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 Mar 14. 2023

바다사자 vs 펠리컨

김칫국 들이키기 신공

22. 12. 25: Day 10,


박물관을 돌아 나와 일전 블로그에서 봐둔 어시장으로 향했다. 어시장이라 지칭하기에는 작은 가판대 여럿을 'ㄱ'자 형태로 이어 붙인 차양막 아래의 협소한 공간이 전부였지만, 사람들이 주는 고기를 펠리컨이 넙죽 받아먹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고 들었기에 기대감에 부푼 채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밤에 고기잡이 나간 배들이 들어오는 오전 8시가 사람과 동물들이 가장 많이 몰릴 때라고 들었는데, 10시 30분 정도에 찾아가니 확실히 한적했다. 느릿느릿 물고기를 손짓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 너 다섯 분 계셨고, 옆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매대에 놓인 물고기와 랍스터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오른쪽 뒤의 바다사자가 실세다. 소파에 앉아계신 집안 어르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


손질 후 남은 부위를 던져주면 빠른 녀석이 받아먹는 강자존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는데, 이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왜소한 체구를 가진 녀석들에게 먹이를 건네주는 훈훈한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가끔 용기를 내 물고기 자체를 훔쳐가려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펄럭이는 날갯짓 소리에 시도도 전에 발각되기 마련이었다.


펠리컨이 얌전한 신사 혹은 신중한 좀도둑이라면, 바다사자는 자릿세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리는 왈패에 가까웠다. 멀뚱멀뚱 서서 기회를 노리는, 혹은 심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펠리컨들과 달리 바다사자는 퍼질러져 있다가도 손질이 끝날 때 즈음이면, 귀신 같이 냄새를 맡고 찾아와 행패를 부린 후 남은 부위를 기어코 받아냈다.


허공에 떠서 쪼아대면 바다사자도 별 수 없을 텐데 겁이 많은 것인지, 꾸익거리며 바다사자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쳐들어오면 펠리컨들은 혼비백산해 서로 부딪히며 날아갔다.


새대가리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손질이 조금 진행돼 분리된 부위가 반대 손에 쥐어지기라도 하면 고개를 돌리고 가까이 다가와 김칫국을 마셔댔다. 자신에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철저히 구분해 움직이는 바다사자와 다르게 알면서도 매번 기대를 하는 펠리컨 원초적인 본성이 이해는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웠다.


< 손질이 끝난 후의 매대. 한적하다. >


이후 숙소 옆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전날 밤,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특수를 누리고 있는 식당들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붐벼댔던 식당이었기에 애매한 브런치 시간대를 틈타 방문했다.


대다수 메뉴의 가격이 20달러를 훌쩍 넘겼기에 가장 싼 버거와 모라 주스를 한 잔 시켰다. 15분가량 기다렸을까. 싱싱한 채소, 살짝 그을린 듯 한 불맛이 나는 패티, 끈적 짭조름한 치즈와 텁텁한 빵으로 구성된 정석적인 수제 버거였다. 15시간 동안의 공복으로 인해 맛은 있었으나, 특별하게 맛있지는 않았고, 가격에 비해 양이 적은 평범한 수제 버거였다.


< 맛은 늘 있다. 비싼 게 문제지...>


식사 후 숙소로 복귀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진짜 땅거북을 만나볼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찰스 다윈 연구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