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첫 공항 노숙

에콰도르 키토 마리스칼 수크레 국제공항

by 노마드

22.12.20: Day 5,


오후 4시쯤 일어나 체크 아웃을 마치고 택시를 잡아타 공항으로 향했다.


에콰도르 입국 후 처음으로 맨 정신인 상태로 차를 타고 가니 오히려 나쁜 점도 있었는데, 하나는 연식을 짐작하기조차 두려운 버스들이 뿜어내는 매연이 너무나도 뿌옇게 잘 보인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차선 구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들이 버젓이 잘 다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차들이 역주행하고 있었다. 친환경 버스를 운용하거나 체계적인 도로망을 구축할 여력이 없는 1차 산업 일변도 국가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말을 아끼련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입도에 필요한 TCT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카운터를 찾아가는 것이었는데 공항 출국장 입구 바로 왼편에 있어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홈페이지에 저녁 7시까지 운영한다고 되어있던 카운터는 휑하니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불은 왜 켜놓은 것인지... 전력에 낭비될 돈으로 팻말이라도 걸어놓지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공항 인포에 물어보니 새벽 5시에 연다고 했고 (이마저도 5시 20분에 열었다.) 별다른 수가 없었기에 ATM에서 돈을 우선 뽑았다.


ATM 역시 최대 인출한도가 600 달러라고 인터넷에 명시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500 달러였고 그렇게 수수료 1.5달러를 더 냈다. 카드를 넣은 후 버튼을 클릭하는 익숙지 못한 방식으로 인해 기계 조작에 애를 먹었다. 수수료가 무료인 ATM은 카드를 읽지 못해 현지인들 역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비용 절감 차원에서는 가히 천재적인 발상이었다. 돈이 나오긴 나와서 다행이라고 느꼈을 정도였으니… 썩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었다.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공항이다 보니 첫 공항 노숙에 대한 두려움도 커져갔다. 갈라파고스행 비행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항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소파를 둥글게 만들어놓은 이유도 납득이 가질 않았다.


< 첫 공항 노숙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무난하게 지나갔다>


그럼에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그 동물적인 면모를 누구보다도 잘 간직하고 있는 게 나 아닌가. 긴장돼서 잠이나 잘 올까 싶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너무 잘 잤다.


모든 짐을 몸 근처로 끌어당긴 후 동여매고 귀마개를 꽂은 나는 몇 초 정도? 잠이 안 온다는 생각을 했었고, 이후 일어나 보니 새벽 4시였다.


첫 공항 노숙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성공적이었고, 나는 그렇게 내가 머리만 붙이면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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