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헌 단편소설집_8
이도가 우주영상을 본다는 것은, 그날이 매우 거칠었다는 뜻이었다. 아마 그런 날은 그녀의 주변에 하얀색 가루가 먼지마냥 나풀거렸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사포 같은 거침이 그녀를 사각사각 갈아버리며 가만두지 않았기에. 그래서 그런 날에 그녀는 유튜브를 켜 “우주”를 검색하곤 했다.
“우주”라고 유튜브에 두 글자를 검색하면, 수많은 영상들이 나열됐다. “우주 거울 양면론”이라던가, 혹은 “화성 생명체 발견“, ”미국이 숨긴 외계와의 기밀한 조우“ 같은 자극적인 썸네일들이 상단부터 나열되었다. 모두 조회수가 적게는 20만 많게는 300만도 넘는 영상들이었다. 하지만 이도는 더 아래쪽에 위치한 , 교육 케이블 방송에서 6년 전에 업로드한 영상을 봤다. 조회수 70만. 아주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목소리가 나오는, 그러면서도 차분하고 침착한 우주 다큐 영상이었다.
당신은 이 우주여행을 감당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빨간색과 주황색이 어지럽게 뒤섞인 태양 주위를 돌며 시작하는 영상은 짤막한 경고성 멘트를 넌지시 던졌다.
"또 그 영상 보는 거야?"
이도가 그 영상을 볼 때마다 남자는 묻곤 했다. 그 말은 곧 ‘너 오늘 무슨 일 있었구나’라고 묻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자는 이도가 우주 영상을 볼 때면, 주섬주섬 조용히 나갈 준비를 했다. 침대 맡에 헝클어진 브라운색 바지를 주워 입고, 어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티셔츠, 셔츠, 시계 같은 것들을 찾으러 다녔다. 그러고 말라버린 휴지들과 널브러진 털조각과 머리카락 같은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려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마치 이도의 온 신경이 오직 우주 영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듯이, 이런 사소하게 부스럭거리는 것들이 그녀에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도록. 그러곤 남자는 이도의 얇은 팔뚝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의 입술에는 이도의 하얀 얇은 솜털과 오돌토돌하게 닭살이 돋은 맨살 피부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 계속 목이 간질거렸다. 콧물이 멈추지 않아 지속적으로 킁킁거렸고 그럴 때마다 계속 눈물이 나와 눈이 부어있었다.
“너 병원 가봐, 나중에 못 가지 말고.”
엄마는 내가 퇴사한 이후 주로 병원을 다니라고 했다. 회사를 다닌 이후 심해진 거북목과 허리-목 디스크를 얻었고 가끔씩은 아주 어렸을 적 있었던 아토피가 올라오거나, 가끔씩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기척 없이 나타나곤 했다. 이 모든 것들은 회사를 다니기 전에는 잊고 있었거나 존재조차 몰랐던 질병들이었다. 마치 몸안 어딘가에 숨어있던 것들이 연차가 쌓일수록 어두운 물감이 종이를 적셔가듯 스멀스멀 피부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 같았다.
특히 나의 경우는 치아 관련 문제가 가장 컸다. 누워있는 아래쪽 매복 사랑니가 썩어 볼이 퉁퉁 부어올라 외관상으로 맞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회사는 고작 사랑니정도로 별다른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좀만 바쁜 거 끝나면 가.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꼭 시간 내줄게. 그러다 한 번은 팀장이 나에게 말했다.
“너가 연달아 연차 쓰면 나머지 콜 대응은 어떡하라고. 옆팀 주임 장례식장에서도 콜 대응은 한 거 알지? “
거대한 회사 업무와 비교하기에 사랑니는 너무나 작은 존재인 듯했다. 업무특성상 연휴를 포함한 주말에도 광고는 돌아가야 했고, 돈줄 광고주 요구를 대응하느라 병원 갈 시간을 따로 빼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렇게 계속해서 사랑니는 부어갔다. 그 작은 존재가 그토록 중요한 회사의 가치보다 더 커지려는 듯이.
