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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모모씨 Sep 17. 2023

J는 어디 있을까

지훈이가, 재훈인가, 지원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하여튼 되게 흔한 이름이었다. 편의상 그냥 J로 칭하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쩌다 보니 J와 짝이 됐다. 이름이 흔한 그는 다른 친구들과는 좀 달랐다. 아마 아팠던 것 같은데, 이 또한 정확한 병명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잘 몰랐을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친구가 별로 없었고 거의 언제나 혼자였다. 침묵을 못 견디는 난 심심했고 그럴 때마다 옆에 j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사실 그와 잘 대화는 안 통했는데, 그때도 원체 난 말이 많아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건 간에 그냥 많으니까. 덕분에 딴 친구들이랑 놀 때보다 훨씬 더 말을 많이 할 수 있었고 놀이의 주도권도 언제나 내게 있었다. 더군다나 놀고 있으면 느낌 상 담임선생님이 날 좋게 보는 것 같았다. 꼭 내가 착한 학생이 된 것 같았다. 어린 내게 그건 꽤나 좋은 유인이었다.


그때쯤 학교에서 교내 글짓기 대회가 열렸었다. 말이 대회지. 모든 아이에게 원고지에 일정정도의 글자를 적어오라고 시키는 숙제 같은 거였다. 난 열심히 적어 오는 몇 안 되는 성실한 학생 중 하나였다. 당시 주제가 뭐였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J와 노는 이야기를 적었던 건 확실하다. 나의 글에 담임선생님께서 굉장히 만족해하셨던 게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뿐인가. 다른 반 선생님들까지 같이 와서 날 칭찬하지 않는가. 그건 꽤나 짜릿한 일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내게 이 글을 경기도 대회에 출품하자며 이를 다시 깨끗한 원고지에 적어보자고까지 했다.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이 나를, 나의 재능을 알아봐 준 순간이다. 회고록을 작성하게 된다면 이 순간을 한 챕터로, 어떻게 건 부풀리고 살을 끼워서 20장 정도는 할애할 생각이다. 어쨌든 난 그때부터 학교의 모든 글짓기 대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내가 글을 아주아주 잘 쓰는 인간인 줄 알았다. 물론 아까도 말했다시피, 말이 대회지, 제대로 참여하는 애들은 소수였다. 덕분에 난 언제나 최우수상이나 우수상, 못해도 장려상은 받았다. 아. 물론 경기도에 출품한 글은 입상도 못했다. 경기도의 벽은 높았다. 우수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J와 비슷한 친구들은 하나의 반을 이뤘고 마주칠 일이 없었다. 같이 수업을 듣지도 체험학습을 가지도 않았다.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비슷했다. 시력이 마이너스라며 자신은 정말 눈이 좋지 않다고 하는 친구들도 안경을 쓰면 다들 비슷했다. 말도 잘하고 귀도 잘 들리고. 잘 걷고 뛰고.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고. 고등학교를 가니 더욱 비슷했다. 당시 비평준화였던 곳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성적에 따라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정해져 있었다. 반에서 5등 언저리에 들면 갈 수 있는 학교에 입학한 나는 더욱더 비슷한 친구들로 이뤄진 학교에서 생활했다. 반에서 1등을 하면 갈 수 있는 특수 수업도 있었는데 난 거기에 종종 들었다. 그곳에 가면 더욱더 나랑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비슷한 친구들과 같은 집단이 된 셈이다.


성인이 되고 내가 속한 집단을 선택하는 자율성이 높아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학창 시절 친구들도 어쩌다 보니 다 나와 비슷하다. 새로운 이를 만나는 일도 적어졌고. 더 이상 강제적으로 매년 새로운 친구들과 반이라는 같은 집단에 묶일 일이 없으니까. 일단 자아가 강해져서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맞춰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다. 꼭 사람뿐만인가. 수많은 매체를 접할 수 있는 요새는 내 입맛에 딱 맞는 콘텐츠만 보고 있다. 내 의지가 크겠지만 일정 부분은 알고리즘 탓을 해보겠다. 별생각 없이 살다 보면 알고리즘에 따라 살고 있으니까. 어느새 편집된 세계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은연중에 나와 다른 사람과 생각을 배제하고 때로는 격하한다. 그러면 가끔은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전부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다가 현실세계에서 어쩌다가 우연히 나랑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 ‘세상에! 어떻게 저런 괴상한 인간이 다 있지’라며 도망친다. 그 후 바로 나와 비슷한 친구에게 쪼르르 가서 ‘아니! 세상에 내가 이런 괴상한 인간을 다 봤지 뭐야’라며 신기한 일을 겪은 마냥 공유하곤 한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는 점점 확고해진다. 그 세계에만 있으면 언제나 속이 편하다. 그곳에서 J는 사라진 지 오래다.


J는 어디 있을까. 분명 20년 전의 우리 반에는, 그 시절 내 세계에서는 그가 있었는데 말이다. 그가 언제쯤부터 내 세계에서 사라졌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놀랍도록 매끄럽게 그는 내 시야에서 지워졌다. 지금 나의 편집된 세계에서 J는 없다. J뿐 만인가. 나와 조금 다른 친구들은 전부 없다.


그게 그냥 갑자기 조금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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