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쉰다섯의 직장인이고, 엄마는 여든다섯이 되셨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배움이 짧은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셨고, 남편 보필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쉴 겨를이 없는 중에도 늘 무엇이든 배우시려 하셨다. 공부를 위해서 온양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학교를 다니신 적도 있을 정도이다. 10년 전부터는 틈틈이 글을 쓰시기 시작해서 창작과 비평지에 수필을 올리시고 있다. 또, 코로나 이전에는 중국어며 캘리그래피까지 배우시기도 하셨다.
나는 그렇게 끊임없이 배움의 열망을 실천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하기 힘든 일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엄마의 생의 기억들을 같이 추억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한다.
불효 며느리
연일 폭염이다. 소나기라도 내려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외면하는 하늘이 야속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단비가 잠시 세차게 내렸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목말라 할딱거리던 식물들이 생기를 찾았다. 나도 생기가 난다. 따가운 햇볕 때문에 외출할 엄두도 못했는데 아침에 내린 비로 펄펄 끓던 대지의 열기가 식어졌기에 남편과 승용차를 타고 마냥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시골에 사놓은 마늘을 가지러 가기로 하고 시원함을 만끽하기 위해 마구 달렸다. 마늘은 차에 싫어 놓고 마늘 주인 내외와 어죽을 먹기 위해 예당저수지로 향했다.
이 분들은 농사를 지으시는 원불교 교우이시다. 우리보다 너 댓살 연배 이시어 형님 동생 하며 서로 의좋게 지내는 사이다. 가는 도중에 큰 아드님이 예산역 근방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는데 보고 싶다기에 들러 보았다.
세 놓으려고 식당용으로 잘 지었으며 세 들어 올 사람이 개업 준비로 분주했다. 장한 아드님이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라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도 없는데 철강사업을 잘하여서 궤도에 올려놓은 어엿한 사장이다.
예당저수지에 도착하니 물이 가득 차 있어 반가움에 ❛물이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극심한 가뭄으로 거북이 등이 되었을 줄로만 알았는데 다행이다 싶어 안도감마저 든다. 갈증으로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몸속으로 쪽~ 소리를 내며 물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흐뭇한 표정들이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간신이 자리를 잡았다. 예당저수지 물이 몸속에 저장된 듯 포만감이 들었지만 혀 끝을 휘감는 어죽 맛은 매콤하고 구수하다. 이 맛에 먼길 마다하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온 김에 유명한 예산 국수도 사고 장도 보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님 되시는 분이 어렵게 살았던 옛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시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몸져 누워 계실 때 약값이며 반찬 사 드릴 돈이 없어 궁리 끝에 산에 가서 약초를 캐어 팔아야겠다 하고 아이를 들쳐 없고 괭이와 자루를 챙겨서 아이를 나무 그늘에 눕혀 놓고 약초를 캤다고 한다. 아이 걱정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캐고 나면 배고픔도 밀려오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보면 점심때가 훌쩍 지나고 오후 3시경이 되어서야 무거운 약초를 이고 지고 들고 돌아오는 발길은 힘겨웠지만 약초를 팔아 몸보신용 개고기며 약을 사 드릴 생각에 마음은 기뻤다 한다. 이러기를 수차례 하면서 시아버님을 공양했다 한다. 듣고 보니 지극한 효심에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그분은 아이를 업고 가서 약초를 캐어 팔아 개고기를 사 들였다 하는데 나의 부끄러운 새댁 시절이 생각난다.
나의 시어머님이 며칠 앓고 일어나셔서 개고기를 잡숫고 싶으셨든지 보리쌀 한 말을 주시며 팔아서 개고기를 사 오라시며 이웃에 계신 종조모님을 딸려 보냈다. 그날따라 개고기가 많지도 않고 마음에 드는 것도 없고 가
격도 비싸기만 하였다. 다음 장날에 사자 하시는 종조모님 말씀에 동의하고 고등어자반과 쑥개떡만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개고기가 좋은 것이 없어서 못 사 왔다 하며 사 온 것을 내놓으니 거들떠보지도 않으신다. 종일토록 기다렸던 마음이 실망스러운 눈빛이다. 잡숫고 싶을 때 개고기 냄새라도 피워 드렸어야 했는데 못 사 온 죄스런 마음 여태껏 후회가 막심하다.
'개다리가 삐쩍 말라 주걱만 하면 어떻고 아무리 비싸도 보리쌀 한 말을 다 준들 어떠랴' 종조모님이 다음 장날에 사자라고 하셨어도 '아니에요. 사야 돼요' 하며 단호히 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이 더없이 한스럽다. 아이를 둘러업고 산에 가 약초를 캐서 시부모님 공양하신 효심도 있는데 나는 돈까지 쥐어준 거나 다름없는 보리쌀을 주셨는데 못 사온 불효 막심한 며느리임을 자인하면서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