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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Apr 26. 2023

올드함. 힙함.

코메리카 파크,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창단: 1894년

연고지: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소속: 아메리칸 리그 중부지구

홈구장: 코메리카 파크

월드 시리즈 우승 (4회): 1935, 1945, 1968, 1984

영구 결번: 타이 콥, 루 휘태커, 찰리 게링거, 앨런 트래멀, 행크 그린버그, 알 칼라인, 스파키 앤더슨, 할 뉴하우저, 윌리 호튼, 재키 로빈슨 (42, 전 구단) 잭 모리스, 저스틴 벌렌더 (예정), 미겔 카브레라 (예정)


https://goo.gl/maps/d9rw2U32mavCovCz6


위치: ★★★★★★★★★☆

구장: ★★★★★★★★

시야: ★★★★★★★★★★

음식: ★★★★★★☆☆☆

응원: ★★★★★★★★☆☆


종합 평점: 8.4 / 10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최초의 5인으로 헌액 된 타이 콥이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낸 팀.


미국 4대 피자 체인으로 꼽히는 리틀 시저스 피자의 창립자 마이클 일리치 구단주가 수억 달러를 쏟아부었음에도 우승과는 연이 없는 팀.


자동차 산업의 부흥과 함께 성장했던 도시는 그 쇠퇴와 더불어 완연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고, 그런 도시와 명을 같이 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는 8년 연속으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올해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을 터.




내게도 굳이 디트로이트여야만 하는 이유 따윈 없었다. 버킷리스트에 적힌 MLB 30개 구장 방문하기 중 하나를 지워내는 정도랄까.


사실 혼자 방문하기엔 두려운 도시이기도 했다.


미국 힙합의 고장. 달리 말하면 범죄의 온상.


우범지대 후드가 있고 대마가 합법이며, 운전자가 무서워 경찰이 과속 단속을 주저한다는 악명 높은 도시에 굳이 혼자 갈 이유는 없지 않을까.


우연찮게 금요일 저녁에 시간이 비었고, 디트로이트행 비행기표가 마침 싼 가격으로 나와있기에 충동적으로 결정했을 뿐… 야구장을 가면서 그다지 설레지 않았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치안도 치안이거니와…1894년 창단한 후 가장 최근 우승이 1984년으로 약 40년 전인, 캔자스 시티 로열스와 서로 꼴찌 자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팀의 경기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선발 투수들 역시 듣도 보도 못한 선수들…


그나마 볼 것이라고는 올해 은퇴를 앞둔 리빙 레전드 미겔 카브레라 정도밖에 없었다.


< 프론티어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속한 지구는 아메리칸 리그 중부 지구. 애틀랜타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오전 강의를 듣고 오후 비행기를 잡아탔다. 티켓 가격은 30달러, 좌석은 중앙상단석으로 예약했다.


외곽의 공항에서 도시로 진입하자 마천루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민다. 어딘가 낡아 보이는 거무튀튀한 건물들.


고등학교 수업 시간, 지나가듯 다뤘던 2011년 슈퍼볼 광고가 떠오른 건 왜일까?


But this isn’t New York City or the windy city or sin city and we’re certainly no one’s Emerald City.


뉴욕도, 시카고도, 라스베이거스도, 누군가의 에메랄드 시티도 아닌 Motor City로서 디트로이트의 정체성을 강조했던 크라이슬러의 광고는 신형 모델을 타고 시내를 질주하는 에미넴의 모습에 디트로이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담아냈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디트로이트의 모습은 그 당시 광고 배경 너머로 보였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2012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정체된 팀. 그리고 현상 유지도 버거워 보이는 자동차 도시의 칙칙한 화색 마천루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홈구장인 코메리카 파크에 도착했다.


< 타이 콥 >


구장 옆 벽을 타고 돌아 들어가니 나오는 타이콥의 명판, 그리고 구장 측면의 동상들.


보통 등번호만 (삼성의 경우 벽화가 있고, 롯데는 최동원 동상이 있기는 하다.) 걸어놓는 한국 야구와 메이저리그가 가지는 차이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 동상들, 출처: mlb.com >

유구한 역사 및 전통. 뒤따르는 보존과 계승.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시간의 차이, 역사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 높다. >


구장 자체는 4만 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답게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수 주 전 WBC 결승을 관람하기 위해 방문했던 론디포 파크의 경우, 돔구장이었기에 크기를 실감할 수 없었는데, 코메리카 파크는 고개를 거의 직각으로 꺾어야 최상단부가 눈에 들어왔다.


