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혹시 모르니까

김주헌 단편소설집_7

by 김주헌


홍수가 온다고 했다. 비는 며칠 전부터 쉬지 않고 왔지만 홍수로 번질 정도의 비는 아니어 보였다. 창밖에 달라붙어 얇게 터지는 물방울들을 보며 -이게 홍수를 일으킨다고- 의문을 삼을 정도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켜면 비상 재난 문자가 셀 수 없이 나열됐고 뉴스에서는 내가 사는 지역이 대피지역이라고 강조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30분마다 한 번씩 대피 안내 방송을 했다.


나는 침실에 누워있는 아내를 대신하여 여러 가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두터운 여행용 캐리어에 칫솔, 일회용 샴푸, 비누 같은 세면용품과 혹시 모를 두꺼운 옷, 갈아입을 속옷들을 구분 없이 한꺼번에 욱여넣었다. 또 다른 작은 핑크색 캐리어에는 미연이를 위한 짐들을 담았다. 그 핑크색 캐리어는 조잡하게 생긴 것 치고 꽤나 많은 것이 들어갔다. 미연이가 3일 동안 입을 옷가지들과 마스크, 혹시 모를 기저귀 같은 것들을 담았다. 얼마나 집을 비울지 모르기에 별달리 고민하고 담을 시간이 없었다. 그냥 단순히 눈에 보이는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꾸겨서 집어넣었다. 이제 곧 미연이가 유치원에서 급하게 하원할 시간이었다.


“우리 이제 곧 나가야 돼”


나는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거실의 내 목소리가 조그마한 게 열려있는 안방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최대한 큰 목소리로. 여전히 비상대피 알람은 쉴 새 없이 휴대폰 진동을 울려댔고 아파트 안과 밖의 대피 안내 방송으로 온 동네가 쩌렁쩌렁했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바깥은 여전히 내리고 있는 얇은 비와, 우산을 펼친 채 대피소로 이동하는 마지막 아파트 이웃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위에서 보고 있노라면, 마치 형형색색 이쁘게 움직이는 꽃 같았다. 알록달록하게 펼쳐진, 비를 막는 꽃. 그 꽃들은 하나같이 다 어디 이사라도 가는 듯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짐들을 끌고 가고 있었다.


여전히 아내는 답변이 없었다. 나는 조그마한 게 열려있던 안방 문 틈새를 열여 재꼈다. 그녀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미 일어나 이미 침대 끝을 의자 삼아 앉아 있었다.


“여보 우리 나가야 된다고. 미연이 곧 온데”


아내는 산발인 머리를 재껴 잠깐동안 나를 보더니 그 상태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곧 우리 집이 홍수로 잠길 수도 있는 상황을 전혀 인지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닦달하듯 말했다.


“옷부터 입어, 짐들은 거진 다 싸놨으니까, 그냥 들고나가면 될 거 같아”


그녀는 화장대 앞으로 다가가 부스럭 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려는 듯했다. 아내의 행동에는 쓸데없는 부산스러움이 없었지만 그다지 긴박한 느낌도 없었다. 나는 아내를 더 보고 있노라면 나조차 이 상황을 잃어버릴 거 같아 곧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가 마저 짐을 싸기 시작했다.


“피아노 가져가야돼”


급하게 유치원에서 하원한 미연이에게 가방을 쥐어주고 신발을 신기던 참이었다. 온 집안에 콘센트를 다 뽑고, 이사하면서 나름 비싸게 주고 산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따위의 것들을 최대한 천장에 가깝게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 가전제품들은 콘센트가 뽑힌 채 회색 전깃줄을 쥐꼬리처럼 덜렁거리며 책장, 냉장고, 에어컨 위에 높게 올려져 있었다. 검은색 가전을 좋아했던 아내의 취향에 맞춰 산 그것들은 모두 억울한 표정을 한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도 데려가 달라고 무언의 항의를 하는 듯했다.


마침내 모든 짐을 다 싸고, 두꺼비집을 내리고, 혹시 몰라 온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놨다. 강풍에 창문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틈새로 홍수가 밀고 들어오지를 않기 바라면서. 제발 대피소에서 돌아왔을 때 티비, 냉장고, 에어컨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현관에서 미연이에게 신발을 신기던 참이었다. 그때 아내는 피아노를 가져가야 된다고 말했다.


“뭐?”


