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빅 이슈>라는 잡지이더라.
바야흐로 2013년 여름, 그러니깐 군대에 오기도 1년 전 여름이었다. 학교는 여름을 맞아 방학을 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지새우던 새내기 대학생이던 나는, 갑자기 생겨버린 공백의 시간을 어쩔 줄 몰라 그저 방에서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글들만 이리저리 들추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하루를 가득 채웠던 시간의 관성 탓인지 공백의 시간을 견디다 못한 나는, 이 비어버린 시간을 채울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그때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은 선배가 SNS에 올린 촬영 도우미를 찾는다는 글. 시간은 하루 동안. 내 무료한 시간을 채울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유레카! 게다가 촬영을 마치면 고기도 사준다니 일석이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를 채워버릴세라 나는 곧장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여름의 하루 동안 선배의 동아리 제출용 다큐멘터리 촬영의 보조가 되었다.
말이 촬영보조지, 사실은 다큐멘터리 속의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 이슈>를 판매하는 '빅판', 을 돕는 봉사활동가 '빅돔'. 이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나는 하루 동안 '빅돔'이 되면 됐다. 학교를 오가며 지나는 신촌역 6번 출구의 계단에 세워져 있던 <빅 이슈>를 본 적이 있었다. 유명 연예인 사진이 커다랗게 표지에 인쇄되어 있었으므로 그저 '연예 잡지'이겠거니, 하고 지나치기만 했지, 딱히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잡지가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였다니, 하는 새로운 마음에 그제서야 그 옆에 서서 잡지를 팔고 있던 빨강조끼 입은 아저씨에게도 눈길이 갔다. 그러니깐 나도 빨간조끼를 입고 그 아저씨 옆에서 함께 <빅 이슈>를 파는 일을 돕는다고 생각을 하면서부터 말이다.
촬영 당일 아침, 우리는 영등포 시장으로 먼저 향했다. 촬영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빅 이슈> 사무실이 그곳에 있었고, 빅판 아저씨들의 하루도 그곳에서 잡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므로. 그리고 우린 신촌역 6번 출구, 매일 지나던 그 길 위에 커다랗게 유명인들의 사진이 인쇄된 표지의 <빅 이슈>를 계단마다 놓았다. 그리고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 이슈>를 판매하고 있습니다."라고 크게 외쳤다. 그에 비해 빅판 아저씨는 한 손에 <빅 이슈> 잡지를 들고서 그저 "빅 이슈~ 빅 이슈~"라고 다소 읊조리듯 말할 뿐이었다.
뜨거운 여름이었고, 방학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지하도에서 태양 볕으로 나서는 신촌역 6번 출구로 지나는 사람은 뜸했다. 간혹 지나는 사람들은 계절학기 수업을 향하는 학생들로 수업에 늦었는지 통로의 한쪽에 놓인 잡지를 눈 여겨 보는 이는 없었다. 급하게 학교로 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설 뿐이었다. 큰 소리로 잡지에 대해 알리려 떠들어 대도, 사람들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 탓에 우리 목소리가 들릴 틈은 없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사람들의 귀에 있는 이어폰을 빼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그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진 않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잡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으므로 잡지 옆에 서 있던 나는 점점 소외되어 갔다. 큰 소리로 외치건, 작은 소리로 읊조리건 사람들은 길가에 놓여진 잡지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저씨처럼 읊조리는 게 조금이나마 경제적인, 그나마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나는 현명하기 보단 의지 넘치는 열혈 빅돔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보이기만 하면 잡지를 알리려, 잡지를 팔아보려 큰 소리로 계속 떠들어 댔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 이슈>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선배는 이런 내 모습을 계속해서 영상에 담았고, 틈틈히 사진도 찍어 SNS에 올리는 등 나름의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우린 그저 단 몇 권의 잡지만을 팔았을 뿐이었다. 빅판 아저시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자리를 옮긴다고 하셨다. 주섬주섬 계단에 올려둔 잡지를 걷고 우리는 신촌역 6번 출구에서 서강대학교 정문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저씨는 매일 그러했듯 학교 앞 카페 길목에서부터 돌담 위에 잡지를 얹으셨다. 나도 따라 그 위에 잡지를 가지런하게 놓고 또 큰 목소리를 내려 했다. 그런 내게 아저씨는 우선 물이나 한 잔 마시고 하라며 자연스레 카페로 들어가 물 한 병을 얻어 오셨다. 그리고 무던히 말씀하셨다.
