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운 반, 해치울 반.
2015년 8월 30일. 해군으로 생활한 시간과 앞으로 해군으로 생활할 시간의 딱 절반인 날이었다. 작년 9월 15일, 어리버리하게 해군에 입대하였고, 내년 8월 14일에서야 전역을 하니 3년을 걸친 해군 생활의 절반인 30일은 이 날을 기념하여 딱히 큰 일을 치룬 것은 아니지만 군생활이라는 특수한 오랜 시간의 중간인 탓에 의미가 남다르다.
입대 때보다 10kg 가량 몸무게는 줄었고 계급장은 3줄로 늘었다. 늘어난 계급장의 줄만큼 군대 안에서의 여유도 늘었고 덕분에 생각할 시간을 많아졌다. 하지만 막상 생각할 시간이 늘어나니 더불어 늘어지는 건 나의 몸뿐이었다. 오히려 시간 없었던 이병, 막내 때가 생각이 더 많았었다. 그때 생각들을 글로 남겨뒀어야 하는데.
해군에서 나는 전산병이다. 대부분의 전산병들은 컴퓨터나 전자계열의 전공자들. 그 사이에서 나는 유일한 문과생이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전산병이 되면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군생활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아이러니하게도) 군 내에서 내가 주업무로 하고 있는 일은 음향장비와 방송장비를 다루며 회의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물론 전산병으로써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각종 이과적인(기계적이라고나 할까?) 일들을 하면서 말이다. 방송국에 취직하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국에서 하는 업무(엄밀히 따지자면 방송반에 더 가깝지만)를 해둠은 전공과 관련하여 후에 큰 도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입대부터 전역까지 진해에서만 군생활을 한다. 덕분에 집이랑은 대학생 때보다 더 가까운 생활을 한다. 6주에 1번꼴로 차수가 차는 외박, 그리고 중간중간 사용하는 휴가 등을 통해서 적어도 2달에 1번은 집을 찾아온다. 대학생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여 동생과 부모님과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여러 이점이 많은 군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른 전역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어쩔 수 없이 사로 잡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나가서 내가 무엇을 할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그 두려움보다도 군대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더 두려운 탓일까 나머지 절반의 시간이 얼른 흘러갔으면 한다.
하지만 시간이란 내가 빠르게 흐르라고 한다고 빠르게 흐르지는 않는 법. 남은 1년 가까운 시간동안 어떤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 뒤에야 나를 시간을 꽉 채운 보답으로 전역을 시켜줄 터였다.
해군 훈련소의 식당에서는 밥 먹을 때마다 음악을 틀어주곤 하는데(내가 훈련병일 때는 박보람의 '예뼈졌다.' / AOA의 '단발머리' / 레이디스코드의 'KISS KISS') 이전 절반 간의 군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라면 이 음악을 꼽힐 터였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어떤 꼽힐 만한 일들로 채워지려나? 나중에 이를 손꼽을 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글은 마무리 짓는다.
글을 쓰고도, 글을 그리기도 하는 (지금은 외박 중인) 군인. '빛글로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