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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pr 18. 2023

만 10세 임모 군 공항에 억류되다

미국에 더 많은 총이 필요한 이유.


총에 대한 내 첫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5학년과 총. 얽힐 일이 없는 두 단어가 나란히 배열된 것만 봐도 좋은 일일 리가 만무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사건의 발단은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영재 비스무리한 프로그램(CTY)에 참여한 것.


초등학교 1학년 미국에 가서 하버드 대학교 동상의 발을 만지며, 자유의 횃불 아래 살겠다고 다짐한 내게 어찌어찌 5학년 여름 방학에 1개월 동안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생겼고, 그렇게 난 덜컥 들어본 적도 없는 법과학(Forensic Science) 수업을 듣게 되었다.


생애 처음 경험해 보는 인종차별, 집이 그리워 울던 날들, Cramp란 단어가 갑자기 기억이 안 나 다리에 rat이 났다며 (그렇다. 쥐. rat. mouse였나?) 호들갑을 떨던 일까지 별의별 일들이 있었지만 4주 남짓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마지막 수업 날 강사가 선물이라며 총알과 탄피를 건넸다.


미국에서 온 아이들은 총알까지 받는 모양이었는데, 그래도 당시의 나는 똘똘했던 모양인지, 한국으로의 총기 반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선생님이 선물한 총알을 사양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러나, 어린 내 생각에 이미 쓰고 남은 탄피를 규제할 이유는 아무리 봐도 없어 보였고 (최근에 반입이 가능해진 걸 보면, 내 판단이 논리적으로 잘못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한테 자랑할 요량으로 탄피는 챙겼다. 총알은 쏠 수 있지만, 탄피는 솔직히 어디다 쓴단 말인가. 녹여서 동전이라도 만들 건가 싶었다.


아무렴 미국까지 갔다 왔는데, 아이들이 생전 보지 못했을 탄피를 학교에 들고 가면 잠시간은 스타덤에 오르지 않겠냐는 게 내 얄팍한 생각이었다. (스타덤은 무슨. 아직도 탄피를 학교에 들고 가겠다는 미친 발상은 왜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린 난 어딘가 미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김포였나 인천이었나 입국하자마자 어디론가 끌려갔다.


가방에 금지 물품이 있다는 이유로 어떤 아저씨 한 명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이내 저 너머 어디선가 부모님이 달려왔다.


처음 든 생각은 "무슨 금지물품?"이었다. 이미 다 쓰고 남은 탄피는 당연히 반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전자사전을 캐리어에 넣었나 아니면 액체 관련된 문제인가 싶었다.


그리고 들려온 "자녀 분 캐리어에 탄피가 있습니다."라는 말.


그제야 문제가 무엇인지 눈치챈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그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부모님과 검은 옷을 입은 직원? 세 분이 몇 분에 걸쳐 대화를 나눴고, "다음번에는 조심해라."는 말과 함께 훈방 조치되었다.




부모님 입장에선 가슴 철렁했을 이 사건은 오랜 기간 동안 수면 밑에 잠들어 있다, 총과 직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될 때면, 가끔 떠오르곤 한다.


가장 멀게는 시력과 사격 실력 간의 상관관계가, 적어도 내게 한해서는, 나쁜 쪽으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논산 훈련소에서.


그리고 가장 가깝게는 지난주, 영어 수업 시간 친구와 지나가듯 나눈 대화에서.




총과 관련해서라면, 코로나19에 대한 대처가 그러했듯, 동양적인 시선에서 지극히 비합리적인 일들이 미국에서는 일어난다.


코로나19의 경우,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서구적 사고관과 집단의 안전을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관이 각국 별로 판이한 대처를 불러왔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과거 제정된 특정 법 조항들과 관련해 총기에 대한 미국의 접근은 비합리적인, 아니 비이성적인, 구석이 있다.




작년 6월, 바이든 대통령이 통과시킨 법안이 화제가 된 바가 있다.


1. 만 18세에서 21세 미만 총기 구매자들에 대한 범죄 기록 제공 2. 만 21세 미만 구매자의 정신 건강 상태 확인 3. 배우자 혹은 연인 폭행/학대 전과자 대상 총기판매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었는데, 한국인의 시선, 아니 일반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내용들이다.


법안을 확인했던 당시 내 반응 역시, "아니, 전과자 대상 총기 판매가 허용됐었다고? 미친 거 아니야?"였으니.


