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따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곧장 나아가면 돼요."
※ 이직하고 정신없어서 그동안 업데이트를 못 했습니다...
조금씩 다시 가보겠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그래서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무슨 요일이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어느 평일날 오후 팀장님이 부르셔서 회의실로 향한 내가 들은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손짓으로 나를 자리에 앉으라고 한 팀장님은 본인도 함께 맞은편 자리에 앉은 후 약간 머뭇거리며 - 아마도 연기였을 것이다. -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승환 씨는...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을 것 같아."
마치 모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올 법한 말이라 그 장면이 연상되어 처음에는 그냥 웃음이 나왔고, 나중에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비록 수습 기간이었지만 자발적 야근도 불사하며 열심히 회사에 적응하려고 했던 터라 내가 느꼈던 충격은 꽤 컸었다. 팀장님은 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린 후 말을 이어갔다.
길고 구질구질한 팀장님의 말을 짧게 요약하자면, '내가 일하는 방식과 팀장인 자신이 추구하는 일의 방식이 맞지 않아서 같이 일 할 수 없으니 사직을 권고한다.'였다.
창의력이 필요한 일이었긴 하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고, 일단 신입이면 기본적인 일을 배울 때까진 시키는 것만 잘 하는 것이 팀장님이 바라는 나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A라는 일을 시키면 A만 딱 만들어서 가지고 오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팀장님이나 사수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하던 나는 A를 하던 도중 A와 유사하지만 더 좋은 결과물인 B나 C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B와 C를 결과물로서 가져가기 전에 보고하고 상의를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잘 아는 그것을 그때는 몰랐었다. 만약 내 밑으로 들어오는 누군가가 이것을 모른다면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주어서 올바른 길로 이끌 것이다.
왜냐하면, 팀장님은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환 씨는 아마 지금은 내가 이해가 안 될 거야."
"네. 근데 이미 다 결정하고 오신 거라니까 제가 할 말은 딱히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승환 씨도 나 같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알게 될 거야.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다는걸."
"... 제가 부정해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결정을 번복하실 것 같지는 않네요."
"맞아. 이미 결정했어. 그리고 승환 씨, 들어봐. 승환 씨 같은 사람들은 잘 안 변해. 사람의 성향이란 건 쉽게 변하지 않아. 다 내가 겪어보고 하는 말이야."
팀장님은 그러면서 본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나를 이해시키려고 했다. 목적은 이해가 아닌 통보일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 해서 나를 비참하게 만드셔야 하나 싶어서 웃음이 또 나왔다. 반발하거나, 지금의 상황을 바꾸고 싶다거나,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수긍의 입장을 보이자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해도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고 밖에 생각되어지지 않는 퇴사 관련 서류들을 아주 신속하게 준비해서 내게 내밀었다. 서류는 이미 인터넷 공간을 떠돌고 있을 대단할 것 없는 내 개인 정보 작성 칸과 퇴사에 동의하며 회사의 비밀을 외부에 유출시키지 않겠다는 각서로 구성되어 있었다. 몇 단계를 거쳐 힘들게 입사한 것과는 달리 너무 쉽게 모든 것이 금방 끝나버려서 허탈한 웃음이 또 나왔다. 각서는 또 뭐야. 뭘 알아야 유출을 시키든지 하지...
서류를 다 작성해서 팀장님에게 드리고 자리에 앉으니 4시 정도가 되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인수인계할 것도 딱히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늘까지만 나오겠다고 했고 팀장님은 원하는 대답이었는지 별 말씀 않고 알겠다고 했다. 침통해하고, 미안해하는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니 가증스럽고 역겨웠지만 괜찮다. 이젠 안 볼 사람이니까.
정리할 짐이 없어서 금방 끝났긴 하지만, 짐을 정리한 후 자리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함께 입사한 동기는 물론 팀원들은 나의 퇴사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까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 팀장님과 사수, 그리고 나뿐이었다.
어차피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나니까 내가 갑자기 없어지더라도 사람들은 당황이야 하겠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일상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말없이 퇴사한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일상에 조금의 데미지나 서프라이즈도 주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아무리 스쳐가는 인연이어도 도의적으로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수는 자기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래도 인사를 드리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사수에게 이야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괜한 짓을 했다. 인사를 하는 사람도, 인사를 받는 사람도 뻘쭘한 광경이 얼마간 지속되었고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 속에서 나는 어서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갑작스럽게 내쳐진 것도, 당장 내야 할 핸드폰 요금과 카드값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이걸 대체 집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회사 복도 계단에서 몇 분을 망설이다 전화를 했다.
"어 엄마. 나에요."
"웬일이야? 이 시간에? 일하고 있을 시간 아냐? 뭐 필요한 거 있니?"
"음... 아니 그게 아니구요."
"응."
"저 여기서 오늘까지만 일하게 됐어요."
"아니 갑자기 왜? 그게 무슨 소리야?"
"팀장님하고 얘기했는데...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세상에 사람을 뽑아 놓고 무슨 그런 경우가 있어? 회사가 장난이야? 님 자 붙이지도 마. 뭐 하는 사람이야 그
팀장은?"
