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나와 이야기한 건 누구였을까.
얼마 전의 일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울고 있었다.
허름한 방 안에서 앞 뒤 과정 다 짤라먹고 울고 있었고
내 발밑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는 방 안의 분위기와 걸맞게
옛날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나올법한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양 옆에는 각각 얼굴에 '나 의사요'라고 쓰여있는 것만 같은 늙은 의사와
웬일인지 사극에서 흔히 나오는 커다란 칼을 쥐고 서 있는, 무섭게 생긴 가면을 쓴 아버지가 있었다.
가면을 썼는데 어떻게 아버지인 줄 알았냐고 묻는다면,
평소에 집에서 입고 있는 옷을 그대로 입고 있어서라고 답하겠다.
기승전결 같은 건 없고 갑자기 그 장면이 떡하니 내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의 내가 인식하기로는 어머니는 오래 살기 힘든 죽을병에 걸렸고
지금도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의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편하게 해 드리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고,
의사가 말한 그 '편하게 해 드리라'는 방법은 끔찍하게도 어머니의 목을 벤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힘없이 축 늘어진 어깨로 커다란 칼을 쥐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가면의 눈 쪽이 나에게 향해 있던 걸로 봐서는 내 의견을 묻는 것 같았다.
머리 속에서는 그동안 힘들었던 어머니, 그리고 간병하느라 지친 우리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눈 앞에서는 계속해서 끙끙대며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가 누워있었고.
'어머니를 편하게 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도 어떻게 목을 베냐'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뒤엉켰다.
문득 '왜 굳이 목을 베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의사에게 안락사에 대해 물어보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 부분은 비용 문제 때문에 일전에 이야기가 다 된 걸로 알고 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어쩔 줄 몰라 계속 망설이며 서 있자 조용히 있던 아버지가 말을 꺼냈다.
실제로는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꿈속에서는 꽤 긴 시간 동안 말없이 있던 아버지였다.
길진 않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대화를 했었는데
나는 계속 망설이는 입장이었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설득하는 입장이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서 결정을 해야 될 것 같다. 시간이 얼마 없어.'
'우리가 결정을 늦게 할수록 엄마만 힘들어질 거야.'
다른 말은 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지금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다만 나는 아무리 엄마를 편하게 해주는 길이라고 해도 목을 벤다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 그때부터였다. 계속 나오던 눈물도 어느새 멈췄다.
편하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은 많을 텐데 왜 굳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정적이었던 건, 의사와 아버지의 태도였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깊게 내쉰 후
그래도 역시 안 되겠다고 말하기 위해 고개를 조금 빨리 들었을 때였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아버지의 환한 미소는 옆에 서있던 의사의 그것과 똑같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버지가 들고 있던 칼을 빼앗았고
역시 목을 베는 것만은 못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당황하는 가면 속 아버지의 모습과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 의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잠에서 깼다.
약간 어슴푸레한 새벽의 자취방 천장이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왔고
무언가를 꽉 쥔 것처럼 굳게 말아쥔 내 두 주먹이 보였다.
다행히 헛 것이 보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날은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오랜만에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디 다닐 때 조심하라고 건강 조심 사람 조심하라고 잔소리 비슷한 걸 잔뜩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건 뭐였을까.
단순한 개꿈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어머니를 무언가로부터 지켜낸 걸까.
즐겨 읽는 무서운 이야기에서 보면 주변 지인 중에 꼭 이런 쪽에 도가 튼 사람이 있던데
나는 한 명도 없더라. 그래서 못 물어봤지만 다행히 이후에 비슷한 꿈을 꾸는 일은 없었다.
물론 어머니도 별 일 없었다.
그 꿈은 그렇게 다른 꿈들처럼 개꿈 중의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잊히는 듯했지만
얼마 후 어느 여름날 밤, 여름 하면 역시 공포 아니겠냐며 무서운 이야기를 읽던 나는
단 한 줄의 글 때문에 그날 밤을 다시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