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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pr 02. 2023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가...

토르투가 베이

22. 12. 25: Day 10,


고대하던 땅거북을 봤기에 갈라파고스를 방문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으나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숙소에서 잠시 물만 챙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 목적지는 토르투가 베이, 한국어로 하면 거북이 해변으로, 호스텔 주인 아저씨께서 그나마 걸어서 가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라고 말씀하셨기에 해가 지기 전에 일찍 떠났다.


오전에 비가 내린 영향인지 하늘이 흐렸다. 지도에 따르면 해변까지는 걸어서 45분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걸음걸이를 지닌 사람에 한해서였다. 며칠 전 바위에 찍혀 갈라진 뒤꿈치의 상처는 나을 기미를 안 보였고, 어색하게 절뚝이는 걸음걸이는 여전했다.


< 반가운 한글, 늘상 보이는 도마뱀 >


걷고 또 걸었다. 해변으로 진입하기 위한 도로의 초입에서 코이카 팻말이 걸린 갈라파고스 홍보관을 봤다 (찢어지게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다른 국가들을 지원해줄 수 있는 수준까지 국력이 강해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갈라파고스에서 한글을 볼 줄이야...).


하늘은 흐렸고, 해변으로 가는 산책로의 풍광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다니는 작은 도마뱀들과 비쩍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 그리고 우뚝 선 선인장들이 나오고 또 나왔다. 여행 중이라면 30분에서 1시간 거리는 무조건 걸어다니는 나였지만, 이미 오전에 3시간 가량을 걸었기에 발에 누적된 피로가 어마무시했고,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다리 두 짝을 질질 끌며 다니려니 힘이 부쳤다.


< 해변 >


막상 도착한 해변에도 그리 볼 것이 많지는 않았다. 해안선이 길게 펼쳐져 있었고, 그 끝에 맹그로브 군락과 바다이구아나 무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측으로 돌아들어가니 폭이 좁은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정박한 요트를 뒤로 하고, 숙면을 취하는 사람들, 모래성을 쌓아올리는 아이들, 물장구를 치는 가족들이 휴가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평범한 해변이었다.


< 볼 것이 많다기 보다는 쉬기 좋은 해변이었다. >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자는 어디를 봐도 나 하나.


< 큰 푸른 왜가리 >


신발을 벗은 채 모래를 밟으며 해변을 걸어나왔다. 처음에는 발바닥이 따끔거렸으나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심신을 맡긴 채 걷다보니 고통도 점차 잊혀갔다. 그렇게 1시간을 또 걸어 해변을 빠져나왔다.


< 휴식을 취하는 이구아나 무리 >
< 볶음밥, 패션푸르트맛 아이스크림,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는 사람들 >


근처 중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간장 맛이 희미하게 배여있어 케첩을 여러 번 둘러야 약간 쓴 파맛이 퍼져나오는 볶음밥 한 그릇을 비웠다.


<  20km >


갈라진 뒤꿈치와 함께 한 20km의 여정...


어릴 적 꿈을 이뤘기에 분명 기분이 고양된 상태이기는 했으나 7시간을 걸어다닌지라 육체적인 피로가 상당했다. 당장 침대에 몸을 파묻고 싶은 유혹을 가까스로 참아내고 다음 날 배편을 예약하기 위해 호스텔 프론트에서 주인 아저씨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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