“우리 피아노 가져가야 된다고”


그녀는 팔을 넓게 펼쳐 작은 방에 있는 피아노를 한 번에 들려는 듯 허리를 숙였다. 조그마한 아이용 전기 피아노라고 해도 꽤나 무게가 나갈 텐데, 아내는 그것을 한 번에 들려고 어영부영하고 있었다. 잠옷을 벗고 외출용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아내의 추레한 모습은 비슷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더 이상 새로운 옷을 사지 않았다. 캐리어 안에 가득 담긴 옷들은 모두 목이 늘어나 있었다. 어딘가 덜렁덜렁 거리는 옷들은 마치 생기를 완전히 잃은 동물의 사체 같았다.


“우리 지금 그럴 여유 없어. 빨리 나가야 돼. 이미 사람들 다 대피소로…”


그녀는 내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여전히 양팔을 크게 벌려 피아노를 들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미연이의 오른쪽 신발만 신겨준 채 일어나 아내의 팔을 잡아챘다. 그러자 그녀의 몸 중심이 크게 휘청거렸다. 나는 그녀를 현관문 앞으로 끌고 와 나란히 나열되어 있던 캐리어 하나를 그녀의 손에 들렸다. 미연이가 오른발만 신발이 신겨진 채 아내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경사로가 심한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동네 중학교의 체육관은 조명을 틀어놔도 어두웠고 그늘이 진 듯 침침 했다. 대피소는 생각보다 훨씬 더 협소했다. 늦게 온 탓인지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시끄러운 마트에 온 마냥 다양한 말소리들이 한가득 체육관 안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소란스러움의 밀도로 인해 체육관이 한층 더 무거워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쪽 손에는 미연이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는 캐리어를 들고 본격적으로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딱히 지정된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누구는 체육관 중앙에 동그랗게 모여 영역을 만들었고, 그 이외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육관 벽면을 받침대 삼아 등을 기대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곧 좁게나마 있는 빈자리를 찾아 다가갔다. 부채질을 하고 있는 파란색 꽃 나시를 입은 할머니의 옆자리였다. 체육관 현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은 이동식 농구 골대가 있었는지 바닥이 검게 무엇인가 고정된 그을림이 있었다. 아마 그래서, 그 자리가 유독 장판색과 달라 꺼림직해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나 싶었다. 나는 마치 경계선을 만들듯 작은 핑크색 캐리어와 여행용 캐리어를 일렬로 붙여 세워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앞으로 여기가 우리 자리야. 잘 기억해둬. 바닥에 검은색 흔적이 있는 곳이 우리자리야.”


미연이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미연이를 앉혀두고 곧 고개를 들어 아내를 찾았다. 아내는 발걸음이 늦어, 체육관이 있는 경사로를 올라오기 힘들어했다. 언젠가부터 아내는 몸을 움직이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했다. 몇 층 안 되는 계단과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선 미연이라도 체육관에 두고 도와줄 심산으로 먼저 올라온 상황이었다. 나는 짐을 그 자리에 두고 미연이에게 잠시 앉아있으라고 말한 뒤, 체육관 현관으로 향했다.


예상과 달리 아내는 어느새 체육관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왼쪽 어깨에 작은 보스턴 백을 매고. 아내는 비에 젖은 채로 현관과 체육관 입구 사이에 서 있었다.


“빨리 들어가자, 미연이 기다리고 있어”


나는 조그마한 보스턴백을 아내로부터 가져오며 말했다.


“과연 진짜 홍수가 날까. 집에 너무 많은 걸 두고 왔는데”


아내는 어느새 빗물의 발자국으로 더러워진 체육관 바닥을 보며 말했다. 나는 아내의 뒤에서 손가락질로 저 멀리 검은 바닥이 있는 우리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대비하는 거지. 여기 모든 사람들 다 같은 마음일 거야”


“혹시 모르니까…”


아내는 내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대피소는 밤에도 조명을 끄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치 불을 끄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는 마냥 잔인할 만큼 강렬한 조명이었다. 눈을 감아도 옅은 빛의 잔상이 맴돌 정도였다. 체육관 천장과 벽면 사이의 높게 위치한 조그마한 유리창에는 계속해서 터지는 빗방울들이 보였다. 때떄로 누군가 위에서 체육관 천장을 얇게 두드리듯 소리가 체육관 안에 크게 번졌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지금은 밖에 비가 많이 오는구나’라고 바깥날씨를 추정하며 가늠해야 했다.


시간은 어느새 밤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미연이는 시에서 나눠준 에어매트를 깔고 누워 잠에 들어 있었다.


