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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헌 Oct 24. 2024

단편소설 - 컵밥

김주헌 단편소설집_5

 

어느 순간부터 대화의 끝은 침묵이었다. 무엇을 물어도, 무엇을 걱정해도, 무엇을 싫어해도 마찬가지였다.


“빨래는 매일 하기로 했잖아”


침묵


“어제 뭐 먹긴 한 거야?”


침묵


“너 요새 운동은 나가고 있어?”


또다시 침묵


기주는 언젠가부터 그가 대화를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상적인 대화도, 진로에 대한 대화도, 과거에 대한 대화들도.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회피하고 있었다. 경찰 고시생 6년 차였던 헌이는 완전히 동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끝없이 연결된 철로에 망연하게 서버린 기차처럼. 그는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둘이 동거를 시작한 지 만 3년, 곧 헌이가 경찰 공무원이 되면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지도 2년이 지난 상태였다.


헌이가 고시 준비 만 4년이 지났을 때쯤, 매우 엄격하게 지켜져야 할 헌이의 생활패턴은 시시각각 달랐고, 때때로 불규칙했다. 그럼에도 기주는 일정한 자신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헌이의 뒤처리를 도맡아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방바닥에 헝클어진 빨래들을 세탁기에 넣었고, 말라비틀어진 국물자국이 보이는 설거지 그릇들을 철 수세미로 빡빡 닦았다. 이 모든 뒤처리들은 기주 자신이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헌이가 겪고 있을 고통을 기주 또한 겪어봤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다른거 한번 해볼까”


그러다 헌이는 밤늦게 들어와 침대에 누워있는 기주에게 한 번씩 묻곤 했다. 뻔히 기주가 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말이 헌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기주에게 하는 말인지 정확히 분별할 수 없었다. 헌이는 항상 한마디를 던지고, 마치 대답이라도 기다리는 마냥 한 없이 침묵했다. 그럴 때마다 기주는 계속 자는 척을 해야 하는 건지, 마지못한 척 답변을 해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그리고 곧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헌이의 질문을 들은 나는 미간을 찌푸린 못난 표정일까, 눈을 감은 안도의 표정일까, 불쌍한 연민을 느끼는 동정의 표정일까.


둘은 노량진 길바닥에서 처음 만났다. 기주는 노량진 길바닥에서 2천5백 원짜리 컵밥을 먹고 있었다. 진한 갈색의 돈가스 소스와 하얀색 마요네즈가 범벅으로 뿌려진 동그란 컵밥이었다. 얇은 싸구려 돈가스와 날아다니는 가벼운 밥알의 식감을 숨기려는 듯, 컵밥의 양념들은 매우 짜고 달콤했다.


컵밥을 먹기 위해서는 가벼운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날아다니는 밥알을 입에 밀어 넣고, 비교적 짧게 씹으려고 노력하며 컵밥을 목안으로 넘겨야 했다. 밥알은 매우 건조하여 까슬거렸고 고소한맛보다는 쓴맛이 났다.

그러고는 코로 숨을 한번 내쉬면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예상 가능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짜고, 달고, 건조하고 퍽퍽한 맛이.


그런 컵밥집 주변에는 기주와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머리를 바짝 묶어 올리고, 한 없이 편한 츄리닝 상하의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에 두꺼운 책을 들고 컵밥을 먹는 그런 사람들이. 그런 똑같은 사람 중에서, 헌이도 있었다. 이 헌, 두 글자로 된 그 이름을 가진 아이는 경찰 준비생이었다. 얇은 체육복안에 얕지만 넓게 도포된 근육이 몸에 너무나 잘 보였던 아이, 굵은 안경알 안에 작아진 눈이 날카로웠던 헌이를 기주는 그때 처음 만났다.


“여기 앉아도 되죠?”


헌이는 기주에게 처음 그렇게 말했다. 기주는 그때도 컵밥집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이성에게 거는 첫 말이라곤 하기엔 전혀 어떠한 감정이나 오묘함이 섞여 있지 않은, 오직 잠깐동안 길거리에서 앉아 밥을 먹고 싶은 목적만이 가득한 사람처럼 헌이는 말했다.


