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스스로 특별해지고 싶어 특별함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에 4번 유형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 보자.
4번 유형은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과 자기가 상상하는 환상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한다. 정확히 그 환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녀가 이전에 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 선생님은 그녀에게 그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속에서 좌절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꿈꾸는 그 이상이라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들에게는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지 못하고 떠들어 대는 그런 한심한 이야기인 건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4번의 특징은 독특함이라고 한다. 동일한 상황 속에서도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엉뚱함일 수도 있고 현실성 없는 것처럼 보여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성 없어 보이는 그 성향 때문에 그녀는 수년의 경력과 직장을 포기하고 말도 사람도 낯선 외국에서 인생의 더 큰 가치와 의미를 위해 새로운 길을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갔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그 시간이 그녀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되었을지는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지만 4번 유형이 갖은 엉뚱함이 빛을 발한 순간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꿈꾸던 조금은 무모했던 몇년 전과는 달리 지금의 상황조차 헤쳐나갈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좌절하고 믿음마저 잊어버린 채 의기소침해져 버렸다.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한계처럼 느껴지고 더 이상 넘어설 힘도 능력도 스스로에게 없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사실 그것은 그녀 혼자 느끼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사실 그녀에게 힘도 능력도 없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하나하나 반증해 봐야 할 부분이고 그녀는 좌절된 느낌 속에 파묻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감당하지 않으려는 의지 없는 꿈은 현실도피적인 환상일 뿐이라는데 서른 후반,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다시는 첫 직장 같은 곳은 보기에 조차 두지 않고 제쳐놓고 생각하고 있는 그녀의 취향이 경단녀의 현실보다 하고 싶고 있고 싶은 직장을 우선시하는 자신의 수준을 경시하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4번 유형이 가지고 있는 실수는 아닌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싶고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수준의 사회생활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조용하면 안 되는 것인지, 소수의 사람과 친밀한 마음을 나누면 안 되는 것인지,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상대방과의 신뢰를 두텁게 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그들 속에서 모두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환상에 젖은 도피적인 모습은 아닌지 의문이 되었다.
변해버린 취업시장 속에서 기업이 원하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이겨내야 하고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하는 요즘, 과연 진실은 어떻게 어디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 쓸데없는 결벽증 같은 진실 찾기는 그녀의 현실에 맞지 않는 고상하고 현실에 순응하지 못하게 하는 4번의 악취미 같은 현실도피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4번 유형을 나타내는 말 중에 아프게 다가오는 단어가 있다. 꿈.
그녀는 누구보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잘 살아내기 위해 부단하고 성실하게 고민하고 시도하며 지금까지 왔기에 4번 유형이 꿈만 꾼다고 하는 말은 너무 속상하고 스스로가 밤하늘의 별을 따는 사람의 쓸데없는 짓마냥 느껴진다. 어릴 적 꿈은 그 어떤 꿈도 허용이 되었다면 다 큰 어른에게 꿈이란 때론 사치스럽고 부질없으며 현실과 처지를 직시하지 못하는 허무맹랑한 한심한 인간의 소유물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어린 시절 수많은 꿈을 꿨었다. 연극의 주인공이 좋아서 연극배우를 꿈꾸기도 했고 목소리가 좋아서 성우를 바라기도 했다.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개그맨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 모든 것은 그저 한낱 어릴 적 꿈이었을 뿐이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자 선량한 의사가 되기를 꿈꿨었고 글과 문학을 좋아해 작가가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다 학생들에게 꿈을 꿀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자 교수를 바라며 대학원까지 진학해 공부를 하며 꿈을 향해 서울의 작은 고시원 작은 방 작은 책상에 앉아 꿈을 키워 나갔다. 허무맹랑해 보일지 모르지만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꿈을 찾아 그녀가 꿈을 꾸었기에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4번 유형에게 꿈은 늘 이것이 무슨 뜻을 말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인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찾아가는 환상 같은 거라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쉽게 가지 않았지만 어쩌면 어린 왕자 속 학자가 그렇게 찾아 헤맸던 작은 별처럼 그녀는 삶에 주어진 사명과 고유한 의미를 찾기 위해 네팔을 향했고 또 지금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끊임없이 본질과 꿈을 찾으려 노력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 속의 퍼즐들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해 삶을 풍성하게 나누고 만들어 가는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대한 판타지이고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 더 이상 헛된 꿈은 꾸지 말고 현실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주어진 날개를 꺾고 더 이상 날기를 멈추라는 명령 같아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4번 인물 중 요셉은 어려서부터 신으로부터 받은 꿈에 대해 많은 언급을 했었지만 노예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그 이야기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바닥과 같은 처참한 현실 속에서 꿈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싶지만 시간이 흘러 요셉이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만났을 때 그 꿈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고 한다. 꿈 많던 요셉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꿈 대신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 속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풀이하고 있다. 그렇게 살아갔을 때 결국 그가 받았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며 말이다.
더 이상 꿈을 꾸는 것이 쓸데없는 것처럼 들려 더 이상의 이상도 환상도 없는 현실 속에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에 그녀의 마음이 낙심되었을 때, 요셉의 이야기는 그와 같은 꿈 많은 그녀가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꿈 역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만은 남지 않게 되는 것 같아 마음에 힘이 되었다.
(어쩌면 그녀는 좌절이 되었던 가정형편과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아 떠나기 위해 파랑새를 가슴에 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파랑새를 가슴에 품고 현실 속에 발을 내딛을 때 지금의 현실보다 더 나은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스스로에 대한 지지와 격려처럼 현실성을 잃은 듯한 꿈은 그녀를 좌절 속에서 일어날 수 있고 희망을 꿈꾸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쌓으며 세상에 도전할 수 있었던 장치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하고 고유한 그 부분이 채워지면 미완성처럼 느껴지던 인생이 완성될 것이라는 환상에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헤매어 다닌다. 끊임없는 그 시간을 통해 그녀는 서툴지만 세상과 이상 속에 사다리를 만들어 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