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상했다. 처음부터 이상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했다. 별일 아닌데 매번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그때마다 너의 친구란 이유 하나로, 애꿎은 나만 곤욕이란 곤욕은 혼자 다 치렀다.
너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잘린 것 같았다. 넌 유달리 동생도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퇴직이 널 더 힘들게 한 것 같았다. 자존심이 센 너는 나에게 그 사실을 당연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너의 아버지 회사가 구조조정 한다는 뉴스를 우연히 봤으니까. 게다가 너의 씀씀이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아르바이트도 두세 개 뛰기 시작했다. 사회의 이런저런 현상에 대한 비판도 잦아졌다. 나는 그런 너와 만날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 내며 밥을 샀다. 예전 같으면 이번엔 내 차례라고 돈을 억지로라도 내밀었을 너는, 고맙다는 인사로 이를 대신했다. 그 고맙단 말마저 하기 민망해졌는지 언젠가부터 말없이 식당을 먼저 나가있었다.
그런 변화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나와 친구 관계로 지내지 않고 싶은 듯 행동하는 너를 보는 일은 힘들었다. 넌 툭하면 성을 내기 시작했다. 기분이 나빠지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 얘기를 잘 듣지 않았다. 항상 심드렁해 있었다. 결국 우리의 관계는 틀어져갔다. 나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우리 관계를 개선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멀어져 있었다. 너는 변하지 않았고 변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난 지쳐갔다. 왜 시간과 돈을 쓰면서까지 널 만나야 하는지, 그 이유조차 찾아낼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진 널, 어쩌다 들린 카페에서 일 년 여만에 만날 수 있었다. 우연히. 너는 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더라. 반가웠다. 왜 진작 연락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밀려왔을 만큼.
너는 대학졸업 후에 취업준비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말했다. 대학시절에 아르바이트로 바빠서 학점관리도 못 하고 이런저런 스펙도 쌓지 못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취업이 쉽지 않다고 했다. 나의 기억 속에 너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센 아이였다. 그래서 취업이 안 된다는 고백은 너에게 잠깐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너는 시간이 왜 이리 안 가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동생들이 빨리 커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든 게 버겁다고 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너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나를 너도 빤히 쳐다봤다. 잠깐의 정적 끝에 네가 먼저 입을 뗐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우울한 얘기를 해서 미안하다 했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입고 있던 스웨터 품이 너무 커서 그랬을까. 네가 유독 더 왜소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지금 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그때, 난 한동안 널 미워했던 나 자신이 너무 미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널 미워하지 않기엔, 너에게 받은 상처를 감내할 만큼 내가 강하지 못하다. 내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널 혼자 사랑하고 위하는 일은, 옹졸한 나에겐 벅차기만 하다. 서운함을 참아가며 널 감싸 안으려 했던 나 자신이 가끔은 너무 딱했으니까. 그렇다고 널 미워하기엔, 너를 너무 많이 안다. 네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가끔은 안쓰러울 정도로, 너는 그 고통에 약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네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악인이면 좋겠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유 없이 악한 사람. 널 미워해도 맘이 편할 수 있게. 널 미워하는 나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도록. 좀 덜 딱했으면, 더 강하기라도 했으면, 널 마음껏 미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모두에게, 사는 데 쉬운 게 하나 없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