“여보 눈 좀 붙여”


나는 체육관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를 위해 에어매트를 미연이 옆에 깔아줬지만 아내는 누워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내가 특별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종일 울리는 재난 문자를 스마트폰으로 꼼꼼히 살펴봤고, 날씨 앱을 켜 간간히 날씨를 살펴보고, 우리 동네를 검색해 대피 뉴스 기사를 보는 형식이었다. 사실 나는 아내가 대피소에서 잘 지낼 것이라고 예측을 해서 그런지 별다른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대피소는 딱히 정해진 할 일이 없었고, 오히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이 아내와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 옆에 앉아 오직 미연이에게서 시선에서 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새벽 1시가 지나도, 새벽 2시 30분을 지났을때도 아내는 자지 않았다. 집에서 잠만 자던 아내는 대피소에 오자 별달리 잠을 자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12시 이후로 굉장히 무거워진 눈꺼풀을 견뎌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낮 동안 지배했던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어느새 몸에 빠져나가 온몸이 흐느적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아내보다 먼저 눕고 잠을 청할 수는 없었다. 그냥 그러면 뭔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어느새 아내는 나에게 그런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시간이 새벽 3시를 넘어가자, 나는 몰려오는 잠을 견뎌야 하는것에 집중했다. 등을 기댄 채 앉아 꾸벅 졸다가 머리가 확 떨어지면 앞에 있는 미연이와 옆에 앉아 있는 아내를 확인하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여전히 자고 있지 않았다. 아내의 눈은 어떠한 피곤함과 고달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내 머리가 고꾸라지고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내 옆에 없었다. 미연이는 내 앞에 곤히 누워 자고 있었다. 나는 잔인할 정도로 밝은 체육관 조명을 견디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눈의 초점이 약간 나간 듯 한 곳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조명을 견디며 찌푸린 채 쳐다본 대피소안은 황망했다.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졸음을 견디고 있었다. 몇몇은아예 텐트를 가지고 와서 주황색, 핑크색 오두막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아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녀의 실루엣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이상한 불안감이 내면에서 연기처럼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몸 속 텅 빈 어딘가 서서히 퍼지는 보라색 연기. 시간은 어느새 새벽 4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회사에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2시를 갓 넘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준서가… 지금 병원에 있대”


아내는 누가 들어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곧장 회사에 반차를 내고 준서가 있다는 응급실로 향했다. 운전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전화가 울렸지만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빠르게 아내와 준서에게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만이 나를 감쌌다.


병원 지하 주차장 구석에 대충 주차를 하고 곧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안쪽이 가려진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 후끈한 공기가 순식간에 나를 감쌌다. 나는 잠시 다른 세상이 펼쳐진듯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 간호사에게 내 아들 준서의 이름을 말했다. 간호사는 손짓으로 저 안쪽을 가리켰다. 저 안쪽은 응급실과 연결되어 있는 중환자실이었다.


나중에, 그러니까 내가 중환자실에서 아내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을 때, 또 회사에다가 전화를 걸어 휴가를 더 붙여 써야겠다고 말을 해야만 했을 때, 그때쯤 교장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유감입니다’라고. 교장실 소파에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또 다른 여성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살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여성 선생님은 준서의 담임 선생님이었다.