"잡지 하나를 팔면 반은 사무실에 주고, 반은 내가 가져요. 그런데 사람들이 사실 잡지를 잘 안 사요. 가끔가다 몇 명 사주면 고마운거지. 여러분들처럼 가끔 도와주러 오는 학생들 있으면 그저 그런 걸로도 힘이 돼요. 잡지 안 사줘도 지나가며 인사 해주는 사람들도 고맙고. 그러다가 한 번씩은 꼭 잡지를 사주기도 한다니까......."
예전에는 사업을 하시기도 하셨다는 아저씨는 <빅 이슈>를 파실 때처럼 또 다소 읊조리듯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게 행복하시다면서. 읊조리는 목소리였지만, 결코 자신 없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종종 우리 앞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선후배, 동기들이 지나갈 때면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에게 뭐하냐 물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지금이 기회다.'라는 생각으로 <빅 이슈>에 대해 설명하고, 잡지 구매를 권유했다. 그런 식으로 몇 권의 잡지를 더 팔 수 있었고, <빅 이슈>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 그전까지 그들은 <빅 이슈>의 목적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나 역시 그래왔듯이. 그런 사람들은 역시나 흘낏 옆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본인이 가려했던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러면 나는 또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으며, 조금 외로워졌다.
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을 때, 그곳은 카페 앞이기도 했으므로 카페 손님들도 많이 지나쳤다. 그들의 손에는 오천 원짜리 커피가 들려 있었고, 잡지의 가격 역시 오천 원이었다. 빨간조끼를 입고 <빅 이슈>를 파는 빅돔으로 있었더니, 그 커피 한 잔이 잡지 한 권처럼 보였다. 그래서 괜히 커피는 들었지만 잡지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샘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나도 그전까진 그러했었다는 생각이 들어 움찍하며 그 자리에 그저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오천 원으로 잡지를 사서 읽거나 커피를 사 마시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자유 선택이었고, 잡지에 대해 전혀 흥미가 없거나 <빅 이슈>라는 잡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선뜻 잡지를 사지 않는 것 일수도 있었으므로. 그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조금 힘이 빠졌다. 그래서 아저씨처럼 읊조리듯 목소리가 줄어갔다. 그래도 조금이라 많은 사람에게 잡지를 알리자는 생각으로 목소리를 키웠다. 한명이라도 더 <빅 이슈>에 대해 알기를 바라면서.
시간이 지나고 아저씨는 잡지를 정리하셨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 도와주고 덕분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잡지에 대해 알았을 거라고, 고맙다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수레에 모든 잡지를 실고선 자리를 뜨셨다. 그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잡지에 대해 알게 되었을까. 내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귀에 들어갔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다만 몇명이라도 이 잡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길 바란다. 그래서 아저씨에게 다만 몇명이라도 잡지에 대해 물으면 아저씨는 조금 작은 목소리겠지만, <빅 이슈>에 대해 설명하실 것이었다. 결코 자신없는 목소리가 아닌 읊조리는 그 목소리로.
그렇게 내 하루 동안의 촬영 도우미 일을 마쳤다. 영상은 무사히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많은 사람이 그 영상을 보게끔 SNS에도 올렸던가. 어쨌든 그리고 나는 방학동안 다시 무료해졌다. 그렇다고 다시 빅돔을 자원해서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종종 학교를 나가게 되면, 아저씨에게 먼저 인사를 드렸다. 그러면 아저씨는 또 조금 힘이 나시겠지.
지금도 아저씨가 그곳에서 <빅 이슈>를 팔고 계시는지는 모르겠다. 그 이후로 내가 군대에 입대하기 직전까지는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었는데, 지금도 아마 그 자리에 서서 "빅 이슈~ 빅 이슈~"하고 지키고 계시지 않을까. 그러면 다시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빅 이슈>를 한 부 사서 읽어야 겠다. 나라도 <빅 이슈> 정기 구독자가 되어 그 자리에서 덜 외롭게 서 계시게 해야겠다.
글을 쓰기도, 글을 그리기도 합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영글거림'이라는 별명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영재+오글거림, 어쩌면 이것과 느낌이 비슷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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