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일, 둘째 며느리
“따르릉~” “따르릉~”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미역국을 끓여서 애비 편에 보냈으니 잘 받으시고 오늘 즐겁게 보내세요.”
인근에 사는 며느리다.
“출근하기 바쁠 텐데, 고맙기는 하다만 염치가 없구나.”
“아니에요. 어머님. 퇴근하고 와서 다시 전화드릴 게요.”
“그래 어서 전화 끊어.”
수화기를 놓을 사이 없이 연이어 벨이 울린다. 좋은 하루 보내라는 손녀, 손자의 축하전화다. 미쳐 잠이 덜 깬 채로 느닷없이 생일 축하를 여기저기서 받고 나니 정신은 몽롱한데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초인종이 울린다. 현관문을 열자 아들이 묵직한 박스 하나를 번쩍 들어 거실 마루 바닥에 올려놓는다.
방금 잠에서 깬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아들한테서 생일 선물 받았어요.”
“그럼 나는 어떡하지? 맛있는 점심이나 사줄게” 하여 점심도 예약된 상태이다.
박스를 풀어 며느리가 준비한 반찬들을 상에 차려 놓으니 수라상(修羅床) 부럽지 않다.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돈다. 우리나라의 잔칫상엔 잡채가 있어야 잔치 기분이 난다. 당면은 부드럽게 잘 삶아서 기름에 간장 설탕을 넣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게 볶아냈고, 홍 · 청 · 노랑 · 주홍 고추의 색깔이 선명하니 형형색색 가을 단풍을 연상케 한다. 목이버섯과 이외 부재료들과 참기름을 듬뿍 넣어 무친 맛이 고소했다. 집안이 온통 참기름 냄새로 가득하다. 조기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참조기를 골랐다. 기름에 튀기지 않고 조기 위에 실고추 파를 고명으로 올려놓은 다음 냄비에 쪄내었다. 살이 쫀득하고 간이 잘 맞아 조기 맛을 한층 더 높였다. 달래무침은 무를 약간 채 썰어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 맛은 코끝을 자극시켜 움츠러들었던 몸도 화들짝 깨어나는 것 같았다.
임금님이 매일 받는 수라상이 이보다 더 행복했을까? 행복의 색깔 행복의 냄새가 바로 이런 색깔과 냄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역국에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을 텐데, 아침이면 일찍 출근해야 할 텐데, 음식을 준비하느라 새벽잠을 설쳤을 며느리를 생각하니 가슴 한복판이 찡하게 울려온다.
며느리의 자상함은 한결같다. 그러지 말라 해도 시아버지 시어머니 생일 한 번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어찌나 세심한지 시아버지 생신 때에도 가족끼리 지내고 나면 저의 친정 부모님과 우리 내외가 함께 식사할 자리를 마련해주어 사돈지간의 정을 쌓게 한다. 쌍둥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힘든 일이 많았으련만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늘 우리를 챙겼다. 쌍둥이를 뱃속에 넣고 동산만 한 몸으로 복날이라면서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무거운 수박덩이를 낑낑거리며 사들고 왔었다.
사람은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마음 써 주는 사람을 잊지 못한다.
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는 퇴근하는 즉시 병원에 꼭 들러서 집에 가곤 했다. 병원에 들를 때마다 간식을 한 보따리씩 사들고 와서 병실에서 잔치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간호사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며느리 칭찬이 봇물 터지듯이 내 귀에 들린다. 이럴 때는 나는 내가 너무 우쭐하여 오버할까 봐 평정심(平正心)을 찾으려 애썼다. 병원에서 나오는 흰 밥이 맛없다며 잡곡밥과 곰국을 수시로 끓여다 주었다.
요즘 시어머니들은 며느리 눈치 보고 산다는데, 요즘 며느리들은 시금치같이 시자 들은 음식도 먹지 않는다는데, 우리한테 이렇게 효성스러운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복 중의 제일인 인연 복, 그중 며느리 인연 복은 최고인 듯싶다.
2016.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