“네”


기주의 무미건조한 동의를 얻은 헌이는 거친 아스팔트 골목길에서 앉아 밥을 먹었다. 기주는 쪼그려 앉아서, 헌이는 완전히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서 컵밥을 먹었다. 노량진 길바닥에서 컵밥을 먹는 그 둘 앞으로는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야채를 가득 담은 조그마한 트럭, “가족마트”라고 크게 주황색으로 적혀있는 얇은 다마스, 두꺼운 책을 가방에 한가득 넣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고시생들. 모두가 그 둘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하게 지나갔다. 마치 그 자리에, 매일 앉아 있던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헌이는 그다음에도, 계속해서 기주의 옆에서 밥을 먹었다. 그것이 세 번 정도 겹쳤을 때는 우연, 5번일 때는 의심, 10번쯤일 때는 기대로 바뀌었다. 그 낮은 자세로 앉아 있는 둘은 컵밥으로 서로가 서로를 공유했다. 어쩔 때는 스팸마요, 어쩔 때는 참치마요, 어쩔 때는 생선가스. 전부 비슷한 양산형 맛이었지만 어떻게든 각자의 개성을 잊지 않으려는 음식들로 그날그날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둘은 정해진 시간에 컵밥을 먹으며 서로를 알아갔다. 마치 두 존재가 서로가 서로의 보험인 것처럼. 불안정한 미래에 묶인 두 존재는 흙속의 서로 다른 나무의 뿌리가 얼기고 성키듯, 서로가 서로에게 엉키며 고시생활을 이어갔다.


둘 중 먼저 공무원 합격에 발을 들인 것은 기주였다. 3년 차 시험 끝에 사무 소방직으로 합격한 그녀는 곧바로 헌이와 방을 합쳤다. 기주는 노량진 1.5평 고시원에서 18평 구축 투룸 빌라로 옮기는데 드는 보증금이 그다지 자신에게 크다고 느끼지 않았다. 기주는 시험에 붙었고, 그만큼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기에 여러 은행에서 대출을 허용해 줬다. 대출의 막연한 무거움보다는 고시방을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이 더 컸다. 그리고 기주는 이 기분을 헌이도 빨리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말했잖아. 보증금 구할 수 있다고. 왜 누나 혼자 다 내는 거야”


어떻게든 보증금을 보탤 수 있다고 우기던 헌이는 홀로 계약을 진행해 버린 기주가 미운 듯 말했다.


“너가 나중에 경찰 합격하면, 그때 신혼집 보증금 크게 내. 그때까지는 내가 내줄게”


기주는 삐진 어린아이를 다루듯 말했다. 군입대로 사회생활을 2년 늦게 시작한 헌이가 보증금 같은 큰돈을 모았을 리 만무했고, 굳이 서로의 부모님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각자의 부모에게 첫인사를 드리기 전에, 아직 헌이의 합격이 정해지기 전에, 여자친구와 동거를 위해 보증금을 구하러 본가에 가는 헌이의 뒷모습을 상상하기도 싫었다. 분명 기주의 머릿속에서 헌이는 경찰이 될만한 사람이었고, 그 믿음에서 기주는 보증금을 홀로 선입금했다.


하지만 기주의 예상과는 다르게 헌이는 쉽사리 시험에 붙지 못했다. 항상 시험 결과는 1~2 문제로 탈락이었다. 그 결과에서 그는 1년 차 때는 희망을, 3년 차 때는 분노를, 5년 차 이후부터는 무덤덤함을 맛본 듯했다. 마치 그 1문제의 아쉬움은 그를 길들이듯,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잠복해 갔다.


“한두 문제 때문에 포기하기는 아쉽지 않아? “


주변에서 무책임한 위로가 가득 섞인 질문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꽂혔다. 헌이가 한 번은 기주에게 말했다.


“붙어야 아쉬운 거지. 아쉬워서 붙는 게 아니잖아”


헌이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말을 이었다.


