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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May 21. 2020

“글이 밥 먹여 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 언젠가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이다. 나는 글로 먹고살고 싶다. 이 생각의 시작은 <광고 천재 이제석>이라고 하는 한 책에서 시작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냐고? 그렇지 않다. 그는 글이 아니라 이미지로 생각을 전달하는 디자이너다. 그리고 광고인이다. 그러니까 시작은, 글 잘 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광고’라고 하는 분야에 대한 관심에서부터다. 어떤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 내기, 그 아이디어를 표현해내기. 나는 광고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석은 디자인을 잘했다. 나는 그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광고일이란 무엇인가?


네이버에 ‘광고회사 직업’ 식의 검색어를 입력했다. 지식인에 누군가 질문해둔 글이 있었다. 그리고 답변으로 광고회사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 있었다. 그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카피라이터’였다. 디자인을 꼭 잘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었고, 다른 직업들보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었고, 국어 점수가 좋은 학생이었으니까. 그래서 ‘카피라이터’를 장래 희망으로 정했다. 카피라이터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의 검색과 카피라이터와 관련된 책을 읽고 낸 나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카피라이터는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이미 글 쓰는 일에 거부감은 없는 터였다. 독후감이니, 백일장이니 하는 것에 참여하기만 하면 상을 타는 학생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맹점은 나는 50명이 채 되지 않는 친구들과 경쟁하는 ‘우물 안 개구리’였음이다. 촌에 있는 학교를 다닌 탓이었고, 그 학교에서는 한 학년이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다 한 학년이 300명이 넘는 학교로 진학하였다. 자그마치 경쟁 인원이 600% 상승한 것이다. 여기서도 글 쓰는 것에 두각을 나타낸다면 나는 글로 먹고사는 것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그땐 하지 않았다. 그저 글 쓸 일이 생기면 무작정 쓰는 식이었다. 그렇지만 본의 아니게 글 쓰는 일에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 번은 국어 수업 시간이었고, 한 번은 재학생 대표로 졸업생 송사를 할 때였다.


국어 시간의 일은 이러했다. 선생님께서 ‘신화’에 대한 과제를 내주셨다. 아마 신화의 특성을 반영하여 내용을 창작하는 과제였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신화란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였으니 어떤 식으로 과제를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다 한밤 중이 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신화의 주인공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엄마의 화장대에 놓여 있어 눈에 띈 ‘향수’였다. 여전히 잘 알지 못했지만 향수는 각각의 브랜드가 따로 있음을 알았고, 향수마다 다른 향이 날 것이라 추측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향수 브랜드명을 검색하고, 브랜드명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신화 속 캐릭터들의 특징으로 바꾸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향으로 퍼져나가 세상은 창조되리. 향과 향의 싸움으로 세상은 다양한 향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 세상은 바로 펄퓨미아. 선생님은 내 글을 보고 신화의 특성들이 아주 잘 반영된 훌륭한 글이라 칭찬하였다. 내 글은 다른 반에도 공개되는 호사를 누렸다.


다음은 재학생 대표로 졸업생들을 떠나보내는 송사를 할 때였다. 전교 부회장이라 졸업식 때 ‘송사’라는 것을 읽어야 했다. 그 대본을 직접 써야 했다. 이번에는 한밤 중을 다 보내고도 짧은 분량의 송사를 미처 써내지 못했다. 밤을 새우고, 아침은 밝아오고, 곧 학교는 가야 했다. 제시간에 학교에 가기 위해서 남은 시간은 15분 남짓. 그때부터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되었다. 그 15분 만에 글을 다 써낸 것이다. 학교를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졸업할 선배들이 공감할 이야깃거리가 무엇이 있는지를 그 시간에 다 쥐어 짜내어 적은 것이다. 그렇게 적은 대본으로 졸업식에서 송사를 하기 시작했다. A4용지 1장 분량의 대본에는 학교 선생님들의 별명을 적절히 섞어 ‘희’를 담아 졸업식 현장에 있던 모두를 빵 터뜨렸고, 그 별명을 평소 좋아하지 않던 선생님은 아마 ‘노’했으리라. 그럼에도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었음을 상기시켜 ‘애’를 담았으며, 그 순간 모두가 즐거웠으니 ‘락’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희로애락을 표현했더니 십 년 이상을 교직에 몸 담아 오셨던 선생님들이 지금까지 들은 송사 중 가장 인상적인 송사였다며 칭찬해주었다. 그때 비로소 ‘아 내가 글을 좀 잘 쓰는구나.’를 실감하였다.


그러나 지금, 돈을 벌고 있지만 그것이 ‘글로 하는 일’은 아니다. 해서 ‘글로 먹고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광고를 공부하는 신문방송학과를 진학하여 광고에 대한 꿈도 키웠으나, 지금의 업이 광고라고 할 순 없으니 결국, 학창 시절에 품었던 장래희망에 대한 것들이 직업적으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글쓰기에 대한 나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도 툭 끊기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한다. 퇴근하면 조금 있다 자야 하고, 자고 일어나면 출근한다. 지루한 하루의 반복이었다. 이 안에는 새로운 소재거리가 없었고, 아니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글로 표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루했고, 지루하니 몸이 더 늘어졌다.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힘도 없었다. 이미 하루 종일 사무실 모니터를 지켜보고 온 탓이었다. 눈은 피로했고, 그래서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러다 요즘은 퇴근 후 서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하루를 이겨내는 방식으로 ‘책 읽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집이 아닌 곳에서. 집에서는 결국 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점은 그야말로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글로 써놓는가 하면, 정말 꼭 필요했던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카피라이터가 쓴 글이 있는가 하면, 방송 작가나 작사가나, 그야말로 작가가 쓴 글들이 가득했다. 그런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결국 나는 ‘글로 먹고사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니까. 그런 생각에 오늘은 퇴근 후 집으로 향하지 않고, 오늘은 서점에 가지도 않고, 자리를 잡아 글을 쓰고 있다. 최대한 꾸준히, 최대한 정직하게 글을 써낸다면 ‘글로 먹고사는 사람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누군가 ‘글이  먹여 주냐?’ 하면, ‘물론이지!’ 하며 대답할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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