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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모모씨 Mar 12. 2024

봄은 좋은 거니까요

중학교 시절 멋에 죽고 멋에 살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혼자만의 유난이었지만. 운동화는 반드시 인터넷으로 사서 친구들의 것과는 차별화를 둔다거나. 아무리 추워도 검은 스타킹은 잘 신지 않는다거나. 개중에서 하나가 바로 수업시간에 칠판이 안 보일 때 빼고는 안경을 절대 쓰지 않는 것이었다. 그 당시 렌즈를 살 돈도, 렌즈를 내 손으로 눈에 낄 용기도 없었기에 그냥 시력이 좋지 않은 채로 다녔다.

멋생멋사는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봄날에 종료가 됐다.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공부에 올인하기로 맘먹었기 때문이었다. 결심은 안경을 끼고 등교를 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처음으로 안경을 쓴 채 집을 나섰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등굣길에 있는 나무들의 잎의 명도와 채도가 이렇게나 높은 게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잎의 색깔은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안경을 낀 눈을 통해 보는 잎은 정말 초록초록했다. 햇빛에 비쳐 반짝반짝거리기까지 했다! 와. 정말 예뻤다. 예쁘다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으로 자연이 예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능력이었다.

드디어 그 초록의 계절이 오고 있다. 길거리에 심어져 있는 크고 작은 나무의 가지에서 초록 잎이 돋아날 봄이.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도 더 이상 어둡지 않다.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일조량도 계속 늘어날 테다. 시각뿐인가. 미각도 즐겁다. 새로운 계절이라면 무릇 제철 음식을 먹어줘야 한다. 여기저기 카페에서 체리 블라썸이란 이름으로 봄 시즌 메뉴를 하나둘씩 내고 있다. 봄나물도 곧 시장에 나오겠지. 주꾸미도 먹으러 가야 한다. 귀도 설렌다. 듣고 있는 노래 리스트를 보니 어느새 봄과 꽃이 가득한 노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난 이 즘에 cnblue의 can’t stop을 정말 많이 듣는다. 봄이 시작될 때 들으면 그냥 설렌다. 정용화가 천년의 이상형이라 말했던 과거가 없었더라도, 이 노래를 좋아했으리라. 한 때 내게 봄은 cnblue가 신보를 내는 계절이었다. )

촉각도 빼먹을 수 없다. 악건성인 내게 건조함이 서서히 사라지는 봄은 피부 관리에 좋은 계절이다. 온종일 내내 미스트를 달고 살지 않아도 된다. 회사 책상 한 켠을 차지하던 가습기도 슬슬 치울 때가 됐다. 바람이 불어도 산들산들하다. 피부를 에는 칼바람이 아니라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봄바람이다. 화룡점정은 아무래도 후각이 아닐까 싶다. 바람을 맞다 보면 바람에 실려온 꽃내음이 나는 것만 같다. 여기저기 펴 있는 꽃에 다가가 직접 향기를 맡아보기도 한다. 향수를 뿌리기도 더욱더 좋은 날이다. 악건성인 내게 건조함은 곧, 아무리 향수로 샤워를 해도 아무도 나의 향수를, 때로는 나마저 알아채기 힘들게 하는 조건이니까.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봄이다. 이 감각들을 안고 들뜬 맘으로 나들이를 가야 한다. 한껏 ‘꾸꾸’로 입고 놀러 갈 완벽한 명분이지 않은가. 향수도 한껏 뿌리고 봄바람도 맞고 꽃구경도 하고 제철 음식도 먹고. 게다가 옷을 입을 때 더 이상 보온을 1순위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생존에 그다지 쓸모 있지 않은 방법으로 옷을 골라도 된다는 것이다. 난 그걸 낭만이라고 부른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파스텔 톤의 옷을 골라 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은 참 귀엽다. 색각이라는 게 처음에는 열매가 익었는지 익지 않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생긴 능력이라는 걸 감안해 본다면 말이다. 우리는 그 능력으로 외출하기 전 패션을 점검하고 있다.

물론 개강이나 개학 같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는 더 이상 없다. 어느새 어른이 돼 버린 탓이다. 시간을 나 대신 분절 시켜 주지는 않는다. 그냥 또 하루의 출근 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봄은 봄이다! 내가 분절시키면 그만이다. 3월부터는 봄이다. 어른이 된 덕에 수술을 해서 안경을 끼지 않아도 초록의 봄을 볼 수 있으니까, 이벤트가 없는 슬픔은 퉁치기로 했다.

봄. 봄이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 올해도 어김없이 와줬다. 우리 모두에게. 아주 공평하게. 내가 봄에게 준 것은 딱히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구가 열심히 매일매일 조금씩 태양을 공전해 준 덕이다. 이렇게 매년 잊지 않고 꼬박꼬박 와주는 봄도 있으니, 불공평하고 불가해한 일들만 가득 찬 것 같은 세상을 당분간 좀 덜 미워해야겠다.

나는 봄이 참말로 좋다. (참말로라는 말을 참말로 잘 쓰지 않지만, 이상하게 봄이 좋다를 강조하는데 참말로만큼 제격인 부사도 없는 것 같다.) 봄도 날 좋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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