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熱情)

by 권희일

얼마 전에 우리 내외는 방학이여서 손자 손녀를 데리고 ‘천리포 수목원’을 구경하기 위해 떠났다.

여름의 끝자락이라지만 폭염은 맹위를 떨친다. 집에서 늦게 출발해서 도착하고 보니 오후 1시30분을 가리킨다. 아이들한테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고 할아버지는 벼르셨는데 차로 돌고 돌아보며 아이들이 좋아할 메뉴를 찾아보았지만 바닷가라서 해물요리 천국이다. 하는 수없이 갖가지 해물들을 듬뿍 넣은 해물 탕으로 시켰다. 배가고파서인지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주어 고마웠고, 어른아이가 푸짐하고 시원한 해물 탕을 국물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니 황후장상 (皇后將相)도 부럽지 않았다.


방학인지라 어린아이들과 동행한 어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바다와 인접해 있어 바닷 내음까지 함께 실어와 불어주는 바람이 상큼하다.

드넓은 대지에 조성된 수목원 탐방로는 목판으로 깔려있고 나무펜스로 식물들을 분리시켜놓았다. 모란원을 비롯하여 20여개의 원(園)으로 수목들이 식물별로 군락을 이루어 서로 의지하며 자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수 백 여종의 무궁화 꽃이 무리지어 있어 장엄하기도 하며 우리를 반기며 목청껏 애국가를 부르는듯하다.


여러 곳의 물둠벙에는 가시연과 수련이 주를 이루었고, 물둠벙을 가득 메운가시연의 검푸른 잎은 기름을 발라 놓은 듯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광채를 띈다.

한 두 송이 피어난 가시연꽃들은 마치,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앉은 선녀인양 우아하고 청순한 귀족 같은 기품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연꽃은 잎. 꽃. 열매. 뿌리 모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용으로도 으뜸이다.

꽃을 보고 있으려니 별스럽게 생긴 모양새와 색상의 아름다움은 진즉이 보지 못한 꽃들이다. 수 만종의 꽃들은 이역만리에서 날아든 꽃들이라 관람객들의 마음을 흥미진진하여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바닷가 비밀정원, 다양한 식물들이 살 수 있는 공간, 해 송림이 무성하고 풍요로워 중국의 시선(詩仙) (이태백)이 자연에 심취되어 즐겨 걸었던 태백 해변은 가장 낭만적 이라할 수 있다. 낭만을 즐기면서 시 한수 읊고도 싶은데 재주 없어 ‘이태백’ 시선’의 시 한수가 떠올라 적어 보려한다.


자견(自遣)


對 酒 不 覺 暝

落 花 盈 我 衣

醉 起 步 溪 月

鳥 還 人 亦 稀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덧 저무는 줄도 모르고,

떨어진 꽃잎만 내 옷자락에 수북하네.

비틀 비틀 취한 채 시냇가의 달을 밟고 가는데,

새도 돌아가고 사람도 없고 나 혼자이구나.


시선(詩仙)이라 불리는 이유를 다시한번 알수있게 해 준다.


벤치에 앉아 땀도 식히고 기념 촬영을 하면서 중학생인 손자 손녀한테 수목원을 관람한 소감이 어땠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많은 외래종 꽃에 놀라웠고, 다양한 식물들이 어울려 있기 때문에 학술적가치가 높다고 하면서 오길 잘했다고 하였다. 역시 나도 놀라웠고 감사하다. 도대체 누가 이곳에 훌륭한 일을 했을까?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독일계 미국인 Carl Ferris Miller 한국명으로 (민병갈) 이란다. 1979년도 외국인으로는 대한민국 국민1호로 귀화하여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


그는 통역장교로 한국 땅을 밟은 이후 한국은행에 취직하면서 60여 년간 한국에 대한 운명이 시작되었다.

한국식물도감이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닳고 닳았다고 했다. 처음 시작은 농원부지로 5천 평을 시작으로 하여 외래종을 심어보았다. 심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시행착오를 수없이 격으면서 외래종을 토착화시키기에 온갖 힘을 기우렸다.


토지를 확보하려고 사재도 털어 투자도하고 민둥산을 온통 사버린 것이 18만평이나 된다 하니 그 농원 부지를 채우고 가꾸기 위해 외국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씨앗과 묘목을 들여오느라 고생은 말할 것도 없었고, 우리나라 사계절 금수강산과 풍속을 사랑했기에 조국근대화 산림녹화 기수로서 몫을 톡톡히 했다. 서해의 보물로 아시아에서 최초로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정받았다.

수목원에는 산림전문가를 양성 배출하여 전국 생태수목원 탄생에도 많은 기여를 했으며 앞으로 계속 발전하리라고 본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덕목이 뭘까? 사랑, 지혜, 소통 나는 열정이라 생각한다.

한국명으로 민병갈이란 분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고 평범한 삶을 내던지고 한국 땅에 평생 사랑과 열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었다. 값진 희생정신을 본받아 마땅하며 한없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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