“아니 구계(그게) 아니라. 그 때냡(대납)은…“
나의 왼쪽뺨이 부어갈수록 말은 점점 더 어눌해져 갔고 썩은 단어와 문장들이 공중에 수치스럽게 흩뿌려졌다. 약간의 피가 섞인 꾸리꾸리한 냄새와 함께. 안 그래도 단 한 통화의 짧은 시간 동안 신뢰를 얻어야 하는 콜 마케터의 말에서 썩은 어눌함은 치명적이었다. 말을 어눌하게 한다는 이유로 나는 몇 개의 영업된 광고주들을 다른 팀에 뺏겨야 했고, 그것은 곧 나와 우리 팀의 실적 압박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럴수록 사랑니는 더더욱 부풀어 갔다. 마치 왼쪽뺨에 썩은 심장이 있는 듯, 힘차게 두근거렸다. 그 존재는 작지만 열심히 선홍색 피를 뿜어댔고 오직 썩어가는 게 자신의 원대한 목적인 마냥 열심히, 차곡차곡 썩어갔다.
왼쪽 뺨이 부어갈수록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켜야만 했다. 내가 앉아있는 곳이 “회사”라는 것. 나는 매번 그 당연한 사실을 까먹었고, 몇 가지 감정적인 실수들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따금씩 나 자신을 사회생활을 잘하지 않는 축에 속한다고 가늠하곤 했다. 매번 나의 모든 말과 행동에는 사적인 감정이 섞여있었고, 불필요한 미안함-연민-열정 혹은 사람에 대한 기대와 객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 머리보다 사랑니에서 먼저 발현되는 듯했다. 내가 어떤 말실수를 하거나, 혹은 감정적인 태도를 보였을 때 사랑니가 크게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은 짧게는 1시간, 길게는 새벽까지도 지속되곤 했다.
회사사람들은 겉으로는 모두가 웃고, 화내고, 타인을 공감하고 위로했지만 그 속내는 알 수 없었다. 항상 크게 소리를 지르는 저 남자의 속에는 어떤 사랑니가 있을까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사회생활은 항상 어려웠다. 저 사람의 아무도 모르는 입안에는 어떤 게 있을까, 겉으로 티 안 나게 매복된 그 사랑니는 저 사람의 깊은 안쪽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나는 항상 이런 정답이 없는 질문을 고민해야 했다.
이곳은 회사다. 이곳은 회사다. 이곳은 회사다
나는 항상 어떤 감정적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이 말을 반복해야만 했다. 이 말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입안의 사랑니가 두근거렸다. 마치 어떤 살아있는 태아의 태동처럼. 그 썩은 조그마한 어금니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선홍빛 피를 힘차게 뿜고 있었다.
하지만 연정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유일하게 어떤 사랑니를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사람. 2년 차 막바지후임으로 들어온 이연정은 왼쪽볼이 퉁퉁 부운 나를 보며 말했다. 20살을 갓 벗어난 연정의 말에는 항상 힘이 있었다. 두껍고 오래된 나무 기둥이 몸안을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듯이, 그녀는 단단하고 우직했다.
나에게 연년생 언니가 있다면 저런 느낌이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의 나와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얼굴에 그때그때 감정이 실리지 않았고 항상 일정하게 평온했다. 진상 광고주의 욕설이 담긴 언어가 헤드셋을 통해 생생하게 넘어와도, 부장의 고집 끝에 먹게 된 점심시간 배달 아귀찜이 실패로 끝나고 모두가 싱크대 안에 버려 징그럽게 배수구가 막혔을 때도, 그리고 그것을 직접 손으로 뚫었어했을 때도, 그녀는 항상 한결같이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모든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부담스럽지 않게 정돈된, 튀지 않지만 모두에게 관심을 받는 그런 아이. 나보다 3살 어린 연정은 바로 그런 아이였다.
이도님 노래가 너무 좋아요.
콘서트는 언제 여시는 거죠. 꼭 갈게요
이 노래 꼭 음반으로 내주세요.
이도의 유튜브 영상에는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이도는 그 댓글들을 최대한 조용한 장소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조용한 5평 원룸, 한적한 공원 구석, 움직임이 멈춰있는 조용한 엘리베이터 같은 곳. 그녀는 세상의 난잡함과 시끄러움에 무겁고 사려 깊은 댓글들이 날아가버릴까 걱정하며 댓글을 읽었다.