실제로 미국 내 총기 범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고, 일이 벌어지면 그제야 수습하는 건 어느 나라나 같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일이 벌어져야 수습할 수 있다가 맞으려나) 해당 법안 통과 역시 뉴욕 및 텍사스에서 총기 난사로 30명 이상이 사망한 후 진행된 일이었다.


선제적 법안 처리를 통한 예방적 조치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사람이 죽어나가야 그 희생을 딛고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한 현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뼛속까지 한국인인 내가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미국의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 떠들어댈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참...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


백악관에도 주기적으로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와 규제를 촉구하는 성명문이 게재될 정도이니, 현재 미국의 총기 문제는 이미 손댈 수 없이 커져버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에서 총기 문제는 비단 총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와 사안은 편의를 위해 혼용한다.) 총기 사안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입장들이 얽혀 있고, 완전한 해법을 찾기에는 요원한 복잡다단한 사안.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미국인이 신봉하는 가치, 자유와 깊게 연관되어 있는 사안이다.


미국에서의 총기 소지는 수정헌법 2조, "규율 잡힌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기에,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에 따라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자유에는 책임이, 권리에는 의무가 뒤따른다며 총기 옹호론자들을 일갈할 수도 있겠으나,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안전을 자기 손으로 지키겠다는, 즉 저항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이 그렇게 틀린 것 같지도 않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난 총에 맞아 죽기 싫고, 한국은 총이 없어서 안전했으니 미국에도 총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도이려나.


학교에서 경찰이 쏜 총에 학생이 사망한 일도 있고, 지난 학기 룸메이트가 두 시간 차이로 총격 장소에 가 있었던 일들이 있으니, 유학생인 내게 총은 가히 실존적인 위협이고, 이 정도의 말은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뚜렷한 해답이 없는 문제. 손댈 수 없이 커져버린 문제이기에.



다시 친구 녀석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케이든은 내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아이들이 학교에서 죽었는지 아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자문자답하기를, 교사들에게 총기가 없어서란다.


교사들이 그 망할 범인 새끼들을 총으로 다 쏴 갈겼으면 아이들이 살았을 거란다. 다는 아니더라도 몇은 살았을 거란다.


그리고 주고받은 모든 대화들을 요약했던 한 마디.


We need more guns.


이미 총기 회수는 요원하니, 더 많은 총을 뿌리고 또 뿌려 모두가 총으로 서로를 압박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 오히려 안전을 확보하는 법이라며 진의 모를 소리를 해댔다.




손댈 수 없이 커져버린, 모두가 잠재적으로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아니 소유해야 하는 사회에서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기껏해야 돈을 많이 벌어, 안전한 곳으로 터전을 옮기는 것뿐일 터이다. (지지난 주 총기 사고가 없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부촌에서도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달리 말하면, 미국 내에서 안전한 곳은 사실상 없다. 확률의 문제일 뿐.)


억지력을 제공한다는 궤변, 필시 동반되는 다수의 희생, 그리고 확산의 길만이 있다는 점에서 총은 핵과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차 타고 5분 거리의 다운타운에서는 누군가 주머니에 총을 쑤셔넣은 채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것이고, 지난주 다녀온 디트로이트의 후드 지역에서는 사람 하나가 또 죽어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허나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면, 어디까지나 나를 지키기 위해 더 강력한 총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희생 혹은 사고로 포장된 살인 사건이 여럿 발생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모든 시민이 서로의 목구멍에 겨눌 총 한 자루를 갖기 전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사람들은 불안에 떨 것이라는 점 뿐.


말과 물건은, 말과 무기는 다르다. 침묵은 그 자체로도 의미를 내포할 수 있지만, 쓰이지 않는, 쓰이지 않을 물건이란 먹지 않을 음식과 진배없는 허상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어떠한 경우에서도 쏘지 않을 활, 베지 않을 검, 막지 않을 방패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별생각 없이 탄피를 반입한 어린아이에게도 용처를 묻고 절차를 거치는 나라가 있는 반면, 전과자가 총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


결국 이 또한 확률의 문제일 것이다. 전 국민이 함께하는 러시안 룰렛. 장탄수는 인구 수와 동일하고 총알 수만 다른.


다만, 전후사정이 어찌 됐든 직접 리볼버에 총알을 하나 더 추가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 살자고 너 죽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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