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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라이세이 Aug 27. 2021

'미생'과 '미치지 않고서야'

일단, 오늘도 버텼다




'미'로 시작하는 오피스 드라마 중 가장 유명한 건 아무래도 웹툰 '미생'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이 아닐까?


우리라고 그랬다.


'장그래(빌런임.)라는 낙하산 인턴이 과장, 차장, 전무까지 싸그리 밀어버리는 드라마' 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긴 하지만 취업준비생에겐 회사생활에 대한 로망을, 회사원에겐 공감을 사는 역할을 했다. 학생일 때 웹툰 '미생'으로 처음 미생을 접하고 드라마까지 봤던 나는 이제 월급을 받는 3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미생'의 맛을 보라는 것인지 유튜브 알고리즘은 '미생' 클립을 마구마구 추천해주었다.


3년 차 직장인이 되어 다시 본 '미생'의 맛은 "저렇게 피 터지는 사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https://www.youtube.com/watch?v=gBh4aK5uLmE&t=141s

그러다 문득 미생 클립 사이에서 '미치지 않고서야'라는 드라마 클립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 또한 '미'로 시작하는 오피스 드라마였다. 정재영과 문소리라는 배우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보자마자 '아, 이건 연기력이 짱짱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만으로 드라마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엔 모자랐다. 그러다 정재영(최반석 역)이 이상엽(한세권 역)에게 뒷통수를 맞고 시연회를 앞둔 로봇청소기를 부수는 장면(실제로는 다른 로봇청소기다) 클립을 보면서 '이 드라마는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통수를 치는 사람에겐 사이다를 보내야지! 라는 생각에서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버티고, 버티고, 버텨서.

그렇게 정주행 시작한 <미치지 않고서야>는 '그렇게 버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버티고, 버티고, 버텨서' 늙다리가 되어버린 집안의 가장들도 결국엔 회사의 오래된 부품으로 여겨지는 이야기.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또 버티려는 사람'과 '얍삽하게 기회를 엿보는 사람', '위기를 기회로 돌파하는 사람', 그리고  '포기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 모습 속에서 결국에 월급쟁이인 나도 '언젠가는 나도...'라는 걱정이 밀려든다. 그런 한편,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하면서 월급쟁이지만 항상 다른 기회를 엿보고자 하려는 나의 노력에 가산점을 준다. 재테크 관련 책을 보고, 월급쟁이가 아닌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노력 말이다.


https://maily.so/today.study.note

드라마에서 최반석 수석(정재영)은 '시스템 엔지니어'로의 길을 모색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명전자라는 가전회사에서 20년 넘게 '하드웨어 개발'을 하던 커리어를 뒤로 하고, 현 시점에 가장 '쓸모 있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개발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다. 같은 능력이면 젊은 사람을 사용하려는 것이 기업의 생리. 프로젝트 경험을 추가하여 이직을 하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여러 일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각 에피소드에서 등장한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다' 마지막회가 되어서야 최반석 수석은 사직서를 쓰고 회사를 떠난다.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기대하던 이직도 물거품이 되어 말 그대로 '맨몸'이다. 대신 아버지의 과수원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창업을 하는 선택을 한다. 치킨집이나 닭갈비집이 아닌 선택을 하는 것만으로도 최반석 수석의 남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동참하는 당자영(문소리), 신한수(김남희), 서나리(김가은).


남다르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 최반석.



마지막화엔 후루루룩 드라마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통장에서 돈을 다 까먹지만 마침 엔젤 투자자를 만나고, 한명E&C와 계약이 성사되어 승승장구 하는 듯 하였으나, 계약이 엎어진다. 하지만 이때 마침 스타트업 공모전에 나가서 1등을 한다. 그리고 마침 그 기술이 없으면 원하는 M&A를 하지 못하는 한명전자에게 50억에 기술을 판매함으로써 해피엔딩.

더욱 해피엔딩인 것은 50억을 유치함으로써 '성공한 벤처기업'의 반열에 오르는 반스톤 컴퍼니(최반석이 창업한 회사)에 한명전자에서 늙다리로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신세였던 최반석의 동기격의 친구들이 웃으면서 업무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성공한 벤처기업가' 최반석은 밤 늦게까지 자신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신한수(김남희)는 이렇게 말한다.


수석님은 일하는게 그렇게 좋으세요?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포함되지만 판타지의 성격도 갖춘 이야기라고 평하고자 한다. 뒷통수 치는 팀장에게 사이다를 날리고,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스타트업이 단번에 50억을 유치하며 회사를 확장하고, 밤 늦게까지 자발적으로 일 할 정도로 일에 미치고. 이 얼마나 판타지적인 이야기인가. 그런 반면에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고, 무시 당하고, 정치 싸움에 휘둘리고. 이 얼마나 현실적인 이야기인가. 이러나저러나 '미치지 않고서야' 버티기 힘든 노릇이다. 그래서 드라마 제목도 '미치지 않고서야'를 지은 모양이다.

그러면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 회사를 드라마 속 인물들처럼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어딘가에 '미칠' 분야가 있는지, 그리고 최반석의 '개발 실력'과 같은 기술력은 있는지. 아직까지는 어디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해서 여전히 월급쟁이로 월급을 받으며 기다린다.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서이고, 미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이고,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때까지는

일단,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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