이도의 유튜브 영상에는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이도는 그 댓글들을 최대한 조용한 장소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조용한 5평 원룸, 한적한 공원 구석, 움직임이 멈춰있는 조용한 엘리베이터 같은 곳. 그녀는 세상의 난잡함과 시끄러움에 무겁고 사려 깊은 댓글들이 날아가버릴까 걱정하며 댓글을 읽었다.
이도는 몇 년 전만 해도 기타를 하나 들고 서울 곳곳 공원에서 버스킹을 했다. 들뜬 사람들로 가득한 홍대나 이태원 보다는 합정, 안국 같은 주말 조용한 서울 골목거리에서 노래를 했다. 그 좁은 서울에서 고르고 골랐던 공연장소였지만, 길거리 버스킹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소리가 마이크에 담겼다. 길거리 경유차들의 시끄러운 엔진소리와 정차했다 출발하는 차들의 타이어가 뜨거운 아스팔트에 비벼지는 마찰음, 길거리 행인들의 통화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까지. 이도는 그 속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했다. 그래서 낮고 조용한 음악은 할 수 없었다. 이도는 고음이지만 귀에 잘 닿는 음악들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웠고, 버스킹이 끝난 뒤 집에 돌아갈 때는 목이 항상 쉬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버스킹을 포기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집안에서 노래를 녹음해 유튜브에 올렸다. 이도 자기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자신 있어하는 낮고 조용한 노래를 위해서. 서울 원룸 집에서 기타와 노랫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평일 오전 10시 30분 ~ 12시까지가 가장 안정적으로 항의가 들어오지 않는 시간대라는 걸 미도는 잘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평일 아침까지 잠을 아예 자지 않으며, 뜬눈으로 버티며 그 시간대를 기다렸다. 자고 일어나면 목이 오전 내내 항상 잠겨 있었기에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목을 준비했다. 세상에 조용히, 느리게 알릴 목소리를 위해.
그렇게 조용한 목소리의 영상들은 모두 20개를 넘어갔다. 모두 합쳐서 조회수가 700을 겨우 넘길 정도로 작았지만 조금씩 댓글이 달렸다.
이도님 노래가…
항상 위로받고…
꼭 음반으로…
모두 짧지만 굵은 댓글들이었다. 그것들을 한 글자 한 글자 해체하여 수집하듯 바라보던 이도는 이것이 바로 유튜브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목소리로 작게 소통하는 작은 존재들. 그 댓글 들은 모두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소행성 같았다. 멀리 떨어져 어떻게든 작은 점으로나마 빛을 내던 그 소행성들. 미도는 그것들을 또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마도 그녀의 주변이 너무 거칠고 꺼끌거렸던 날에, 주변의 사각사각거림에 온 각질이 떨어져 자신의 몸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을 때, 그 소행성들을 더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항상 퇴근길에는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여름철 지하철의 끈적임 속에서도, 예측 시간보다 늦게 온 버스의 불규칙한 떨림 속에서도, 나는 항상 먼저 퇴근한 직원의 심리적 찝찝함을 느껴야 했다.
회사의 윗사람들은 퇴근 이후에 회사 모임에 참석하는 것 또한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왼쪽 어금니가 아파서, 업무 중에 입안에서 피맛이 너무 진하게 나서, 그래서 내 업무가 끝났으면 한동안 집으로 빨리 들어가고자 했다. 그 시간조차도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대였다. 그 시간대라도 일찍 들어가야 볼의 부기를 빠르게 가라앉히고, 그래야 나중에 수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어쩌다 운이 좋으면 모든 것이 다 일사천리로 해결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미선 씨, 어제 일찍 들어가서 잘 쉬었어?