거의 한 바퀴를 빙 돌아 게이트로 입장했다.


< 구장 내부 전경 >


구장 내부는 1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팀답게 유산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꾸며져 있다.


연도를 따라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들의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담아 천장에 걸어놓았으며, 중간중간에는 10년 단위로 선수들을 추억하는 탑이 세워져 있다.


< 탑,  출처: mlb.com >


아쉬운 점이 있다면, Big Cat Court를 제외하고 음식점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는 점. 역으로 말하자면, 푸드코트에 가기만 하면, 음식 걱정은 굳이 할 필요가 없어서 좋기도 하다.


< 뭐가 이리 많을까 >


구장 내부 볼거리로는 야구공 모양의 관람차와 푸드코트 내부에 위치한 회전목마를 꼽을 수 있다.


다만 회전목마는 운영하지 않는 듯했다. 알아본 바로는 위 두 시설 모두 일요일에 한해 14세 이하 어린이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기본 이용 비용은 2달러. 코메리카 파크는 Cashless 구장이므로 현금 결제는 불가능하다.


이외 시설은 Section 330에 위치한 Blue Moon Brewhouse와 구장이면 으레 있기 마련인 구단 스토어.


< 블루문 라운지, 출처: mlb.com >
< 미겔 카브레라, 스토어 내부 >


둘 다 기본에 충실한 시설들이라 별로 특이할 만한 것은 없었다.


< 푸른 하늘과 그라운드, 그리고 뒤의 마천루들이 대비를 이룬다. >


이런 코메리카 파크의 최대 장점을 꼽으라면, 바로 시야를 들 수 있다.


현재까지 한미일 도합 12개 구장을 방문한 나였지만, 코메리카 파크는 경험한 바 없는 압도적인 시야를 자랑했다.


기본적으로 좌석 간 앞뒤 간격을 넓히고 구장을 크게 만들어 1층 좌석을 에워싸는 복도들과 그라운드 사이의 높이 차이를 최소화했고, 여타 층 역시 비슷하게 건축돼 깔끔한 시야를 갖췄다.


어디서 봐도 마운드가 시야에 잡히는, 야구 보기에는 최고인 야구장이라고나 할까.


어찌 보면, 야구 관람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가장 충실하게 지어진 야구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그 모든 장점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리고, 내가 끝내 하품을 하며 졸기 시작하게 할 만큼, 경기는 늘어지게 지루했다...


듣도 보도 못한 디트로이트 선발 투수는 잘 던졌으나, 좌완 기교파(말이 좋아 기교파지, 운 좋은 똥볼러였다.)라 보는 맛이 없었고, 리그에서 나름 손꼽히는 좌완 파이어“볼”러 션 머나야는 이번에도 강판당했다. 그럼 그렇지.


< 다린 러프 >


그나마 기억나는 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다린 러프.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갔다 다시 돌아왔다는데, 인터뷰 도중 뉴욕 미디어와 팬들을 싸잡아 까는 바람에 욕을 꽤나 들어먹었다고 한다.


타석에서는 5타수 1안타로 영 힘을 못 썼다.


< Detroit vs Everbody. Eminem >


힙합의 도시답게 이닝 교대 음악으로 에미넴의 노래가 나오고, 투수가 삼진을 잡으면 힙합 비트가 흘러나오는 점도 신기하긴 했다.


< 퇴역 장성 >


군인에 대한 예우도 인상 깊었다. 야구장에서까지 군인을 챙겨준다는 점이 놀라웠다.




사람들이 경찰 하면 도넛을 제일 먼저 떠올리고, 수준 낮은 공교육을 비꼬는 릴스가 판을 치는 나라지만, 그럼에도 군인에 대한 미국인의 대우는 한국과 천양지차다.


전 세계 각지에서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때문인지 혹은 그저 군인과 관련해 시민의식이 높은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공항에서만 해도, 군인들은 비행기에 먼저 탑승할 수 있으며, 군인 여럿이 지나가면, "Thank you for you service."를 외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반면 군바리라는 단어로 군인들을 낮춰 부르는 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군인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못하고 군당국과 정부 역시 군인을 푸대접한다.


휴가 나온 군인들을 등쳐먹는 일부 상인들, 귀책사유가 분명함에도 잘못 발부한 군번 하나 안 바꿔주는 군 당국에,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생색내는 정부까지. 오죽하면 니카라과 여행 중 만난 친구가 한국군의 월급에 대한 내 얘기를 듣고선 그게 바로 현대판 노예 제도 아니냐며 경악했을까.