후에 준서에 대한 진상조사가 시 단위에서 이루어졌다. 몇 명의 시 공무원과 경찰, 소방관이 함께했다. 마치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반면교사 해야 한다는 듯이 수많은 정부 부처들이 참여했다. 그날 준서는 학교 전체 화재 대피 훈련을 하고 있었다. 화재 사이렌이 학교 전체에 울리고 2층에 위치한 준서는 아마 담임선생님의 지도 아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계단을 내려갔을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않게, 느리지도 않게, 아마도 다 같이 통제받는 훈련이 재밌다는 듯 자기 친구들과 키득거리며. 모두가 운동장에 모이고, 짧은 화재 대피 훈련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날 오후, 학교 복도의 화재 안전 차단문이 뒤늦게 작동했고 어째서인지 교실을 벗어난 준서는 그 문틈에 끼어야만 했다. -라고 안전모를 쓴 정부 사람들은 설명했다. 그 당시 어린 초등학교 2학년의 시선에서는 차단문이 내려오는 것을 보지 못했을 거라고, 화재 차단문이 내려온 것은 그날 화재 테스트를 위해 켜놓은 안전 시스템이 오류로 뒤늦게 다시 발동되어 내려온 거라고,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및 중고등학교의 안전 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고, 시의 재난 안전 담당 공무원은 그렇게 말했다. 시는 나와 와이프, 그리고 갓난아기였던 미연이에게 재난 피해 보상금을 주었다. 또한 학교 자체에서 가입한 화재보험사에서는 우리에게 통장 사본과 서명을 요구하였고, 몇 주 안되어 확인해 보니 넉넉한 숫자의 돈이 통장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 숫자 뒤에 딸린 0을 굳이 세보지는 않았다. “상해 사망 보험금”. 통장에 찍힌 입금 내역은 준서의 이름보다는 훨씬 더 무거워 보이는 이름이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한번 짐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 준서의 방을 치웠던 적이 있다. 우리는 그날, 준서와 관련된 모든 물품들을 정리했다. 양말과 얇은 잠옷 같은 여러 옷가지들, 책상에 있는 2학년에 멈춰있던 여러 교과서들 , 준서가 썼던 이불과 베개 같은 것들이었다. 워낙 조그마한 것들이라 그런지 하나를 치울수록 금세금세 치워지는 느낌이었다. 몇 가지 뼈대가 굵은 책상이나 옷장 같은 것들은 폐기물 처리 신고를 하고 폐기 스티커를 붙여 바깥에 내놓았다. 그중에서는 준서가 사용하던 피아노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달라고 떼서 놓고는 몇 번 치지도 않았던 피아노였다. 준서는 6살이 되던 해 여름 피아노를 샀고, 그 해 겨울 친구들을 따라 태권도를 등록했다.


준서의 방안 모든 것을 치우자 방은 치우기 전보다 더 좁아 보였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 차있을 때 보다 더 작고 답답한 모습이었다. 나는 잠시 좁은 창문과, 그곳에 투과되는 햇빛과, 그 투과된 햇빛을 받아들이는 좁은 4개의 벽면을 바라봤다. 그 좁은 방에서 오직 준서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벽면에 그려진 여러 낙서들과 준서가 더 어렸을 때 붙여놨던 천장의 야광 스티커들 뿐이었다. 나는 그것들까지는 굳이 떼지 않았다. 그것들 조차 없애면 방이 훨씬 더 좁아질 것만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좁아 보였던 준서의 방안에 피아노가 들어와 있었다. 분명 어제 폐기 스티커를 붙이고 분리수거장에 내놓은 피아노였다. 아내는 주방에서 나에게 말했다.


“피아노는 나중에 미연이도 쓸 수 있으니까. 버리면 아깝잖아”


나는 별달리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피아노를 거기다가 내버려 두었다. 좁게 비어진 준서의 방에.




나는 아내를 찾아 뛰기 시작했다. 경사가 가팔라 내려갈 때마다 무릎이 어딘가 부딪친 듯 아팠다. 비는 여전히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얇고 연했지만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비였다. 아내는 대피소의 화장실, 샤워실, 탈의실로 쓰이는 비품창고,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나는 자고 있는 미연이를 체육관에 두고 온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아내를 빨리 찾아야만 했다. 미연이가 깨버리기 전에, 아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래서 나는 우산도 없이 경사로를 뛰어 내려갔다. 아내는 발걸음이 느리니까, 어딘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금세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체육관 대피소 경사로 내리막길이 끝나자, 어느새 길거리는 흙탕물로 가득 차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무릎 그 이상까지도 물이 차 보였다. 나는 그 흙탕물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기 전, 넓게 펼쳐진 길거리를 둘러보았다. 길거리에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흙탕물과 가로등, 불이 꺼진 상가 건물들만 어둡게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집으로 향해야 했다. 아내와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그곳밖에 없었다. 집은 대피소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발을 옮길 때마다 물살이 있는 계곡 안에 발을 담근 듯 발가락 사이로 물길이 느껴졌다. 물살은 나의 반대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어딘가 물의 흐름이, 마치 제 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것처럼 한자리로 모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물의 종착지에 역행하며 집을 향해 발을 디뎠다. 집 앞의 골목길로 들어오자 어느새 범람한 물은 허리춤을 감싸고 있었다. 아마도 집 주변의 천이 범람한 듯싶었다. 여전히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흙탕물을 빼면. 그럼에도 나는 계속 아내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아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었다.


오래된 빌라는 불이 꺼진 채 황연히 서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던 곳이라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1.5층이라고 불리는 낮은 우리 집의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어느새 흙탕물은 집안을 덮치고 난 후였다. 집은 그 흙탕물이 버거운 듯 다양한 것들을 토해냈다. 집안에 있던 에프킬라, 초록색 약봉투, 나무젓가락, 안경집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녔다. 나는 그 토사물을 헤치고 안방과, 화장실, 미연이방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더 많은 집안의 잡동사니들이 토해져 나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준서의 방을 열어재꼈다. 준서의 방안에는 그 어떤것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피아노가 없어졌어” 나는 말했다. 그것을 속으로만 말했는지, 실제로 입 밖으로 꺼냈는지 가늠할 순 없었다.