어제 왜 안 왔어, 어제 미선 씨 없어서 얼마나 다들 아쉬워했는데
집에 그나마 일찍 들어간 다음날 나에게 넘어온 것은 가벼운 걱정과 밀려 있는 타 팀의 업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와 전혀 상관없었던 일들이 다음날 아침 나의 개인업무 쓰레드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사소하지만 모두 나를 윽박지르기 위한 업무들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피맛이 나는 침을 꼴깍 삼켜가며 밀려 있는 타인의 업무를 진행했다. 모두 모욕적일 만큼 단순 반복만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오히려 머리를 쓰면 안 되는, 엑셀 시트 200개를 넘어가는 단순 노가다 작업. 그럴 때면 사랑니에서 미세한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마치 잔잔하게 흔들리는 조그마한 배 안에 있는 마냥, 나중에 가면 그 미세한 흔들림 조차 익숙해져 정상적인 평지가 어색하게 흔들리는 그런 상황들. 나는 부어있는 왼쪽 뺨을 만지며 생각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나. 아니, 너무 많이 먹었나.
너무 늦었어요. 이건 대학병원 가셔야 돼요 어쩌다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금요일 새벽까지 업무를 미리 마치고, 토요일 오전에 잠깐 짬을내 방문한 동네 치과는 말했다. 의사의 표정이 마치 망해버린 음식을 본 주방장 같았다.
제가 겁이 많아서요.
나는 치과 침대에 누워 내 얼굴에 초록색 부직포가 덮여있는 상태에서, 공중을 향해 말했다. 아마도 머쓱한 웃음과 함께. 그러고는 입을 황급히 닫았다. 망한 요리 뚜껑을 황급히 닫듯이.
꼭 빨리 대학 병원 가셔야 해요. 그거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수납을 하며 카드를 건네받은 치위생사는 걱정이 된다는 듯 말했다. 치과의 오래된 자동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봤을 때, 얼굴이 선홍빛으로 변해있었다. 부어오른 왼쪽뺨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른쪽 볼까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무엇인가를 씹을떄마다 선홍색 피가 양념마냥 음식과 같이 버무려졌고 양치질을 하며 거품을 뱉을 때마다 흰색과 갈색이 군데군데 뒤섞여 있었다. 분명 이전에도 그랬을 것인데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심각성을 인정받자 그제서야 선홍빛 피가 눈에 확연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음식과 양치거품 또한 나의 부끄러움이 전염된 거 같았다.
나는 약국에서 초록색과 하얀색의 진통제 알약들, 빨간색과 하얀색의 원통형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우선은 부기를 가라앉히는 약들이었다. 나는 그 약들을 보며 내가 먹어야 하는 일자를 세보았다. 하루 세 번, 일주일. 총 21개의 투명한 봉투가 연달아 이어져 있었다. 딱 알약 봉투가 10개쯤 까졌을 때, 그때쯤 회사에 사랑니 발치를 위한 휴가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도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물리적으로 고개를 뒤돌아 누군가가 쫓아오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다만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시야에 보이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그림자뿐이었다.
이도의 나이는 어느새 29 살을 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너무나도 어린, 어떤 것이라도 도전하기 좋은 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그 시간을 겪어가고 있는 이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 친구들은 취직에 성공한 지 오래였고, 누군가는 승진을 했다며 인스타에 “진짜 고생 시작”이라는 문구와 함께 게시글을 올리곤 했다. 또 누군가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며 청첩장을 보내왔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사업이 대박 난 것을 알려야 하는 마냥 뜬금없이 “술”을 마시자고 연락이 왔다. 20대 후반은 그런 시기였다. 10대부터 지속해 온 노력의 결실을 어떻게든 자랑해야만 하는 시기, 조금이라도 늦는 사람에게 압박과 초조함을 선사하여 자신의 노력을 더 드높여야 하는 시기.
"난 요새 유튜브를 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이도는 말했다. 순간 시끌벅적한 테이블에 정적이 흘렀다.
"노래 같은 거 올리는 거야? 요새 버스킹 같은 거는 잘 안 해?"
옆에 가장 가까이 앉은 한 친구가 이도에게 물었다. 그 친구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 모인 술자리였다.
"요새는 그냥 유튜브만 올리고 있어. 그게 나랑 맞는 거 같아서. "
넌 참 자유롭게 사는 거 같아.
이도야 난 네가 부럽다.
나도 너처럼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걸.