병뿐만 아니라 부사관, 장교에 대한 대우 역시 문제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돈이 가치를 증명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별로 주지도 않으며,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는 사회적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 고된 직업. 대략 국민의 절반이 군 복무를 마치기에 당연하다는 시선이 따라붙어서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이닝 중간에 미국 해병대에서 퇴역한 군 장성이 화면에 잡혔고, 모든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존중에 대한 격이 다른 느낌이랄까. 솔직히 부러웠고, 한국이 닮았으면 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야구장마다 다 판다. 취직하기 전까진 당분간 안녕... >


구장 음식은 간단히 평할 수 있다. 맛이 없거나 비싸다.


미국 야구장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야구 배트 모양 음료(피나 콜라다로 맛은 있었다) 가격은 미국돈 25달러, 한화 3만 원을 훌쩍 넘겼고,


< 비싸고 맛도 그닥... >


버거도 2만 원 가까이했다. 맛은 밋밋함의 사전적 정의.


감자튀김은 물컹물컹하지도 빳빳하지도 않은 게, 케첩 맛을 느끼려 입에 넣는 정도였고, 버거는 양파 맛이 너무 강했다. 흡사 마늘 혹은 생강 수준의 강렬함이 너무도 부자연스럽게 불향과 크리미한 치즈를 몰아냈다.


< 좌측 하단 핫도그 >


1만 원 가까이하는 핫도그가 그나마 먹을 만했는데, 그릴 위에서 계속 돌려가며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핫도그가 맛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짭조름함을 넘어서 짰던 핫도그에도 역시 좋은 평은 못 주겠다.


< 올 시즌 끝으로 은퇴 예정 >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예정인 디트로이트의 리빙 레전드 미겔 카브레라를 본 것은 분명한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는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있었고,


< 어이쿠야 >


좋지 않은 쪽으로 눈을 의심케 하는 플레이도 하나 봤다.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구나. 공이 어찌나 뜨거운지, 글러브로 잡았다 튕겨내는 모습을 보자 하니, 바다 건너 항구 도시에 자리 잡은 모 구단의 외야 수비가 절로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그래도 피치 클락 도입 후 경기 템포가 빨라져, 조금 더 박진감 있게 볼 수 있었다.


지루한 경기를 빨리 끝내준다는 점에서 피치 클락 도입을 환영하게 될 줄이야…




소강상태에 빠졌던 경기는 8회 초 다시 타올랐다.


디트로이트의 중계 투수진이 화끈하게 3점을 주며, 경기는 연장으로 치달았다.


경기가 접전 양상으로 가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아껴뒀던 특급 불펜 투수들을 올리기 시작했고, 덕분에 다시금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마무리 카밀로 도발의 99마일 커터. 그리고 메이저리그 대표 쌍둥이 선수인 로저스 형제 중 타일러 로저스를 보게 되어 설렜다. 타일러 로저스의 기괴한 언더핸드 스로우 폼은 직접 보니 공의 움직임과 각이 가히 마구에 가까웠다.




그렇게 시작된 11회. 디트로이트가 1점을 내주며 어김없이 오늘도 지나 싶었으나,


2사 1, 2루. 0 스트라이크 3볼.


1할 대의 빈타에 허덕이던 메이튼이 존에 들어온 공을 잡아당겨 거대한 아치를 그렸고,


< 미쳤다 >


경기를 끝내버렸다.


< 승리의 밤 >


그렇게 역전 끝내기 쓰리런의 진한 여운을 간직한 채 구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미친 경기였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코메리카 파크는 역시나 야구 보기 좋은 구장, 이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다.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하는 구장, 게이트를 지나쳐 복도를 넘어가 그라운드를 봤을 때의 첫 벅차오름을 가장 실감케 하는 구장이었다.


< 또! 또! 또! >


공항 근처 숙소를 잡을 여력이 없었기에, 공항에서 노숙하며 밤을 지새웠다. 여타 공항과 다르게 팔걸이 없는 의자도, 전기 콘센트도 거의 없는 데다, 24시간 동안 운영하지도 않는, 하룻밤 자기에는 최악인 공항이었다. 3시간 정도나 잤을까…


< 아침 비행기 >


아침 비행기를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 학교로 복귀 >


기말고사 기간, 머리를 식히겠다며 충동적으로 결정한 야구장행.


야구의 신은 내게 역전 끝내기 쓰리런이라는 극적인 결과로 보답했다.


지끈거리는 머리,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과제들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즐겼던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 목적지도 정했다. 클리블랜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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