“그 한두 문제 때문에 떨어진 아쉬움이 나를 벗어나지 못하게 해. 더 이상 떠날 수가 없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아. 분명 바로 앞에 있는데, 내가 한 발자국 가면 그건 한 발자국 더 앞서있어. 그래서 절대 잡히지 않아"


기주는 그런 헌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여전히 말랐고, 두꺼운 안경 안에 작아진 눈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헌이는 분명 어딘가 뒤틀려 보였다. 검고 뜨겁고 축축한 어떤 것이 헌이에 등에 업혀있는 듯했다. 무거워도 별달리 티를 내서는 안 되는, 그런 짐을 들고 있는 듯했다. 그럴수록 기주는 입을 통한 조언보다는 지갑을 열어 최대한 비싸고 맛있는 것들을 먹였다. 때깔 좋은 한우, 빛깔 좋은 형형색색 과일들, 수소문하여 찾은 한약방의 보약까지. 입맛이 없다고 해도 억지로 입을 벌려서라도 먹였다. 그것이 기주가 헌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기주는 소방 사무 공무원이 된 후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행정적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누군가의 미숙함으로 인한 교통사고, 누군가의 뒤틀린 분노로 발생한 폭행사고, 혹은 누군가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한 죽음까지도.


기주가 공무원이 되고 발령된 첫 도시는 서울 외곽에 있는 곳이었다. 끝과 끝에 가야지만 보이는, 아슬아슬하게 서울에 걸쳐있는 곳. 좁은 골목길이 많은, 위아래로 높낮이 불규칙한 계단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언뜻 봐서는 겨울철 빙판길 사고나 우범지대로 강도사건이 차고 넘칠 것 같지만 그것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사고는 고독사(孤獨死)였다. 한 여름의 증기나 겨울의 날카로움 같은, 각자의 계절이 자신의 독기를 뿜을쯤이면 그 좁은 골목길의 동네에서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고독사들이 튀어나왔다. 어딘가 숨어있기 아쉽기라도 하다는 듯이. 기주는 그럴 때마다 일종의 증빙을 해야 했다. 이 사람은 어떤 가족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미상의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고, 이 사람은 어떤 연유로 어떤 빚이 있는데 그것을 다 갚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죽음을 고독하게 보냈다고 증빙하는 일들을.


“00일 00시, 불분명한 사유로 고독사한 것으로 추정. 가족 관계 및 지인 연락 두절로 정확한 최신 신원파악 어려움”


그러곤 전기장판이 사람의 형체로 검게 물든 사진, 혹은 화장실에서 하얀색 타일이 검게 물든 사진,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있는 방안 장판이 다 검게 물든 사진, 다양한 고독사 현장 사진들이 그녀에게 서슴없이 다가왔다.

사람이 죽으면 주변이 검은색이 되는구나. 기주는 속으로, 오직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치 육체는 떠나가고 검은 그림자만이 남는, 어떤 판타지 소설에서의 내용처럼. 기주는 그렇게 검은 죽음들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헌이가 검게 변해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헌이는 새벽 시간을 넘겨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기에 집은 항상 텅 비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주는 매번 퇴근 이후 두꺼운 이불속을 팔로 꾹 눌러보고, 베란다 문을 확 열어보고, 화장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닫곤 했다.


“헌아.”


침묵


“헌아.”


침묵


“헌아 거기 있니”


또 다시 침묵


기주는 텅 빈 방 안에서 조용히 헌이를 부르곤 했다. 다행히 그 누구도 답변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검게 변하지 않았다. 오직 헌이가 먹고 나간 밥그릇과 널브러진 빨래들만이 헌이가 살아있음을 증빙했다. 기주는 그것들에 안심하며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고 이불을 정리했고 설거지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안 정리가 끝나면, 기주는 가끔씩 책상 위에 올려진 오래된 노트북을 켜보았다. 기주가 대학생 시절부터 써왔던, 무식하게 크고 무거웠던 노트북이었다. 그 노트북은 기주가 합격한 이후, 자연스레 헌이에게 넘어갔다. 그 안에는 다양한 문제집 pdf와 인강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그 노트북을 열 때면 항상 오래된 책장을 열듯, 한 박자 늦게 화면에 불이 들어왔고, 화면에 뜬 날짜는 오늘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전에 열었던 바로 그 날짜에 멈춰있었다. 어쩔 때는 3일 전 오후 11시, 어쩔 때는 일주일 전 오전 3시, 심할 때는 3주 전 오전 5시… 그 노트북은 더 이상 현재를 나타내지 못하고 과거만을 비추며 작동했다. 헌이가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열었을 그 시간이, 그녀에게 비추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번에 그 노트북을 열 때는 오늘을 나타내고 있겠지 - 이렇게 생각하며 기주는 오래된 노트북을 덮으려고 했다.