모두 유튜브 댓글로 본다면 진심으로 느껴질 만한 말들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말로써 이도를 향해 다양한 부러움을 표현했다. 그 부스럭거리는 껍질 안에 어쩌면 낯 부끄러운 동정이 있지 않을까 겁먹어야 했지만.
이도는 어느새 자신이 친구들과의 식사자리에 끼게 되면, 그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의 삶의 가치관, 방향성, 비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도는 별다른 조언이나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말하는 대상이 이도의 차례가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누군가를 정확히 특정할 수 없어서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그러한 자리를 피했다. 어떤 날은 녹음이 있어서, 어떤 날은 고향집에 내려가봐야 돼서, 어떤 날은 너무 이유도 모르게 아파서…
그래서 그녀는 집에 누워있었다. 집안 구석에 나풀거리는 먼지처럼, 화장실 수도꼭지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처럼. 주변의 거친 사포 같은 시선들이 그녀를 사각사각 갈아버리기 전에. 그리고 이도는 당연하게도 “우주영상”을 봤다. 그러면 집에 있던 남성은 또다시 이도에게 물었다. 또 우주 영상을 보느냐고.
"너가 죽었다고 해보자"
"뭐?"
어느 날 남자는 침대 안에서 자신의 한쪽 팔 안으로 이도를 감싸며 말했다. 그리고 시선은 천장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갔다.
"아니, 너 지금 올리는 영상들 있잖아. 내가 보기에 그게 진짜 좋은 영상들인데, 알고리즘을 타지 못하는 거 같아. 어딘가 노출이 되어야 조회수가 올라가고 그럴 거 아니야"
남자의 말마따나 이도가 올린 영상들은 모두 조회수가 600~700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 조회수들은 모두 일정하게 그 숫자들을 유지했다. 마치 그 숫자들이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듯이.
"내가 죽는다고 그게 알고리즘을 타고 올라가?"
"그럴 수도 있지, 누구든 사연이 있는 걸 좋아하거든. 사람이든 기계든 ai이든. 알고리즘도 아마 마찬가지 일거야.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내가 죽었다는 걸 어떻게 알릴 건데?"
남자는 고민한다는 듯이 코에서 숨소리를 내뱉으며 천장을 쳐다봤다. 밤 11시가 지난 천장에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그림자들이 일렁였다. 마치 그림자들이 천장을 무대 삼아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댓글에 쓸게 내가. 이렇게 쓰는 거지. 저는 이도의 남자친구입니다. 이도가 얼마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도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뭐 이런 말 뒤에다가 쓰고 또 다양한 사조를 붙이고…"
그러면서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찍어둔 영상들이 몇 개 더 남아 있는데, 지속적으로 편집해서 올리겠다고. 이 유튜브가 마지막 이도의 앨범이 될 거라고 말이야."
이도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말하는 남자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마치 예전 자신이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듯 신이 난 채 말하고 있었다. 마치 진짜 죽은 어떤 이를 회상하듯이. 이도는 혼자서 신이 난 채 떠드는 그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자자 오빠. 내일 빨리 나가봐야 된다며."
남자는 입을 멈추고 이도에게 답했다.
"그래. 자자 빨리."
봐봐 진짜 죽었네 이거
출근 후, 각자 업무로 조용해야 할 회사가 시끄러웠다. 목소리에 발언권을 가진 창가 쪽 상석에 앉은 사람들이 특히 그랬다.
광고 다 내리겠는데.
2팀은 뭐 조용할 날이 없어 그래
2팀은 내가 속한 팀이었다. 우리 팀은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조그마한 소형 통신사, 전국의 시장 점유율 3등 살충제, 회화 영문법 강의 강좌, 그리고 가장 광고비에 돈을 많이 쓰는 탄산 음료수 브랜드.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을 12분 남겨둔 상황이었다.
지금 모든 광고를 내릴 것.
앞으로 계획된 광고 또한 마찬가지.
광고주의 요구는 간단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당황스러움이 가득 넘치게 담겨있었다. 약간의 흥분이 가미된 광고주 전화 건너편에는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전화를 거는 소리, 누군가 전화를 받는 소리,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다급하게 소리치는 소리. 광고주는 다양하게 다방면으로 이슈에 대해 대처하고 있는 듯했다.
