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않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해군인 내가 이번 토요일에 외박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휴대전화 군정지를 풀지 않았더라면 나는 문자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문자를 대신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도 나는 토요일에 외박을 나왔고, 휴대전화의 군정지를 풀었다. 때마침 그날 저녁, 울리지 않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고등학교 후배에게서 한 통의 문자가 온 것이었다.
내용은 역시 같은 고등학교의 후배인 본인의 동생이 고3 수험생인데 대학교 수시 원서에 접수할 자기소개서를 한번 봐달라는 것이었다. 워낙 고등학생 때부터 입대 전까지 친구나 후배들의 자기소개서의 봐줘왔던 터라 크게 이상할 것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타이밍에 문자를 보내왔다는 게 나는 너무 신기했다.
2.3초의 외박, 군인인 나에겐 군부대를 벗어나 있는 것만으로도 꿈같은 시간,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내가 부대가 아닌 밖에 있는 시간에 맞추어 나에게 연락을 준 기가 막힌 후배를 위해서 시간을 쪼개어 자기소개서를 봐주기로 하였다.
부탁을 위해서 문자를 한 통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일은 어찌 보면 정말로 사소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상황에 따라선 다르게 받아들여짐은 당연한 일이다. 군인인 나에겐 이번 '기가 막힌 타이밍'은 단지 문자를 주고받는 사소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학교를 졸업한 나를 떠올려준 후배와 연락이 통한 이 순간, 이 타이밍은 소중하다. 그래서 이 순간을 간직하려 이 순간을 글로 남긴다. 당신에게도 기가 막힌, 소중한 순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때는 언제였는가?
글을 쓰고도, 글을 그리기도 하는 (지금은 외박 중인) 군인. '빛글로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