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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모모씨 Nov 06. 2023

소설을 놓지 못하는

아주 오랫동안 인간은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려 노력했다. 미래의 날씨는 아주 중요하니까. 회사 야유회를 비 오는 날에 잡아둬야 취소될 거 아닌가. 슬프게도 날씨 예보의 정확성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고 있다. 전 세계에서 수 많은 똑똑한 기상학자들이 힘을 합치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기의 에너지는 아주 작은 규모에서 전 지구적 규모로 확장되기에 미세한 변화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단다. 원리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날씨를 예측하는데 한계가 명확함 정도는 우리도 느낄 수 있다.


그 날씨보다 예측이 어려운 게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도 날씨는 보편적이라고 생각되는 예측모형이 있기라도 하다. 하지만 마음은? 없다. 날씨보다 변덕스러운 게 마음이다. 시시각각 변한다. 명확한 이유도 없다. 근데 그 어려운 마음을 예측하는 모형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기업이 있다. 아니, 요즘엔 많다.


꽤 오랫동안 넷플릭스를 구독하며 여러 콘텐츠를 봤다. 여러 개를 시도했지만, 끝까지 본 건 많지 않다. 보다 보니 취향이 아니라서 중도에 하차한 게 대부분이다. 개 중에서 몇몇은 또 보기도 했다. 매우 내 취향이라서. 그렇다면 글로벌 대기업인 넷플릭스는 빅데이터의 힘으로 내 취향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근데 오늘도 그들이 추천하는 콘텐츠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다.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줄까. 문화권이 달라 그럴까. 그렇다면 토종 한국기업 왓챠는 어떤가. 왓챠피디아에 성실하게 내가 본 거의 모든 콘텐츠에 별점을 매겼는데, 그들이 추천하는 것도 그닥이다. 무척이나 실망스럽다.


물론 그들이 추천해준 콘텐츠를 금요일 밤에 봤다면 꽤 후한 평가를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말을 앞둔 나는 기분이 좋고 들떠서 팝콘무비를 관대하게 웃으며 봤을 수도. 유독 일에 지친 목요일에 이렇게 하루를 끝내기엔 아쉬운 맘에 의무감으로 영화를 본 게 패착이었을 수도 있다. 별 이유 없이 그 때는 그냥 그랬을 수도 있고. 이렇듯, 데이터의 양만으로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가끔은 나도 내 맘을 잘 모르겠지 않는가. 분명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카톡 말투가 맘에 들어서 시작한 만남이, 갑자기 안 어울리게 귀여운 척하는 것 같은 그 말투 때문에 끝나기도 한다. 부모님과 관련된 작품을 볼 때마다 아무리 유치하더라도 눈물부터 나온다. 그 때마다 부모님한테 잘하자 다짐해도 집에 들어가면 우선 툴툴대고 본다. 왜 그러는 지 모르겠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을 때,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을 종잡을 수 없을 때, 종종 소설의 도움을 받는다. 읽고 있던 소설에서 운 좋게 내 마음을 딱 설명해주는 문장을 발견할 때도 있고, 이전에 읽었던 소설의 문장이 현재 상황과 딱 맞아 떨어져서 불현듯 떠오를 때도 있다. 그 문장들 덕에 혼란스럽고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규정하며 알아갈 수 있었다. 찾아 헤매던 문장을 발견했을 때, 드디어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그리고 그 마음이 순전히 나 혼자 품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받는 위안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테다.


하루키는 소설을 ‘이를테면’을 수없이 반복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애매모호한 부분을 ‘그건요, 이를테면 이러 저러한 것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그 치환 속에서 불명료한 점,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또 ‘이를테면 이러 저러한 것이에요’라는 말이 끝 없이 줄줄 이어진다고. 꺼내도 꺼내도 안에서 좀 더 작은 인형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 같은 것이라 비유했다. 소설은 이토록 효율성이 떨어지고 멀리 에둘러 가는 작업이라는 그의 설명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마음은 수 많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단번에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 내가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걸 찾아 헤매다가 운 좋게 발견하면 그걸 바탕으로 내 마음을 설명하고 또 다시 설명해야 하는 종류다. 데이터의 양보단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의 질은 결국 내가 평가하는 수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날씨 예측 모형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도, 나의 마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예측하고 설명하는 모형은 결국 나만이 만들 수 있고 나만의 관심사다.


그게 내가 소설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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