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부엌까지 가려면
나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곤 한다.
손 닿는 곳에 있는 충전기에서 핸드폰을 집어 든다.
핸드폰 불빛으로 전등 스위치 쪽을 비춘다.
방 전등 스위치를 켠다.
방문을 열고 맞은편 화장실 불을 켠 후 문을 활짝 연다.
화장실 불빛이 비추는 부엌 냉장고 쪽으로 간다.
가는 길에 있는 부엌 전등을 켠다.
칠흑같이 어두운 거실 쪽을 한번 살핀 후 물을 꺼내 컵에 따라 마신다.
되도록이면 세탁실과 통하는 싱크대 쪽 작은 창문은 보지 않는다.
방으로의 복귀는 역순.
새벽에 물 한잔 마시는 것 가지고 난리가 따로 없다며
유례없는 쫄보를 봤다며 조롱을 해도 좋다.
어두컴컴한 새벽 물을 마시러
익숙하다고 믿고 있는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가는 길,
나 혼자 있다고 믿고 있던 이 집에서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뭔가 다른 것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아직 해보지 못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