다고 하기에는 하찮은 팁이어서 아무도 공유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떤 문들은 안으로 밀어준 후 돌려야 열린다. 당겨서 열여야 하는데도 그렇다. )
확실히 고도가 조금이나마 낮아지니 일시적으로 압박이 줄어들었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항변이라도 하듯 금세 상태가 안 좋아졌다.
또다시 누워있기를 1시간, 그제야 몸이 괜찮다고 느껴졌고 (진짜 괜찮았던 것인지, 괜찮다고 믿었던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적응력 하나만은 정말 경이롭다.) 일어서 다시 키토에서의 하루를 미사와 함께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