다만, 그날은 여러 인터넷창이 켜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 겹겹이 쌓여있는 다양한 인터넷창들은 그녀가 발견해 주길 바란다는 듯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된 노트북을 자신의 앞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러곤 그 오래된 창들을 조심스레 켜보았다. 기주는 그 많은 창들이, 자신 처리해야 했던 검게 변해가는 과정이 아니길 빌어야 했다. 어떤 죽음, 포기, 혹은 자살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아올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세 보증금 계약“

“타인이 전세보증금 돌려 받는법”

“계약 만기 전 전세보증금…"


전세보증금.


기주의 예상과는 다르게 다양한 보증금과 관련된 키워드들이 검색창에 나열되어 있었다. 기주는 잠시 오래된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직 헌이가 돌아오기 전 텅 빈 집안, 기주의 얼굴을 밝히고 있는 건 오직 오래된 노트북의 불빛뿐이었다.




“누나 오늘은 내가 살게.”


헌이는 간만에 츄리닝 차림이 아닌, 청바지와 니트 차림으로 집 밖을 나서며 말했다. 둘은 간만에 저녁을 먹으러 집 밖을 나섰다. 매주 수요일, 기주와 헌이는 매주 수요일이 돌아오면 밖에서 밥을 먹었다. 기주가 고시생이었을 때, 딱 하루 수요일 쉬던 그 버릇이 여전히 둘에게 남아있는 듯했다.


“남들 쉬는 날 쉬면, 왠지 불안해. “


“뭘 불안해. 우리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뭔가 남들 쉴 때 더 해야 우리가 합격하지 않을까”


고시생 시절 기주는 헌이에게 말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었고, 일주일에 하루는 쉬는 날을 가져야 했다.


“그러면 수요일날 하루 쉬자. 딱 일주일의 중간. 수요일”


7일을 정확히 반으로 가를 수 있는 거였나. 기주는 이런 생각을 했지만,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래 좋아 수요일. 그날만큼은 쉬자 우리”


둘은 그렇게 수요일이 되면, 한없이 쉬고자 노력했다. 처음에는 둘이 누가 더 뒹굴거릴 수 있나 대결하듯 누워 잠만 잤고, 어느 정도 고시 연차가 쌓였을 때는 - 그래봤자 기주는 2~3년 차였지만- 고시원을 벗어나 서울 시내를 걸어 다니는 시간으로 변해갔다.


둘은 수요일만 되면 한없이 걸었다. 서울의 사람 많고 냄새나는 비좁은 거리를,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많은 한적한 산길을, 차의 공허한 마찰 소리밖에 나지 않는 크나큰 한강다리를. 마치 일주일 동안 독서실에 박혀 공부하는 목적이 걸음을 축적하기 위해서인듯, 그리고 그 축적한 걸음을 수요일에 모두 써야 한다는 듯이.


그 버릇은 기주가 공무원에 합격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요일 저녁 퇴근길은 기주가 가장 기다리던 요일 중 하나였다. 그와 함께 유일하게 대화를 하며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으니까. 그가 일주일 하루만이라도 검은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날이었으니까. 그 주 수요일은 예전에 자주 가던 신림 순대타운에 가기로 한 참이었다. 순대타운은 여전히 “순대타운”다웠다. 층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로 나뉘어 각자의 지역답게 순대를 팔았다. 우리의 목적은 위층에 있는 충청도였고 그 층으로 올라가는데도 다른 지역의 호객꾼을 이겨내야 했다. 우리는 충청도 층에 도착하고 나서도 각기 다른 충청도 테이블의 호객을 웃음으로 무마하며 가장 문과 가까운 가게의 테이블에 앉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이곳저곳 말소리가 섞여 어느 하나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다.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가 바깥으로 해소되지 못한채 공중에 떠 다니는 듯했다.