어쨌든 준서의 방은 피아노가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아내는 직장을 그만뒀다고 나에게 말했다. 별다른 사유도 없이, 별다른 전조도 없이 어느 순간 일을 그만뒀다고 통보했다. 아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철학 관련 책과 프린터 되어 쌓여있던 자료들은 노랗게 먼지를 머금었다. 아내는 교수로서 더 이상 자신이 공부해 왔던 책과 논문 같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방치되어 갔다. 나는 그 두터운 자료들 위에 적힌 여러 손 글씨들과 형광펜들을 애써 무시했다.


나는 아내가 그만두었다는 말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사회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잠복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 누구나 동의할 사안이었다. 준서가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 일 때문에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게 큰 죄인 듯 말하곤 했기에, 아내가 일을 그만두고 미연이에게 집중하려나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휴식기간은 미연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알아서 씻고 옷을 입고 유치원 버스를 탈 때까지도 지속되었다. 아내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휴식기간 동안 집에서 하루종일 잠만 잤다. 정말, 하루종일. 내가 출근을 할 때도, 퇴근을 했을 때도 아내는 잠을 자고 있었다. 별달리 밥을 먹은 흔적조차 없었다. 싱크대에 있던 배수구 음식물 쓰레기는 출근과 퇴근을 반복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주말마다 열어본 냉장고의 음식들은 한기를 품은 채 서서히 썩은 냄새를 풍겨왔다.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고, 나 자신을 설득시켰다.


어느 순간부터 이웃 주민들의 속닥거림이 노골적으로 들려왔다. 매주 수요일 분리수거를 버릴 때, 출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걸어갈 때, 우유를 사기 위해 집 앞 슈퍼마켓에 들릴 때 특히 그랬다. 나는 그것이 우리를 멸시하거나 비하하는 말들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아마 이런 말들이었을 것이다. 저기네 가족이 그 가족이래, 요 앞 초등학교에서 사건 난 거 있잖아. 그러고 애엄마가 말을 잃었대. 어머 안타까워라. 뭐 이런 말들.


동네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자 우리 가족은 더욱 외로워졌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밖에 추우니 집 밖에 나가지 말라고. 나는 동네 사람들의 속닥거림이 아내에게 영향을 끼칠까 걱정되었다. 아내는 그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 아내는 내가 별다른 변명 거리를 제공하지 않아도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너무 더우니까, 너무 건조하니까, 너무 공기가 안 좋으니까’의 변명들은 아내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내는 더 이상 집 밖을 나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잠을 잘 뿐이었다.


나는 시간이 더 지나고, 한번은 아내에게 이사를 가자고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이사를 가면 모든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한 말이었다.


“싫어, 귀찮아.”


아내의 답변은 짧았고 무성의했다. 정말 귀찮은 듯 보이는 말투와 표정이었다. 연애 때부터 결혼한 이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태도였다. 그러고는 아내는 다시 잠을 자러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무엇이라도 더 말해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그때도, 그냥 단순히 아내에게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끔은 아내가 자고 있는 안방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그 안쪽은 어떤 인기척이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 틈새로 아내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는 문을 아주 살짝 열어놓곤 했다. 그 간격을 문 안쪽에서 봤더라면, 바깥은 아주 좁아 보일 정도의 틈새였다.




아내는 빌라 골목 바깥 사거리에 있었다. 아내는 배꼽까지 흠뻑 젖은 채로 홀로 서 있었다. 아내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내를 향해 다가갔다. 아내는 나를 봐도 놀라는 표정하나 없었다. 그리고 아내의 품 안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아내는 살짝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피아노를 엉거주춤 잡고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여보 이제 그만해”


나는 아내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단했다. 말랑했던 팔뚝살이 마치 모두 단단히 얼어버린 것 같았다. 물이 더 차오르기 전에, 아내가 더 얼어버리기 전에 우리는 어서 대피해야만 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너무 굵게도 아니고, 너무 얇게도 아닌 상태로 계속해서 내렸다. 마치 티비가 살짝 지지직거리며 화질이 떨어지듯, 얕은 비로 인해 현실에서 노이즈가 낀 듯 뿌옇게 보였다.


