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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 May 05. 2023

최악. 스피릿 항공 후기

Never Fly Spirit

(만에 하나 스피릿 항공을 타실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기나긴 학기가 끝났고, 오후 9시, 기말고사를 쳐낸 나는 (잘 치진 않았다) 곧장 하츠필드 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연내 공항 노숙만 벌써 일주일째. 현실에 불평불만하면서도 어찌 됐든 결국 수긍하고 (별 수 없지 않은가) 살 길을 도모하는 생존형 인간은 그렇게 인류애 가득한 팔걸이 없는 벤치를 찾아 공항을 정처 없이 배회했다.


기숙사 층장 녀석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시간 약속을 잡았고, 비행기 때문에 일찍 간다고 양해를 구해놨으면, 시간을 지켜야지 무슨 빌어쳐먹을 아이스크림이란 말인가) 도망간 바람에 체크아웃이 늦어졌고, 결과적으로 난 의자들이 넘쳐나는 공항 터미널이 아닌 공항 내 어디선가 잠을 청해야 할 터였다.


인터넷에 찾아본 바에 따르면, 애틀랜타 공항에서 스피릿 항공은 체크인 카운터를 밤 11시까지만 운영하는 모양이었고, 익일 5시 30분 비행기를 잡아타야 하는 나로서는 쪽잠 중의 쪽잠을 자게 될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미련하기 짝이 없는 나란 인간은 끝내 희망을 놓지 못하고 스피릿 항공의 카운터를 찾았다.


Lucky Me!


다행히도 스피릿 항공의 카운터에는 불이 환하게 들어와 있었고, 직원 서너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뒤로 길게 늘어선 승객의 줄로 짐작해 보건대 자정을 살짝 넘겨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는 것 같았다. 단박에 줄 맨 앞에 선 직원에게 달려가 물었다.


"Can I check in now?" (지금 체크인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듣게 된 스피릿 항공스러운 대답.


"Yes. If your flight is delayed." (비행기가 연착되셨다면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럼 그렇지. 스피릿 항공이 다 그렇지. (이건 층장 녀석 잘못이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금 잘 곳을 찾은 나. 예술품 전시 공간 즈음해 원형 벤치가 눈에 들어왔고, 벤치에 기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던 찰나, 옆에서 구슬픈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훔쳐 듣는 건 예의가 아니기에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마지막에 울분을 토하듯, 남자가 뱉어낸 한 마디는 그럼에도 여전히 기억한다.


"Yeah. Fucking spirits again." (그래. 시X 것. 또 스피릿 항공이야.)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곤궁한 지갑사정으로 인해 난 젯블루 (Jetblue), 프론티어(Frontier) 항공 등과 함께 미국 저가 항공을 대표하는 스피릿 (Spirit) 항공을 수 차례 이용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피릿 타지 마라.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속담이 이보다 더 잘 맞아떨어지는 사례를 난 보지 못했다.




연착률이 10% 전후를 왔다 갔다 하는 국내 항공사들과 다르게, 미국 저가 항공사들은 최소 10% 후반, 심할 경우 20% 중반의 연착률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


분명 이는 비단 스피릿 항공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작년 1월부터 5월까지의 기간 동안 연착률이 가장 높았던 항공사는 또 다른 저가 항공사인 얼리전트(Allegiant) 항공이었고 그 뒤를 프론티어 항공과 젯블루 항공, 그리고 스피릿 항공이 이었다. 


기내 와이파이 및 간식 제공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젯블루 항공이 3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미국 3대 항공사인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이 10위 내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행기 연착은 전반적인 미국 공항 및 항공사들의 문제이지 어느 항공사 한 곳의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물론 그럼에도 심할 때는 세 편 중 한 편, 보통은 네 편 중 한 편이 연착되는 얼리전트 항공부터 스피릿 항공까지의 항공사들은 문제점을 파악한 후 현재의 상황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를 핑계로 대기에는 연착 없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항공사들도 있지 않은가...


여하튼 반드시 맞춰야 하는 일정이 있다거나, 다음 비행 편을 아슬아슬하게 예약해 놨다 하는 경우에는 적어도 1위부터 5위까지의 비행 편은 예약하지 않는 게 좋다. 돈 몇 푼 아끼려다 수백 달러를 날릴 수도 있으니.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은 탈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많기에 제외.)


< 미국 항공사 연착률 순위, 출처: valuepenguin.com >


그렇다면 왜 하고많은 항공사들 중에서 스피릿일까.


스피릿 항공 역시 분명한 장점을 지니며, 이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난 앞으로도 돈이 생기기 전까지 스피릿을 탈 계획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돈 있으면 타지도 않았을 거다.)


가장 큰 장점은 가격.