곧 반말로 친근감을 드러내는 아줌마가 라이터를 들고 와 가스와 연결된 브루스타에 불을 붙였고, 기름과 순대를 한 곳에 부었다. 그러곤 우리에게 ”커플? “ ”결혼은 했고? “ 다양한 질문들을 해댔다. 그 아주머니는 둘 중 누가 공무원에 붙었고, 누가 한 문제 차이로 계속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헌이와 기주는 그런 상황이 필요했다. 헌이를 배려하기 위해 주변사람들이 침묵을 지키는 게 아니라, 남들과 똑같이 무례한 질문을 받고, 남들과 같이 기분 나빠해야 하는 상황들. 기주는 이곳에 올 때마다 그 기분을 약간은 불쾌하면서도 즐겼다. 그것은 헌이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곧 헌이가 익은 순대를 기주의 그릇 앞에 내줬다. 기주는 그것을 아무 말 없이 받아먹었다. 헌이는 묵묵히 순대를 뒤집고 기주의 앞에 놓아줬다. 둘은 별다른 대화가 없었지만 입안에 느껴지는 순대의 따듯한 향으로 교감을 했다. 고소한 기름 냄새, 침이 고이는 쌈장의 짠맛, 얼음같이 차가운 회색 스테인리스 물병에서 나오는 하얀 생수, 그 누구도 둘을 신경 쓰지 않는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분위기, 삐걱대는 등받이 없는 불편한 의자의 조합이 그들을 더없이 평범하게 만들었다.


“누나”


“어”


헌이는 불러 놓고 침묵을 지켰다.


“뭔데 그래 말을 해봐”


기주는 그에게서 기다리고 있는 말이 있었다. 얼마 전 오래된 노트북에서 본 그 키워드가 그의 입에서 나올 순서라고 생각했다. 헌이는 불판 위에 순대를 쳐다보며, 주걱으로 휘저으며 말했다.


“누나 그 집 보증금… 그거 급한 돈이야?”


기주는 침묵했다. 예상했지만 심장이 누군가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듯 아팠다. 몸 내부의 무엇인가 쿵 내려앉은 듯 흔들렸다. 몸의 어딘가에 위치한 커다란 중심 추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느낌이 났다.


“왜? 그 돈 필요해?”

기주는 침묵을 지키다 말고 헌이에게 말했다. 헌이는 휘적거리던 주걱을 멈추고 기주를 바라봤다. 그리고 얕게 한숨을 쉬며, 눈을 바닥에 내리깔고 입을 뗐다.


“그게 아니라 누나… “


“왜, 그 돈이 왜 필요한 건데. 나 정말 궁금해서 그래”


“누나.. 그게 아니라”


헌이는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공인중개사가 찾아왔었어. 집 전세금 때문에… 지금 집주인이 행방불명이라고, 그 돈… 못 받고 나가야 될 수 도 있다고…”




상황은 기주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차라리 그 헌이가 보증금이 급하게 필요했더라면… 헌이가 갖가지 변명을 들며 공무원 시험을 그만둘 거고,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며 흥분되게 기주에게 설명하며 그 돈을 빌려달라고 했더라면


두 달 전, 기주가 출근을 했던, 그리고 헌이가 집에서 쉬어야 했던 어떤 수요일 이른 오후에, 공인중개사는 얕게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헌이는 처음에는 그 초인종을 무시했지만 종소리는 두세 번 반복됐다. 그 느낌이 마치 차라리 안에 사람이 없기를 확인하는듯한 낌새였다. 헌이는 결국 인터폰을 확인했고, 이 집을 계약할 때의 공인중개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어쩌면 좋아… 여기 근방에 피해자들이 많은 거 같더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네. 총각도 빨리 잘 알아봐봐. 뭐 도움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 주고.”


