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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Feb 18. 2020

자가 격리 보고서


2월 10일  월요일, 0일차, 23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호텔의 헬스장 회원은 자가 격리를 요함. 일시 14일까지 4일.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동기 한 명이 나를 찾음. "ㅇ헬스장 다니는 중이냐." "그렇다." 그러자 14일까지 자가 격리를 전달받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23번째 확진자가 헬스장이 호텔에 묵은 탓. 직접 접촉자는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가 격리. 이번 주 남은 시간 동안. 팀장께 이야기를 전하고 퇴근 준비. 집으로 돌아오며 4일, 아니 주말까지 6일간의 격리를 준비하며 먹을거리를 주문. 먹을거리는 내일 아침에 도착할 예정. 읽을거리는 아침마다 신문이 도착할 예정.



2월 11일 화요일, 1일차, 자가 격리의 첫날. 다른 사람들은 출근하고 나는 집에 남음.



새벽 배송으로 주문해둔 먹을거리와 매일 아침 도착하는 조간신문 중 먼저 도착한 것은 먹을거리. 식량이 먼저 보충됨. 1시간쯤 지나, 신문도 도착. 먹을거리와 읽을거리, 자가 격리 준비 완료. 첫 끼니는 배추와 시금치를 넣은 된장에 누룽지를 끓여 먹는 것.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여유롭게 요리 시작. 된장과 고추장을 풀고 후추와 소금을 넣었지만 맹숭맹숭한 맛. 육수가 아니라 맹물로 물을 끓인 탓. 그래도 시금치와 배추를 넣고 다시 끓이니 대충 먹을 수 있는 맛. 맹숭맹숭한 자가 격리의 시작. 아침에 도착한 신문도 있었지만, 하나 더 추가된 읽을거리는 그자비에 드 메스테르 저의 <내 방 여행하는 법>. 이유는 다르지만 집에 격리된 저자와 나를 처지를 생각하며 책을 읽음.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그만의 정의. 육체는 동물성이며, 영혼에 이끌리거나 따로 움직이기도 한다는 점이 인상적임. 그에 따라 나의 동물성은 자가 격리 기간 동안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라고 영혼이 생각함.



2월 12일 수요일, 2일차, 주부의 활동을 시작함.



배달 서비스를 왕성하게 이용 중. 배달로 주문해둔 냉동 피자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 역시나 배달로 주문해둔 나물 반찬을 활용해 나물 비빔밥으로 점심 겸 저녁을 해결. 집에 있다면 해야 하는 일상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 라디오를 틀어두고, 세탁기를 돌림.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함.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따뜻한 차를 마심. 동시에 낮잠을 잠. 단조로운 활동으로 격리 2일차를 보냄.


2월 13일 목요일, 3일차, 띵동, 배달을 기다리게 됨.



어제보다 더 단조로운 활동이 시작됨. 설거지, 청소, 식사 준비.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집안일'을 모두 완료함.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심심한 상태가 됨. 심심할 때 발생하는 내 동물성의 행동은 낮잠. 이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문턱을 넘는 일. 그래서 배달을 기다리게 됨. 주부들이 인터넷 쇼핑이나 홈쇼핑을 애용하는 이유를 알게 됨. 미리 주문해둔 1인용 소파가 도착하지 않아 애달프게 됨. 그나마 집 안에서 책장 위치를 바꾸며 시간을 보냄. 잠이 오지 않은 저녁에는 다큐 영화 <집의 시간들>을 시청함.


2월 14일 금요일, 4일차, 먹통이 됨.



생산성이 0에 수렴함. 처음으로 이용한 1만 5천 원짜리 반찬 배달은 새벽에 미리 도착해 있었고, 반찬을 정리하는 일 외에는 새로운 일이 없었음. 밖은 미세먼지 때문에 쉬이 창문을 열지 못함. 단조로움을 깨고자 팟캐스트를 틀었으나, 광고를 기다리는 와중에 휴대폰이 셧다운 됨. 동시에 노트북도 셧다운 되어 기계들이 먹통이 됨. 그 때문에 모든 의욕을 잃고 낮잠을 잠. 아침과 점심을 먹고 이미 배부른 상태였지만, 심심한 저녁을 이기기 위해서 라면을 끓여 먹음. 배가 왕창 부른 상태로 하루를 마무리. 필요 없었던 저녁이었던 것 같은 죄책감. 이건 모두 자가 격리를 하며 기능이 먹통이 된 탓.


2월 15일 토요일, 5일차, 공식적인 자가 격리는 어제부로 종료.



공식적인 자가 격리는 어제부로 종료. 주말에 예정된 일정은 있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속에 불참하기로 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이 가능성이 있기 때문. 주의를 요하는 일.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의 연락에도 집을 나서지 않음. 비가 온다고 하여 비를 기다림. 밤이 되어서야 비가 내리기 시작. 자가 격리하는 앞 며칠 동안에도 비가 왔었으면 하는 생각이 듦. 어차피 밖을 나가지도 못하니 빗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미세먼지도 씻어줬을 테니. 하지만 비는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오고 그친 상태. 


2월 16일 일요일, 6일차, 주말도 자가 격리는 현재 진행 중.



자가 격리를 해제하고 밖으로 나갈 예정이었으나 비를 핑계로 나가지 않음. 지금은 비가 눈으로 바뀜. 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만은 아닌 자가 격리. 돌이켜보면 나는 주말마다 자가 격리를 하는 편. 집돌이 인 탓. 어찌 되었건 자가 격리는 현재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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