아내는 내 말이 들리는지 안 들리는지, 또 양손을 넓게 펼치고 허리를 어영부영 굽혀 피아노를 옮기려고 했다. 나는 무엇인가 구조하는 듯이 끙끙대며 앞으로 나아가는 아내를 잠시 동안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무엇인가 말해야 했다. 어떤 말이라든지. 이제는 잊으라 하던지, 당신만 힘든 사람처럼 오버하지 말라든지, 그냥 남들처럼 살면 안 되냐고 하소연하던지. 다양한 말들이 내 입속을 맴돌았다. 다만 어떤 말도 입에서 꺼끌 거리며 쉽게 뱉어지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언제부터 뭐가 잘못된 거지.


그때 갑자기 배꼽까지 찼던 흙탕물이 순간 출렁하더니 나와 아내, 그리고 피아노를 덮쳤다. 나는 몸의 균형을 일으켜 금세 일어났지만 아내(그리고 피아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급하게 안경에 가려진 흙탕물을 털어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내가 정확히 찾는 것이 아내인지, 피아노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보트를 타고 있는 주황색 구조대원이었다. 그들은 나를 향해 무엇인가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한 채 아내를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온몸이 흙탕물로 젖어 오래된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아내의 브래지어 형태가 온전히 보이고 싶다는 듯 등 뒤에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곤 나는 아내의 어깨너머 둥둥 어디론가 떠내려가는 피아노를 봤다. 피아노는 사선으로 반쯤 잠긴 채로 우리의 시선에서 멀어져 갔다. 피아노는 홍수의 출렁거림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치 자기 자신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채 둥둥 떠다니며. 나는 그것을 아내의 어깨너머로 바라보았다.


아내는 울고 있었다. 떠내려가는 피아노를 보며,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마치 숨쉬기가 힘든 스쿠버다이버처럼 중간중간 허업허업 거리면서. 혹은 사료를 먹으러 올라온 물고기떼처럼 가쁜 숨을 내쉬며. 그녀의 얼굴에는 흙탕물이 가득했다. 더러운 흙과 자그마한 돌 같은 것들이 그녀의 얼굴에 잔뜩 붙어있었다.


나는 아내를 한번 쳐다보고, 그 피아노를 망연하게 쳐다보았다. 아내의 뒷모습과 겹친 채로 바라보는 피아노는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피아노는 목적지를 정해두고 떠나는 듯 힘차게 움직이는 물살을 따라 몸을 맡기며 부양하고 있었다. 홍수는 어느새 우리의 배꼽선을 넘어 가슴까지 차오르려 하고 있었고, 여전히 내 뒤에서는 누군가 부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비슷한 시기에 대피를 했다. 이제는 대피소에 있는 동네사람들의 얼굴이 익숙해질 정도였다. 마치 동네사람들은 이제 매년 여름, 행사가 된 듯 자연스레 짐을 싸고 경사가 높은 곳에 있는 체육관으로 대피했다. 나는 많은 주민들이 매년 대피해야 하는 이 동네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작년에 봤던 얼굴들이 매년 체육관 비슷한 자리에서 모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란색 꽃 나시를 입은 할머니, 캠핑 용품을 챙겨 온 4인 가족, 모기 살충제를 이곳저곳 뿌려대는 주름이 진 여성… 다양한 모습의 이웃들이 한 곳에 모여 홍수로부터 대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시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번 물난리가 난 이후로는 어떠한 홍수도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 시장이 말한 범람 대책 토목 공사 때문일 거라고 다들 짐작했다. 그 공사에는 조 단위의 세금이 투여되었다고 인터넷 기사는 말했다. 그리고 그 기사의 댓글에 가장 좋아요를 많이 받은 댓글은 말했다.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대비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매년 대피를 해야만 했다. 혹시 모르니까, 매년 시는 항상 빠르게 움직였다. 혹시 몰라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혹시 몰라 홍수에 대한 경계령을 높이는 듯했다. 마치 안전에는 타협할 수 없다는 듯이.


나는 그 이후로 가끔씩 피아노 꿈을 꾸곤 했다. 피아노는 이번에도 반쯤 잠긴 채 어디론가 떠내려 가고 있었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갈색 흙탕물이 아닌, 깨끗하고 투명한 물에 맞춰서, 단순히 물의 유속에 몸을 맞긴 채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그만 좀 해”


그러자 누군가 나한테 말했다. 분명히 내 목소리였는데, 내가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 둔탁한 소리에 나는, 꿈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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