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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Sep 21. 2020

협죽도(주의, 방심은 금물) - <자가 격리 보고서>

여름_8월 12일의 탄생화


L모씨가 남긴 <자가 격리 보고서>가 전해져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집 안에서만 보내는 일상은 단조로웠으며 생산성은 0에 수렴한다고 합니다. 집 안에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집안일을 통해 주부의 활동을 수행하였으며 공식적인 자가 격리 기간이 지난 이후에도 그 생활은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 보고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시죠.


2월 10일  월요일, 0일 차, 23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호텔의 헬스장 회원은 자가 격리를 요함. 일시 14일까지 4일.


L씨의 자가 격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23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호텔의 헬스장 회원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습니다. 직접적인 접촉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사로부터 자가 격리를 요청받은 것인데요.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전달받은 자가 격리 요청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말까지 6일 동안의 격리가 예정되었습니다. 이에 L씨는 격리를 대비해 먹을거리를 인터넷으로 주문해두는 등의 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2월 11일 화요일, 1일 차, 자가 격리의 첫날. 다른 사람들은 출근하고 나는 집에 남음.


새벽 배송으로 주문해둔 먹거리는 다음 날 4시경에 문 앞에 이미 도착해있었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 꺼낸 배추와 시금치를 곁들인 된장에 누룽지를 끓여 먹는 것으로 L씨는 자가 격리의 첫날을 시작했습니다. 따로 육수를 만들어 끓인 게 아니라 맹물에 된장을 풀었던 탓에 맹숭맹숭한 맛이 났지만 시금치와 배추로 그 맛을 가리고 끼니를 시작하며 먹을거리를 해결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배달된 신문은 L씨의 읽을거리가 되어 주었는데요. 거기에 더해 그자비에 드 메스테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읽기도 했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집에 격리된 저자와 L씨의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에 해당 책을 선택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영혼과 육체를 구분하는 그자비에의 정의는 육체는 동물성이며, 영혼에 이끌리거나 따로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강한 인상을 받은 L씨의 동물성은 자가 격리 기간 동안 어떻게 움직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영혼이 생각했다고 합니다.


2월 12일 수요일, 2일 차, 주부의 활동을 시작함.


배달 서비스를 왕성하게 이용하던 L씨. 배달로 주문해둔 냉동 피자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합니다. 역시나 배달로 주문한 나물 반찬을 이용해 나물 비빔밥으로 점심 겸 저녁을 해결합니다. 그리고 집에 있다면 꼭 해야 하는 일상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라디오는 옵션이었고, 세탁을 위해 세탁기를 돌리고,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합니다.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따뜻한 차르 마시며 낮잠을 빠지기도 하는데요. 단조로운 활동으로 격리 2일 차를 마무리했다는 L 씨였습니다. 전날보다 단조로운 활동을 시작한 L씨. 설거지, 청소, 식사 준비까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집안일을 모두 완료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심심한 상태에 이르자 L씨는 결국 낮잠이라는 선택을 합니다. 이런 단조로움을 깨뜨릴  수 있는


2월 13일 목요일, 3일 차, 띵동, 배달을 기다리게 됨.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는데요. L씨는 그것이 '배달을 기다리는 일'이라 이야기합니다. 주부가 인터넷 쇼핑이나 홈쇼핑을 애용하는 이유를 몸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미리 주문해둔 1인용 소파가 도착하지 않아 가슴 졸이게 된 L씨. 그나마 책장의 위치를 바꾸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잠이 오지 않는 저녁에는 다큐 영화 <집의 시간들>을 시청하며 마무리합니다.


2월 14일 금요일, 4일 차, 먹통이 됨.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가 격리는 생산성이 0에 수렴하는 활동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이용해본 반찬 배달이 새벽에 미리 도착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새로운 일이 없었던 탓입니다. 밖은 미세먼지가 가득해 창문을 열지도 못하고, 그나마 단조로움을 깨고자 실행한 팟캐스트는 휴대폰이 강제 종료되는 탓에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노트북도 셧다운 되면서 L씨의 기계들의 먹통이 되자 L씨도 함께 의욕을 잃고 낮잠에 빠지게 됩니다. 아침과 점심을 먹고 이미 배부른 상태였던 L씨. 심심함을 이긴다는 이유로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배가 왕창 부른 상태로 마무리하는 하루. 필요 없었던 저녁이라는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L씨는 이 모든 것이 자가 격리를 하며 기능이 먹통이 된 탓이라 했습니다.


2월 15일 토요일, 5일 차, 공식적인 자가 격리는 어제부로 종료.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공식적인 자가 격리는 전날로 종료된 L씨. 주말에 예정된 일정이 있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참하기로 하고 비가 온다는 소식에 비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비는 밤이 되어서야 내렸는데요. 자가 격리를 하는 동안 L씨는 비라도 실컷 내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합니다. 어차피 밖을 나서지도 못하니 빗소리라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까지 씻어줬을 테고요. 하지만 비는 토요일 저녁에서야 왔고, 그마저도 일요일 새벽엔 그치고 맙니다.


2월 16일 일요일, 6일 차, 주말도 자가 격리는 현재 진행 중.


L씨는 자가 격리를 완전히 해제하고 밖으로 나갈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가 눈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집을 나서지 않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진행하던 자가 격리는 끝이 났지만, 다른 이유로 다시 자가 격리를 진행한 것인데요. L씨는 돌이켜보면 본인은 주말마다 자가 격리를 하는 편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그건 모두 집돌이인 탓인데요. 어찌 되었건 본인의 자가 격리는 계속된다는 말로 자가 격리 보고서의 말미를 장식합니다. 


_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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