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는 누구이길래 이렇게 부족한 게 많게 느껴지는 것일까. 부족해 보이는 이것을 채우면 자신에게 주어진 전체적인 모습이 완성될 것만 같아 그녀는 그렇게 헤매는 것은 아닌지.
퇴근길 우연히 보게 된 건물, 처음 보는 공간을 발견했다고 했다. 호기심에 검색을 열고 몇 개 안 되는 공지글 위 떠오르는 팝업창 하나, 에니어그램 세미나 수강 모집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새로운 직장을 준비 중으로 스스로가 더욱 작아지고 의기소침해지던 찰나 잘됐다 싶어 망설임 없이 수강신청을 하고 그렇게 세미나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첫날 검사를 통해 그녀는 6번과 4번 유형에서 높은 점수를 나타내고 있었고 자신을 나타내는 단어들에서도 역시 그 두 가지 유형에서 무엇이 우선인지 고민하는 모습을 동일하게 나타냈다. 6번은 두려움이 많지만 성실한 타입이라는 설명에 그녀 스스로 요즘의 자신을 볼 때면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계약직으로 지냈던 수개월 동안 그녀는 처음으로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의 삶을 내면 스스로 자각하며, 하루하루 사무실에서 하나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자신과의 부단한 애씀의 시간을 경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지만 기한이 되면 떠나야 하는 그 자리의 사람. 잠시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있다 가는 마치 정거장 같은 인생이 된 느낌이었고 펑크 난 타이어를 고치는 동안 잠시 쓰다 바꾸는 스페어 바퀴처럼 시간이 가면 그 자리를 주장할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기한이 다가올수록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간을 앞두고 더 이상 불확실한 시간과의 싸움보다 이제는 안정을 되찾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임하는, 새로운 시도나 변화에 대해서는 더 이상 힘을 쏟고 싶지 않고 세상에 대한 도전 앞에 수많았던 시련들에 두 날개마저 꺾인 것만 같다. 6번은 시작조차 두렵고 지레 겁부터 먹어버린 채 두 눈을 꼭 감고 깊은 잠에 빠지고 싶은 겁쟁이가 되어버린 지금의 심정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몇 년 전 했던 검사에서 6번이 아닌 4번이 나왔던 것이 생각이 나 조금은 혼란스러워했다. 성실하고 안정을 좋아하는 6번과 특별하고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4번은 그녀에게는 전혀 상반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재취업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버릴 수 없었던 현실 속에서 더 이상의 모험과 탐색은 사치이고 욕심일 뿐, 성장배경으로 시작하는 너무 뻔한 자소서 형식이 대부분이었던 10년 전과 달리 다시 돌아온 취업 시장은 NCS니 인성검사니 PPT 면접이니 전공과 상식 시험이나 하는 새로운 장치들로 블라인드 자소서 질문에서부터 숨마저 턱 막히는 시험처럼 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했고 익숙해져야 했다. 각 기업의 질문마저 분석해야 했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되지 위해 자소서가 자소설이 되는 각색마저 당연한 것처럼 이루어져야 하는 현실 속에, 진실이 묻혀버린 똑같은 인재가 되기 위해 숨 막히는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한쪽은 질문을 하지만 한쪽은 그저 대답밖에 할 수 없는 일방적인 상황 속에서 진열된 상품을 검열받듯 무표정하고 그 어떤 리액션도 없이 냉랭한 시선 속에 오가는 긴장감과 거절감을 견뎌낸다. 부족했을 자신에 대한 자책이 검증을 받듯 점잖은 거절의 메시지가 돌아올 때면 세상에서 낙오자가 된 듯 자신을 잃어버린 채 좌절 속 푯대 잃은 돛대가 되어 망망대해 어디에서도 특별해지고 싶은 4번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4번 유형이라는 결과를 처음 받았을 때 원래 6번과 같은 성실하고 평범한 그녀였지만 직장에서 받는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 춤을 배우고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넌 이상한 것 같아라는 말에 대해 스스로 그래 난 너희들과 달라를 몸소 표출하며 그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동일한 수준의 사람이 되지 않고 더 이상 비교받지 않기 위해 내면으로 시위를 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미나를 진행하는 선생님께서 6번과 4번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녀에게 당신은 4번 유형인 것 같아요라고 말을 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그들과 동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래, 난 다른 사람이야라는 인정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평범한 6번이지만 그들과 같아질 수 없었기에 스스로 특별해 지기 위해 4번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4번이지만 계속 도전하고 거절마저 익숙해지지 않는 상처가 되는 상황 속에서 6번의 평범한 삶의 편안함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