사실상 유일한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애틀랜타에서 클리블랜드까지의 편도 티켓을 기준으로 스피릿 항공은 왕복 100 달러 미만의 가격을 승객들에게 제시한다. 애틀랜타를 허브 공항으로 삼는 델타 항공의 경우, 편도 가격이 150 달러를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시 스피릿 항공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나처럼 야구 관람을 위해 짧게 여타 도시를 다녀오는 경우, 혹은 별다른 짐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채 가방 하나(Personal Item)를 동여매고 어디로든 가볍게 떠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델타 항공과 달리 Personal Item을 제외한 기내 반입 물품에는 70 달러 가량의 추가 비용이 붙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렴하다.


특이한 점을 꼽자면, 기내 수하물이 위탁 수하물보다 비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감히 추정해 보건대, 위탁 수하물은 분실 가능성이 높기에 가격 책정을 그리 하지 않았나 싶다.




가격 외에 장점은 전무하다. 


앞으로 과도한 일반화를 하며 다루겠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점은 어찌 됐든 내 주장은 일반화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타 항공사를 이용할 경우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살펴볼 가치는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은 단점들을 짚고 넘어가겠다.


1. 끔찍한 호환성: 모바일에서는 작동하는 기능이 웹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고, 그 반대도 당연히 존재한다. 어느 쪽이든 열받는다.


2. 프로답지 못한 일처리: 하루이틀 연착을 겪는 것도 아닐 텐데 그 분야 노하우가 전혀 쌓이지 않은 듯, 직원들이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안내를 잘못해 주는 경우가 허다하고, 가끔 되지도 않는 농담이나 해대는 걸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


3. 비행: 무사히 착륙하면 박수를 보내는 문화가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분명 알 수 있다. 비행기 앞바퀴가 부서질 듯이 랜딩 한다. 이륙도 위험천만해 보이긴 마찬가지. 받음각이 너무 크면 실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기수를 치켜들고 이륙한다. 날개 옆에 앉아 기체가 전후좌우로 진동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이게 내 마지막일까 싶어 무섭다.


4. 좌석: 좁다. 좁다. 아 그리고 등받이가 안 넘어간다. 이건 사람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5. 게이트: 정말 자주 그리고 갑작스럽게 바뀐다. 공항 측에서 스피릿 항공의 게이트를 바꾸면 그래도 사람들이 그나마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악명이 이럴 때는 유용한 걸까), 가끔 공항에서 미칠 듯이 우르르 뛰어가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면, 십중팔구, 게이트가 출발 30분 전에 바뀌어버린 스피릿 혹은 프론티어 항공 탑승객이다. 티켓을 예약했다면 적어도 30분에 한 번씩은 항공편명을 구글에 검색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6. 환불: 저가 항공사라 환불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객센터가 전화를 잘 안 받는다. (그러고 보니, 프론티어 항공은 고객센터가 없었던가) 정 환불을 원한다면 공항에 가서 카운터를 찾는 게 빠르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서, 개인적으로는 스피릿 항공을 더 이상 타지 않아도 되면, 나 자신이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이쯤에서 나의 2023년 스피릿 항공 이용 내역을 정리해 보면,


1. 코스타리카 산호세 (SJO) -> 미국 플로리다 (FLL) -> 미국 애틀랜타 (ATL) : 약간 연착, 비행기 놓침

2. 미국 플로리다 (FLL) < - > 미국 마나과 (MGA) : 도착 편 연착

3. 미국 애틀랜타 (ATL) < - > 미국 디트로이트 (DET) : 출발 편 연착

4. 미국 애틀랜타 (ATL) < - > 미국 클리블랜드 (CLE) : 문제없었음.


으로, 총 7회 이용했고, 그중 3번 문제가 발생했다. 1번은 항공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후의 대처가 문제였기에, 또한 조금의 연착 자체가 결과에는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에,  총 7회 중 2번, 28.6%로 앞서 언급된 정보와 얼추 맞아 들어간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1번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공항 내 인력 고용이 코로나19 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한 상황 속에, 비행기 탑승에 앞서 카운터에 가 시간이 충분한지 두 번 확인한 후 비행기에 탑승했다.


미국인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아니었다. 줄을 보라.) 외국인 입국 심사에 3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접했고, 환승 시간이 3시간 정도였기에, 정말로 환승하기에 시간이 충분한 것인지, 놓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추가 비용을 내더라도 항공편을 뒤로 미룰 수 있는지 물었다. 카운터 여직원이 내가 건넨 말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그렇게 코스타리카 산호세에서 10분 정도 늦게 출발한 스피릿 항공은 예정보다 10분 늦게 공항에 도착했고, 난 입국 심사장에서 4시간을 보내며 비행기를 놓쳤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 문제는 인력 충원이 절실함에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포트로더데일 공항 측에 책임이 있었다.


