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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모모씨 Feb 12. 2024

Dear.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의 밤하늘은 어땠을까. 우선 보름달이 떴을 거야. 그날은 한가위 즈음이었으니까. 날이 크게 흐리지만 않았다면 아주 큰 달이 환히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겠지. 별은 얼마나 잘 보였으려나. 그때만 해도 지금에 비해 서울에서 별이 잘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많은 별들이 잘 보이는 밤이었으면 좋겠어. 물론 우리는 서로를 만나느라 그날의 밤하늘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냥 밤하늘이 예뻤었으면. 그래서 그날의 밤하늘을 본 사람들이 모두, 오늘은 밤하늘이 참 예쁘네라고 생각했었으면.

 

한 이탈리아 소설가가 어떤 책에서 인상 깊은 자신의 일화를 하나 소개해. 그가 스페인의 한 작은 도시 과학관에 방문했을 때야. 큐레이터가 그가 전시를 다 보자 천체투영관으로 데리고 가더니 그의 생일과 고향을 물었대. 그가 답하자 천체투영기에 그가 태어난 날 그의 고향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이 펼쳐졌다는 거야. 난 이 일화를 읽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 책에 눈물 방울이 후드득 떨어졌지. 그 이후로 자주 생각했어.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의 밤하늘을 말이야.

 

넌 날 만났을 때 만 24살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나이야. 왜 그런 건 내가 그 나이가 되어봐야 알 수 있는 걸까. 꼭 내 자신이 24살을 거치고 나서야, 그 나이가 얼마나 어린지 깨닫는지.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고 꽤 멍청한 것 같아. 그중에서도 더 이기적이고 멍청한 나는 24살 때도 그런 생각을 못 했어. 정말 어리숙했어. 요즘에서야 그런 생각이 종종 들어. 네가 날 만났을 때, 정말 어렸다는 걸 말이야. 자그마한 나를,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저 침묵하거나 울기만 하는 나를 보며 네가 가끔은 꽤 두려웠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와의 첫 만남을 준비하며 여리고 유난히 걱정이 많은 네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어린 네가, 얼마나 혼자 끙끙 앓았을까.

 

몇 달 전 오마카세를 먹으러 간 날 기억나? 나오는 음식이 죄다 너무 맛있어서 내가 퍽 신이 났던 날. 네 입맛에도 맞기를 바라며, 맛있다는 말과 표현을 쉴 새 없이 쏟아냈지. 네게 끊임없이 동의를 구하며. 그런 내게 넌 맛있다고, 나 덕분에 좋은 곳도 와본다고 답했어. 1시간 정도 넘게 이어지는 코스가 끝이 날 무렵, 넌 갑자기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지. 처음 하는 이야기라고 운을 띄우며 말이야. 넌 그럴 때마다 표가 나. 난 너를 알잖아.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겨우 겨우 입 밖으로 냈을 말일지. 나한테 이 말을 하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자주 많이 깊게 생각하고 속을 끓였을지. 날 바라보는 젖은 눈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어색하게 싱긋 웃어 보이는 입이, 어디에 둘지 몰라서 헤매는 손이, 그냥 죄다 다 티를 내는데, 내가 어떻게 눈치채지 않을 수 있겠어.

 

날 만났을 때, 너는 걱정이 앞섰다 했어. 예상이야 했겠지만 그래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잖아. 많이 당황했겠지. 모두가 그렇잖아. 막연히 자주 상상을 해보며 대비한 일도, 실제로 일어나면 상상했던 것과는 또 다르기 일 쑤니까. 그러고 보니 네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 난 한 번도 너의 24살을 상상해 본 적이 없더라. 한 번만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 말이야.


넌 말했지. 네가 날 가졌을 때,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해서 내가 걱정이 많은 아이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이야. 그때 심장이 쿵 내려앉은 기분은 아직까지 생생해. 오 분 전까지만 해도 음식이 맛있어서 신이 났었는데, 너의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바로 차올랐어. 너한테 들킬까 고개를 숙여 빈 접시에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어. 목이 멘 게 들킬까, 왜 쓸데없는 자책을 하냐며 널 바로 나무랄 수도 없었지. 그래서 네가 말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거야. 너는 내게 사과를 했어. 난 정말 엉엉 울어버릴까 두려워서 어영부영 아니란 말만 했고. 그리고선 급하게 자리를 뜨자고 할 수밖에 없었어.

 

있잖아. 난 그날이 잊히지가 않아. 절대 아니라고 그런 생각 말라고 제대로 답 해주지 못해서 더욱 그래. 그래서 늦었지만, 어쩌면 무려 30년이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말해주고 싶어. 꼭 전해주고 싶어. 상상을 해보는 거야. 네가 날 만나기 전 꾼 태몽에 내가 나오는 거지. 지금의 내가. 바다를 열심히 건너고 있는 너에게 내가 딱 나타나서 말해주는 거야. 이렇게.

 

너의 딸은 꽤 괜찮은 어른이 될 거야. 너를 많이 사랑할 거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도 그리고 세상도 사랑하게 될 거야. 그래서 네게 고마워할 거야. 널 만나서 정말 반갑다고 매 순간 여길 거야. 태어나 널 만날 수 있어서 매우 기쁠 거야. 세상에 나와 처음 눈 맞춤을 한 사람이 너라서 행운이라 믿을 테고. 이따금씩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란 말을 농담인 양 하다가도, 널 생각하면 태어나길 잘했다고, 널 만날 수 있는 시공간이 이번 생, 이곳뿐이라면 몇 번이고도 다시 태어나겠다 생각하겠지. 그러니 걱정도 자책도 마. 너의 딸은 어떤 경우라도 널 원망치 않아. 그럴 수 없어. 그럴 리도 없고.

 

그러니 행복하게 날 낳아줘. 엄마.

몸도 맘도 건강히 잘 자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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