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이 물이 좋을 것 같아서 고르는데 무엇이 나를 툭 치고 지나간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며칠인지 모르게 누어만 있다가 보니 내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있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딸이 다가와서 "엄마 왜 그래?"
“얘야. 내 머리 좀 봐라! 할머니도 그냥 할머니가 아닌 호호백발 할머니잖니!”
딸이 대답하기를 "검은 머리가 훨씬 근사해. 엄마 머리에 뭐가 들어 있는 것 같애" 딸의 말을 듣고 다시 거울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한 달에 한 번씩 염색할 때에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서 끔직한 느낌이 들곤 하였다. 어차피 병상에 누워서 지내야 하는 처지이다. 힘들게 염색할 수도 없다. 나이도 이제 먹을 만큼 먹지 않았는가? 세월이 염색해준 은발이 아니더냐? 염색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머리숱이 풍성해진 느낌도 든다. 또한 염색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는데 돈도 안들이고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한 손에 막대잡고 또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그렇구나! 늙어가는 것은 막대로 가시로도 못 막는구나.
남편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울을 보니 둘의 흰 머리가 너무도 닮았다. 우리들의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어 왔던가? 돌이켜 보면 고통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둘째 아들 교통사고는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새벽녘에 소식을 듣고 병원에 미친 듯이 달려갔다. 아들의 얼굴은 눈만 빼꼼하니 온통 붕대로 감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날이 밝아 수술대에 올랐다. 안면을 심하게 다쳐서 수술이 오래 걸렸다.
8시간을 수술하는 동안 초조 불안한 마음만 바짝 타들어간다. 다행히 수술은 잘됐다고 하나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아래윗니가 8개나 나갔다고 했다. 당장 음식물 섭취도 어렵고 하여 기도를 뚫어야만 했다. 당분간 언어 소통이 안 돼 글로 써서 소통을 하는 농아가 되기도 하였다.
아들은 그때만 해도 젊어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호전되어 갔다. 한 달 동안 병원 생활에 여학생들의 빗발치는 전화와 문병이 이어졌다. 총각 선생으로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충천할 때라 사고 소식에 발을 동동 구르는 여학생도 다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머리를 다치지 않아 후학양성에 열성을 다하고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
백발이 성성한 우리부부는 걷기위해 집을 나선다. 걸음이 느린 나는 남편을 따라 잡기위해 뛰다보니 땀이 난다. 운동을 제대로 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남편과 함께한다는 것이 즐거움이다. 이것이 행복이지 별 다른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부부로 만나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온 50여년 세월을 반추해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안 좋은 일보다 궂은일이 많았지만 신뢰가 바탕이 되어 서로 의사를 존중하면서 인내와 사랑의 결정체를 만들어 냈다고 보아진다.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세월이 염색해준 은발을 소중히 여기며 보람되게 살아가련다.
2015.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