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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Mar 08. 2020

여름처럼 지낸다.

아직 겨울이지만.

여름처럼 지낸다. 창문은 활짝 열어두고 민소매 티에 헐렁한 바지를 입는다. 얼음 넣은 음료수를 책상 위에 두고, 선풍기를 튼다. 창문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볕에 방 안을 부유하는 먼지가 곁눈짓하고, 일렁이는 바람결엔 얇은 이불을 찾는다. 공사장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빗자루로 거리를 쓸어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별 것 한 것 없는 일요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어두워지고 밤이 깊어지고 나면 일찍 집을 나서야 하는 월요일. 지루한 평일의 시간. 가엾고 외로운 방은 또 홀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월화수목금. 그리고 토요일. 집에서의 시간. 별로 다를 바 없는 주말. 문 밖을 나서지 않는 하루. 일어나 먹고, 보고, 자고, 먹고, 정리하고, 자고.

푸르름은 없지만 여름처럼 지낸다. 얇은 옷에, 얇은 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 살짝 녹은 얼음 탓에 음료는 밍밍해진다. 햇볕이 옅어지면 공기는 서늘해지고, 그제야 창문을 닫는다. 여름처럼 지낸다. 아직 겨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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