아 네, 광고 지금 현재 다 내리고 있는데요. 그게 이미 올라간 광고는 노출이 1시간 뒤에 내려가서요. 지금 방금 전에 껐으니까, 한 시간 후에는 꺼질 거예요. 아 그리고 계약된 라디오, 케이블 티브이 광고는 바로 매체 측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다만 이것도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어서.. 계약도 있고 하니까요.
나는 반복해서 나의 무능력함을 광고주에게 어필했다. 그것은 팀장급들의 지시였다. 어떻게든 광고를 송출해 내고, 그렇게 광고비를 태워야만 수수료를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더 얻어가니까. 우리 회사는 나에게 의도적인 멍청함을 광고주에게 어필하며 시간을 지연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입안의 피맛을 느껴가며 충실시 수행했다.
그 음료 브랜드는 여름 맞이 다양한 프로모션을 했다. 애초에 이번 방학시즌에 맞춰 굵직한 스타 연예인과 모델 전속 계약을 맺었고, 그것에 맞게 다양한 프로모션을 오랜 기간 동안 준비했고 홍보했다. 그 음료회사는 이번 여름이 매우 중요한 시즌이니 잘 부탁한다고, 돈도 많이 쓸 테니 실수가 없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린다고 우리에게 구구절절하게 여러 번 강조했다. 그 구구절절함에는 절박함보다는 강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한 광고주의 포부는 모두 무용지물이 된 듯했다. 그 음료수 회사 공장에서 사람이 죽었고, 그게 이번에 2번째인가, 3번째였다.
진짜 죽은 거 맞네. 여기 기사도 다 떴잖아.
엄청 무리하게 밀어붙였나 보네. 이번이 벌써 2번째였나.
회사 사람들은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난 듯 다양한 뉴스 기사들을 보며 떠들어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뜨거워진 볼과 두근거리는 사랑니를 견디며, 점심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어디선가 오는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이도의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한 건, 그 남자와 밤에 이야기를 나눈 다음 주쯤이었다. 유튜브에서 댓글이 달렸다며 알람이 한두 개씩 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자고 일어나 보면 댓글이 500개가 넘어있었다. 그 알람에는 댓글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그 시작은 남자의 댓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최근에 올린 영상에 남자는 댓글을 달았다.
“저는 이도의 남자친구입니다. 여러분들께 이도의 소식을 전달하고자 댓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도는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참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노래에 진심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힘든 날이면 댓글을 바라보며 위로받곤 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 (중략)
이도는 얼마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하늘로 올라간 그녀는 우주의 조그마한 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우주에서 여러분들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을 거예요. 이도가 계속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그녀를 잊지 말아 주세요.
이도가 찍어 놓은 노래들을 순차적으로 편집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계속해서 올리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도를 잊지 말아 주세요 여러분”
더 보기를 눌러야만 전체를 볼 수 있는 장문의 댓글이었다. 이도는 그 댓글에 좋아요 수가 1200을 넘어간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그리고 댓글에 달린 대댓글을 살펴보았다.
“이도님의 노래가 계속 곁에 남아 위로를 주고 있어요”
“수험공부하다가 소식 듣고 왔는데 이런 일이…”
“이도야 보고 싶다. 많이. 중학교 때 반에서 너가 불러주던 노래가 정말 좋았는데”
“처음 보는 가수, 처음 듣는 노래인데, 어째서 알고리즘이 이곳을 이끌었는지 모르겠네요. 참 좋은 노래 듣고 갑니다.”
다양한 댓글들이 이도가 죽었다고 한 남자의 댓글밑에 달렸다. 이전까지 나를 외면했던 알고리즘은 내가 죽음으로서 나를 기꺼이 선택했다. 심지어 이름도 기억이 안 나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생 친구들이 자신이 이도의 친구였다며 위로하는 댓글을 달고 있었다. 이도는 자신이 바라보던 소행성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무서웠다. 밤하늘이 소행성들의 빛으로 가득 차 밝아질까 봐. 더 이상 밤이 밝아져 밤이 아니게 될까 봐. 이도의 모든 영상 조회수는 모두 이전보다 배로 늘어나 있었다. 이도는 자신의 노래가 남들에게 이렇게 많은 위로를 주고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이도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층 더 널리, 깊게 퍼지고 있었다.