< 줄 봐라. 미쳤다. >


다만, 나를 분노케 했던 것은 직원들의 대처였다. 줄이 긴 것도, 피곤한 것도 이해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앞에 두고 무시한 채 과자를 뜯으며 (혼자 먹던가) 5분이고 10분이고 서로 잡담을 해대다, 하나둘씩 퇴근 시간이라며 떠나던, 고객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피릿 항공 직원들의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었다.


1시간 3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내 차례가 왔고,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워싱턴, 볼티모어를 거쳐 애틀랜타로 돌아가는 비행 편을 예약하는 듯했다. 아니었다. 네가 지불한 티켓 가격보다 비싸기에 예약을 못해주겠다고 처음에 뻐팅기더니 (아니 그럼 더 싸면 그 차액을 줄 것도 아니면서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이내 입장을 바꿔 고갱님이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다며 번지르르한 말을 주르르 늘어놓았다. 젊어서 체력이 만땅인데다 공항에서 노숙하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되받아치니 갑자기 티켓이 없어졌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결국 그렇게 3일 후 출발하는 티켓을 발권받았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면 여타 공항들을 거쳐 애틀란타로 들어가는 항공편들이 수두룩빽뺵하게 나오는데 무슨 경우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저가" 항공사이기에 호텔 바우처, 식당 바우처 그딴 건 없다고 못 박았다. 다른 사람들도 못 받았더라... 그렇게 하루는 공항에서 하루는 박에 7만 원 하는 호스텔에서 (공항까지 오가는데 우버 비용만 6만 원이 찍혔다.) 보내고 개강 첫날과 둘째 날 수업을 모두 놓친 채 학교로 돌아갔다.


교훈만 하나 얻었다. 스피릿 항공 비행기는 연착이 일상이고, 입국심사장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최소 5시간의 여유를 두고 환승할 것. 실제로도 실천하고 있다.




2번은 게이트가 갑작스럽게 바뀌며 연착되었다고 직원에게 들었다. 다만 연착 사실이 출발 10시간 전에 공지되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 별로 궁금하지는 않고, 이 비행기의 경우, 그래도 전에 배운 교훈을 십분 활용해 애틀랜타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아예 저녁에 잡아놔서 문제는 없었다. (새벽 5시 도착. 오후 5시 출발. 연착이 몇 시간 되거나, 아예 취소돼도 안전하다.)




3번은 인재였다. 직원이 밤새 아팠다나 뭐라나. 아픈 것 갖고 뭐라 하고픈 생각은 없다. 그도 그런 것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더욱이 방송하는 직원 말에 따르면, 아픈데도 불구하고 회사 측에 밤에 전화를 해서 오전 8시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할 것 같다고 전했다고 한다. 직원의 변명은 결국 스피릿 항공에서 대체 직원을 구하지 못해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는 것. 그리고 직원이 아침에 전화해 몸이 괜찮아졌음을 알렸다며 박수를 유도했다.


말을 듣자 하니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다. 백업 플랜의 부재. 어디 깡촌에 박혀 있는 공항도 아니고 미국 내에서 가장 운송량이 많은 공항에 대기 직원이 하나 없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았다. 당장 글을 쓰는 오늘 애틀랜타 공항에서 출발한 스피릿 항공편이 40개였는데, 대기 인원이 하나도 없다니... 믿을 수 없었다.




여행이라고는 국내 여행밖에 안 다니는 대다수 미국인 친구들과 그래도 그나마 통하는 비행기 관련 조크가 스피릿 항공 조크다.


어디 간다 말을 꺼내고 스몰 토크를 주고받다 프론티어로 간다 하면, 괜찮겠냐 걱정해 주고, 젯블루로 간다 하면, 그렇군 정도의 반응을 보이지만, 스피릿 항공은 다르다.


반응이 실질적으로 둘 중 하나인데,

1. You sure about that? (확실해?), 혹은 2. You know, you'd never fly with spirit. (아무리 그래도 스피릿은 아니지.)로 요약될 수 있다.


결론.


1.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 아닌 다음에야 푼돈 아끼자고 스피릿 타지 말자.

2. 만에 하나 환승해야 할 경우가 있다면 넉넉히 4-5시간은 잡자. (그리고 위탁 수하물은 어느 경우든 안 맡기는 게 답이다. 위탁 수하물이 필요하다? 그럼 메이저 항공사 이용하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NEVER EVER FLY SPIRIT.


유럽 분교 캠퍼스에서 학기를 보내며 올 한 해는 더 이상 스피릿 항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묵은 체중이 다 내려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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