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_3번출구 (1)

김주헌 단편소설집_6 (1)

by 김주헌

“너무 모든 걸 심각하게 생각해선 안돼.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도 있는 법이거든”


그녀는 차 안에서 말했다. 나는 굳이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단순히 운전에 집중했다. 엑셀과 브레이크, 그 미묘한 틈새 공간에 발을 왔다 갔다 거리며.


그녀와는 대학교 동기의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만났다. 대학 졸업 이후로 10년이 훌쩍 지난 후였다. 그 결혼식에서 그녀는 단정한 네이비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아마 그 옷이 그녀가 가진 가장 비싼 옷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안녕’이라고 말했고, 그녀도 나에게 ‘안녕 오랜만이네’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그녀와 나는 몇 번의 만남을 가졌다. 내가 먼저 연락해 괜찮은 시간대를 묻고, 그녀가 만날 수 있는 날짜를 말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카페를 가고 때때로 모텔을 가곤 했다. 그녀와 나는 사귀는 것도, 안 사귀는 것도 아닌 애매한 관계 속에서 만남을 지속해 갔다. 그녀와 나, 그 누구도 우리 관계에 대해서 확정을 지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주로 침묵 속에서 대화했는데, 10번 중 2번은 그녀가 침묵을 깼고, 2번은 내가 별 시답잖은 이야기로 침묵을 깨곤 했다. 그리고 나머지 6번은 단순히 침묵 속에 있는것이 우리의 대화 방식이었다. 가끔 그녀가 침묵을 깨는 타이밍이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너무 모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나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매번 그랬던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그러면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치 다음번이나 그 다음번에는 침묵을 깨야 하는 순번이라고 일깨워주듯이.


그녀는 대학시절, A의 여자친구였다. 나와 A는 같은 학과 동기로, 그럭저럭 대학교 생활을 같이 했지만 사적으로는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낼 만큼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다만 A는 여자친구가 생기고 난 뒤에도 나와 함께 같이 다니기를 원하는듯 했다. A는 여자친구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내가 대학교에서 가장 친한 애라고. 그는 나를 오래된 소꿉친구를 소개하듯 여자친구에게 소개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대학 1학년 시절 내내 같이 붙어 다녔다. 같이 수업을 맞추기 위해 수강신청 표를 공유하고, 돈을 나누어 전공 서적을 한 권을 구매하고 복사해서 다 같이 읽곤 했다. 오전 수업이 끝나면 다같이 학교 앞 싸구려 분식집을 갔고, 오후 수업이 끝나면 호프집에 들러 간단한 요깃거리 안주와 500cc 맥주잔을 나열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우리는 모두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기에 학교 앞 전철에서 시간을 정해서 만났고, 누군가 늦는다고 연락이 오면 수업에 지각을 하더라도 서로를 기다렸다. 우리는 마치 다리 한쪽이 없어지면 무너져버리고 마는 삼각대처럼 항상 붙어 다녔다.


그 당시 학교는 학사 건물들이 서로 다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수업이 바뀔 때마다 오랫동안 걸어야 했는데,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속도를 맞춰가며 걸었다. A가 가운데에서 걸으면, 내가 왼쪽, 그의 여자친구가 오른쪽에서 걷는 식이었다. 대화 주제도 주로 그가 정했는데, 그가 주된 의견을 꺼내면 우리가 왼쪽, 오른쪽에서 약간의 의견을 더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그가 갑자기 화장실이라던지 어디론가 가버리면 우리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나는 확인할 것도 없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신발 끝을 쳐다보거나, 막연히 창문 밖 지나가는 행인을 바라보는 식이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아무런 대화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침묵 속에 있었다. 원래 그런 곳에서 크고 자랐다는 듯이. 그러고 그가 돌아오면, 우리는 다시 대화를 시작하곤 했다. 이러한 특수한 관계는 2학년이 시작될 무렵, 내가 군대를 가고 나면서 끊어졌다. 2년 뒤 복학하고 나서는 그와 그녀를 단 한 번도 학교에서 마주치지 못했다. 그 말은 곧 사적으로는 전혀 만날 방안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유일하게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A를 중간에 두고 바라본 그녀는 당시 굉장히 깨끗한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셋이서 같이 수업을 듣는 날이 오면, 나는 그녀 자체보다는 그녀의 머릿결을 기다리는 듯했다. 나는 캠퍼스의 따듯한 햇빛에 반사되는 그녀의 머릿결을 남몰래 확인했다. 푸석하지도, 너무 기름지지도 않은 그녀의 머릿결은 저 멀리서 보더라도 일품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머릿결이 여유로운 햇빛을 잔뜩 흡수해 머금고 있는 것 같았다.


“A는 어떻게 됐어?”


나는 우리가 결혼식에서 만난 이후로, 그녀에게 한번 A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그녀가 A에 대해 한번쯤은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추후에 침묵을 깨는 순번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더 캐묻는 대신 침묵을 지키는 그녀의 머리칼을 쳐다보곤 했다. 그녀의 머리칼은 어느새 삐죽삐죽 갈라지며 푸석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녀 또한 서른 중반을 넘기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애매모호한 만남이 반년정도 지속되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긴 하나의 메신저를 보내왔다. 만약 스마트폰이 없었더라면, 편지로 왔을 내용 같아 보였다. 그 정도로 그 문자는 길고, 두껍고, 어딘가 바스락 거렸다. 우리는 더 이상 만남을 그만 가지는 게 좋을 거 같다, 우리의 만남은 뭐 하나 정해진 것이 없었으니 아니니 아쉬워할 것이 없다 - 따위의 내용이었다. 나는 그녀가 말한 “정해진 것이 없는 관계”라는 의미가 정확히 뭔지 묻고 싶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메신저의 끝에는 A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네가 언젠가 A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지? A는 아마 죽었을 거야.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는 말이야.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 그는 오직 내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어. 옛날 대학교 시절, 그러니까 우리가 셋이서 만나 놀았던 시절 속에서, 그는 여전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남아있어. 그를 찾으면 만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그를 젊은 시절의 그로 남겨두고 싶어.”


나는 그 메시지에 별다른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내가 읽었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별다른 메신저를 이어가지 않았다.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 만약 내가 그녀를 결혼식에서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그녀를 깨끗한 머릿결을 가진 그녀로 알고 있었을텐데 -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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