“봐봐 너 노래 좋다고 했지? 이제야 다들 너의 목소리에 대한 진짜 평가들이 나오잖아”
남자는 이도에게 웃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어”
“뭐가?”
“내가 죽었다고 내 노래의 평가가 달라지는 게 맞는 건지”
그러곤 속으로 이도는 더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위안을 얻는 거지, 내 죽음을 보고 위안을 얻는 건지.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는지 남자는 입술이 툭 튀어나와 우스운 그림자를 벽에 만들었다.
“중요한 건 너의 목소리가 드디어 힘을 얻었다는 거야. 그게 가장 중요한 거야. 알고리즘이 너를 선택했다는 거. 그거 말고는 뭐가 중요해?”
남자는 두 팔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계속 영상을 올리자. 넌 뭐가 됐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어”
회사는 달에 한 번씩 우수사원을 선정했다. 광고주로부터 많은 광고비를 쓰게 한 사원, 새로운 광고주를 영업해 온 사원, 그냥 묵묵히 욕을 먹어가며 기존 계약을 유지시킨 사원. 나는 마지막 항목으로 아주 오래전에 ‘우수사원’을 한번 받은 적이 한번 있다.
이사는 회사 전체 타운홀 회의를 열며 나를 소개했다. 1팀의 이미선 대리. 아주 진상 광고주를 만났는데, 계약을 어떻게든 유지시켰고 지금도 계속 유지 중에 있습니다. 다른 팀에서는 학을 떼던 광고주였는데. 다들 박수한번 주시죠.
그러자 적어도 50개 이상의 손바닥이 힘차게 마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박수를 받아야만 했다. 내 얼굴이 조금은 빨갛게 상기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사는 그러고는 나의 진상 광고주 대응법을 모두가 배워야 한다며, 콜 녹음본을 가져왔다고 했다. 콜센터 전산은 모든 통화를 녹음되는 구조였고, 관리자는 그것을 마음대로 틀고, 보관하며 삭제할 수도 있었다. 일상적으로 녹음되던 그 통화는 스피커 이모티콘으로 된 영상 파일로 재탄생했고, 컴퓨터 앞에 앉아 타운홀 자료를 넘기던 인사팀장이 그것을 곧바로 틀었다.
“아니 이런 것도 내가 따로 연락해야 합니까? 그쪽에서 다 알아서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맨날 광고비 늘리기만 쳐하지 뭐 제대로 되는 것도 없는데. 애초에 귀찮게 자꾸 연락 와서 계약하자는 것도 당신네잖아”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이런 이슈 또 생기면, 신용이고 뭐고 손해배상 청구할 줄 알아.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답”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목소리와 광고주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순간 모두가 모여있던 라운지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이사는 영상이 끝나고 군중 속 침묵 속에서 다시 한번 혼자 우뚝 서있는 나를 향해 박수를 날렸다. 나는 그대로 얼어 있는 채로 박수를 받았다. 다시 한번 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까 받았던 박수보다도 더, 얼굴이 아주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그날 팀장이 점심밥을 먹으며 아까 이달의 우수상 받은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팀원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연정 씨가 갑자기 밥을 먹다 말고 한마디를 더했다.
“그런데요, 미정님, 괜찮으세요?”
“뭐가?”
“아니 아까 얼굴이 너무 창백해 보이셔서.. 혹시 무슨 일이 있나 싶었어요.”
모두가 연정을 쳐다보았다. 나 또한 연정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걸로 그날의 식사 대화는 끝이 났다.
정확히 3시가 지나자 음료 회사의 다른 책임자가 우리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OO 음료 김전무님
우리 회사 전산에 그렇게 떠 있었다. 나는 그 콜을 봤으면서도 모른 채 했다. 어딘가 바쁘게 메모하는 척을 하며. 무언가 약속된 콜을 대응하기 위해 준비하는 척하며.