"일단 집으로 갈게요."
"그래. 일단 집에 와서 얘기하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이 나는 괜찮아요. 엄마하고 아빠가 괜찮아야지.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아냐 우리 안 그래. 우리 아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잘 해낼 거니까. 걱정 안 해. 차 조심하고 얼른 들어와라."
짧은 통화였지만 심적으로 많이 위로가 됐다. 사실 이때 살짝 눈물이 날 뻔했는데 필사적으로 참았다. 예전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나온 조인성은 눈물을 잘 못 참던데 그런 면에서는 내가 조인성보다 낫다는 말 같지도 않은 결론을 내리며 계단을 터덜터덜 내려갔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지? 일단 몇 주 정도는 그냥 놀까? 친구들한텐 뭐라고 얘기하지? 나이 조금 더 차면 구직도 힘들 텐데... 뭐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7층 계단을 금세 다 내려왔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주변에는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 창피하기도 했고, 사실 자랑하거나 여기저기 떠들고 다닐 만큼 좋은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만두자마자 신청해서 받은 실업급여로는 가까운 곳으로라도 혼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딜 갈까 하다가 한라산을 한번 다녀오기로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탁 트인 하늘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본 한라산 사진도 - 눈 덮인 산이 마치 히말라야를 생각나게 했다. - 한몫했다.
이틀 후,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한라산으로 향했다. 화창한 아침 햇살과 하늘 덕분에 기분 좋게 산을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도 잠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날은 점점 흐려져만 갔다.
궂은 날씨는 좋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올라가는 내내 불어준 세찬 바람 덕분에 얼굴 반쪽은 수분 공급이 좀 과하게 됐다. 올라가다 보면 구름은 사라지고 구름을 밑에 두고 맑은 하늘과 마주할 수 있을 거라는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겼지만, 인스타그램에서 본 그곳은 실제로는 많이 달랐고 올라가도 올라가도 내가 기대하던 맑은 하늘은 나오지 않았다. 시무룩해진 나는 컵라면으로 대충 배를 채우고 주변 사람들과 매점을 잠시 둘러보며 쉬다가 산을 내려왔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 깨어보니 저녁이었다. 상주하는 직원들,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한라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올라갈 땐 얼굴 이쪽, 내려갈 땐 얼굴 저쪽에 수분 공급을 잔뜩 할 수 있다는 꿀팁을 모두에게 전수함으로써 한라산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게스트 중 그나마 친해진 동원이에게 제주도가 비 많이 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동원이는 거의 제주도에 살다시피 할 정도로 제주도에 자주 오는 동생이었다.
"형 저도 지금까지 맑은 날 한라산 가본 적이 별로 없어요."
"야 그래도 별로 없다고 하는 걸 보니 있긴 있나 보네."
"그럼요. 당연하죠. 한라산은 어디 안 가니까요. 사실 다른 것도 그래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잖아요. 할 수 있잖아요. 다 제 손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야기를 나눌 당시엔 그냥 웃어넘겨서 느끼지 못했지만 나중에 곱씹어 생각해 보니 참으로 대단한 말이었다. 동원이가 무심코 던진 그 말은 지금 내 상황과도 너무 공감이 많이 되었고, 힘이 되는 말이었다. 일자리는 많다. 취업난 취업난 하지만 될 사람은 다 된다. 나를 필요로 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을 뿐 언제나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내 손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취업 전에도 취업 후인 지금도 항상 그날 배운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다. 이전 회사에서의 일, 서류 탈락, 면접 탈락 등을 비롯한 수많은 시련들도 슬프거나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 구직 활동을 하던 나는 예전보다 더 큰, 이름만 대면 대부분 아는 그런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00% 내가 하고 싶던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믿는다. 나는 이곳에서든,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잘 보이지 않을 뿐, 움켜쥐지 않았을 뿐, 모든 것은 이미 내 손 안에 있으니까.
그대처럼 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이 귀를 멀게 하고 싶어요
그대처럼은 결코 되지 않을 거예요
멋진 거짓말 따위 무시하고 싶어져요
의외로 모든 게 이 손 안에 있을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라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라며
닥치는 대로 내던져봐요
이 몸에서 피가 솟구쳐 나올 정도로
부딪칠 수 있는 벽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내 안에서 크게 울려 퍼지는 건
그대가 가르쳐 준 성서의 뒷얘기
"부족했어요" 라는 건 자주 있는 결말
저기요, 좋은 풍경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대가 사랑을 억지로 밀어 넣은 눈에 비추는 건...
'나라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라고 말하고
짐을 놓고 달리기 시작해 봐요
설명 따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곧장 나아가면 돼요
의외로 모든 게 이 손 안에 있을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요
언제가 되면 이 구조가 부서져 줄까요?
언제부터 모든 건 덧없음을 늘려 온 걸까요?
'나라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라며
닥치는 대로 내던져봐요
이 몸에서 피가 솟구쳐 나올 정도로
부딪칠 수 있는 벽이 있으면 좋겠어요
부딪칠 수 있는 벽이 있으면 좋겠어요
부딪칠 수 있는 벽이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