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꽃의 행운

by 권희일

오랜만에 집에서 가까운 호수 공원을 찾았다.

때 이른 더위 탓인지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찰랑대는 호수에서 피서를 즐기는 오리 떼, 사람 떼들의 향연이 세트처럼 펼쳐지고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잊게 해 준다.


남녀노소가 각자 취미에 맞게 걷는 사람, 땀을 연신 닦으며 달리는 사람, 놀이기구에 시종일관 매달려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들을 뒤로하고 걷다 보니 해바라기 꽃이 보석처럼 번쩍 눈에 띈다. 내가 좋아하는 꽃이라서 기다리던 연인처럼 반가웠다. 길가에 훤칠한 키에 수수한 몸매 밝은 표정으로 해만 바라보고 서 있는 해바라기 오직 한 곳 만을 응시하며 기다리는 듯 처연해 보이기까지 한다. 냉큼 발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모 교수께서 들려주신 해바라기 꽃 씨앗의 인연으로 배필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교수님은 H일보에서 해바라기라는 수필로 등단하였고 그로 인하여 칼럼도 쓰고 H일보에 실린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짧은 글이 눈에 띄었다 한다. 맹랑한 문재(文才)에 끌려 서로가 글을 주고받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다. 매일 두 서 너 통씩 맹렬히 주고 받으며 백 여 통쯤 날렸을 즈음해서야 교수께서 사진을 보내주든가, 쉬는 날을 잡아서 한번 만나면 어떻겠느냐 제의를 했더니(?) 만나보겠다는 답장도 사진도 없었으며 난데없이 해바라기 씨앗만 보냈더랍니다. 내심으로 서운했지만 해바라기 씨앗이 봉투에서 몇 알이 쏟아져 나오자 ‘옳다구나!’ 까먹는 거로구나!’ 하고 한입에 톡 털어 널까 하다 생각해보니, 필유곡절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아 고이 모셔두기로 했다.


그 후로도 계속 편지는 계속 이어졌다. 수백여 통 날리고서야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둘이는 만날 수 있게 됐다. 여자분은 지방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교직에 몸담고 있었고 서로 얼굴을 모르니까 교수께서 해바라기 꽃무늬가 있는 스카프를 선물로 알아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교수님은 서울역에서 해바라기 꽃무늬 스카프만을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 한다. 여선생은 시골에서 첫 만남을 위해 설레는 가슴으로 올라왔을 것이다. 그야말로 극적인 만남이 이루지는 인연의 끈이 이어지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교수님의 끈기와 열정과 여선생의 지고지순한 순애보 같은 열애 끝에 애정으로 만나자는 답으로 몇 개의 해바라기 씨앗을 보내왔고 그는 이 씨앗을 하숙집 장독대 옆에 심었다. 결혼 후에도 이사를 할 때마다 해바라기를 매년 심는 의식도 잊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는 해바라기 꽃은 ‘자유인의 꽃이고 생활인의 꽃이며 마음의 꽃’ 임으로 해바라기와 해처럼 서로 바라보며 평생을 보내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을 맺게 해 준 것이 “해바라기”였다면서 해바라기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꽃을 모티프로 글밭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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