화면에 콜 알림이 3번 정도 울리자, 내 옆에 앉은 연정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 전산에는 그녀의 이름이 콜에 배정되어 “통화 중”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보고도 모른 체했던 그 콜을 연정은 받아버렸다.
회사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그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 조차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의 귀로는 전화 대응을 하며, 한쪽의 귀로는 연정을 탐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얼마나 호되게 광고주에게 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을지… 나는 나도 모르게 연정이 그 콜을 받은 거에 안심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연정을 각자의 청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연정은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네네 아무래도 그렇죠. 네.”
잠시 침묵
"빨리 확인해 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네네."
또 침묵
둘의 통화는 주로 전무의 말에 조심히 대꾸하는 연정의 말과 중간의 침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대화의 패턴이 약 5분 정도 지속되다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는 낌새가 보였다. 그때 지금까지 대꾸만 하던 연정이 질문을 하다 던졌다.
“그런데요 전무님. 그분 있잖아요.”
또 침묵
“그분 정말 죽었나요?”
잠시 다른 흐름의 공백이 이어졌다. 진공상태처럼 그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는, 무겁고 차분한 침묵이었다. 헤드셋 안의 전무도, 그 모든 것을 모른 척 듣고 있던 회사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침묵했다. 모두의 시선이 연정에게로 이어졌다. 그 당시에도 내가 바라본 연정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포근하고, 침착하고, 배려심 깊은, 연년생의 언니 같은 표정이었다.
연정은 우리 회사 최초로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회사는 내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권고사직의 결정을 내린 적이 없었다. 자리를 화장실 앞으로 옮긴다거나, 일거리를 안 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게 한다거나, 이리저리 상관없는 부서를 옮기게 하며 지치게 하거나. 다양한 방법을 터득한 회사였음에도 연정에게는 조용히 권고사직을 내렸다. 그것은 광고주에게 말하는 일종의 선언문이었다. 우리가 잘못한 직원을, 우리가 손해 보며 자른다. 우리는 이렇게 잘못된 직원에 대하여 강하게 처벌하고 있어.라고 텅 빈 공중에 소리치듯.
그 음료 회사 전무는 직접 회사에 찾아왔다. 옆에 나에게 소리치던 선임급 사원을 데리고. 계약이 중단될 것이라 판단한 회사가 직접 음료수 회사로 찾아가 무엇인가를 설득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음료수 회사 쪽에서 직접 우리 회사에 온다고 했다. 전무급 광고주 간부가 하청 대행사에 오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전무는 실제로 보니 굉장히 젠틀해 보이는 4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옆으로 넘기고, 네이비색 양복에 자신의 회사 뱃지를 가슴에 달고 욌다. 전무는 조그마한 회사 회의실에서 우리 회사 대표와 독대를 했다. 그리고 곧 대표는 밖에 서있는 팀장을 불렀고, 팀장은 연정과 함께 그 회의실에 들어갔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전무는 연정을 보고 별다른 반응 없이 돌아갔다.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녀를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곤 단순히 회의실을 나가 비싸 보이는 검은색 세단을 타고 주차장을 나가버렸다.
나는 연정의 자리가 비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시간을 내 왼쪽 사랑니를 뽑으러 치과에 갔다. 이전에 계획한 것보다 항생제 알약 봉투가 5개쯤 덜 찢어졌을 때, 회사에 연차를 얻을 수 있었다. 회사는 생각보다 별다른 싫은 소리 없이 연차를 승인해 주었다. 나는 연차 사유서에 “개인 사유”라고 4글자를 적고 팀장에서 제출했고 그 서류는 팀장, 실장의 의미 없는 디지털 사인을 받으며 통과되었고 사내 온라인 달력에는 작게 내 연차가 기입되었다.
나는 곧 치과 침대 위에 어정쩡하게 누워있다. 아 입을 벌린 채 초록색 부직포가 내 머리 위에 놓인다. 곧 세상이 초록빛 어둠으로 덮인다. 나는 곧, 초록빛이 투과되는 4개의 동그란 조명의 전구 중, 가장 강하게 빛나는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는 그곳이 조그마한 초록색 소행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꾸준히 어두운 밤하늘에 그 초록빛 행성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