마치 공인중개사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말했다. 한편으로는 공인중개사는 이 전세사기에서 제외된, 제3자의 입장처럼 헌이에게 말했다. 집주인이 몇백 가구의 집주인이었고, 그것을 모두 전세로 돌려놨다고, 그런데 갑자기 그 집주인이 사라졌고 전세금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다고. 어떤 사유로 집은 경매로 넘어갈 거라고. 그것에 대해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헌이는 이 말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그것도 일주일에 하루뿐인 수요일에 그 말도 안 되는 소식을 들은 것을. 헌이는 그날부터 독서실에 나가지 않고 주변을 수소문했다. 집주인에게 100번 - 말 그대로 정말 100번을 - 넘게 전화를 걸었고, 인터넷 전세사기 카페에 가입하여 구제 방법을 알아보고, 여러 전세사기 관련 피해자들의 글과 뉴스들을 찾아봤다. 무턱대고 112 경찰에 전화해 이런 사태에 대해서 알고는 있는지 물어봤고, 다양한 전세사기 뉴스를 유튜브로 찾아봤다. 결국 그의 주변에는 전세사기, 예방 방법, 구제 방법 같은 주제 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일이 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헌이는 마지막 자존심을 굽히고 자기보다 먼저 경찰에 붙은, 과거 고시 생활을 같이 준비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잘 지내?. 아니 난 아직 시험 준비하고 있어. 그럼 잘 돼 가고 있지. 근데 그.. 다름이 아니라. 너 혹시 전세사기에 대해서 잘 알아? 그의 발버둥에도 그는 아무런 수확을 얻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수백 가구의 집주인이었던 단 한 사람이 사라져버렸고, 그 돈들은 모두 행방불명 되어버렸다. 그 돈은 누군가에게는 희망, 누군가에게는 미래, 누군가에게는 삶 그 자체였던 돈이었다. 이런 상황은 마치 전 세계 사람들의 빚을 한 명에게 몰아주고, 그 사람이 죽고 없어지면 빚도 사라지는 듯한, 어처구니없고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헌이는 두 달 동안, 공부도 하지 않은 채 그 보증금을 받기 위해 뛰어다녔다. 말 그대로 온 대한민국의 전세와 관련된 모든 곳을. 경찰, 은행, 법원, 시민단체까지… 기주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기는 순대 앞에서 그가 하는 말들을 듣고만 있었다. 곧 헌이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누나…내가 빨리 말 못 했어. 누나가 너무 힘들까 봐”




둘은 순대 타워에서 나와 또다시 한없이 걸었다. 둘 다 어느 정도 술을 먹었기에 약간은 휘청거리듯 걸었다. 그중에 헌이는 술을 잘 하지 못해 금세 취한듯했다. 둘은 취해서인지 발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두 사람은 그렇게 또다시 한없이 걸었다.


“우리 예전에 참 많이 걸었는데”


“맞아, 그땐 참 많이 걸었어”


헌이의 말에 기주가 답했다. 둘은 어느새 걷고 걸어 어느 한강대교에 도착했다. 무슨 대교인지도 모르는, 발 밑 어두운 한강과 그 어둠에 저항하려는 듯 수많은 라이트를 킨 차들이 가득한 “대교”였다.


“누나, 시원하다 그치”


헌이는 대교 난간에 겨드랑이를 끼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전혀 아래 어두운 한강이 무섭지 않다는 듯이.


“헌아 위험해. 너 너무 취했어”


가까이 다가간 헌이는 생각보다 더 취해있었다. 그의 거친 들숨과 날숨에서 알콜냄새가 났다.


“잠깐만, 지금 너무 시원해서 그래”


헌이는 잠깐 동안 한강을 바라보다, 옆쪽의 크나큰 건물들을 보았다. 모두 자기가 더 높다는 냥 커다랗게 세워진 서울의 밝은 빌딩들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예전에 많이 걸었잖아. 항상 한없이 걷다가 한강대교를 건널 때면 너무 시원하고 좋았어. 정신없이 지나다니는 차들과 끝없는 한강이 우리를 감춰주는 거 같았거든. 남들과 똑같아 보이게끔 말이야.”


헌이는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이 헌이가 가장 취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누나… 근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 내 뒤에는 여전히 차가 넘치고, 한강이 저렇게 크게 열렸는데.”


그리고 헌이는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난간에서 떨어져 나와 기주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자신의 두 손으로 기주의 두 손을 잡았다. 헌이의 손은 한여름에도 매우 차가웠다.


“누나 미안해. 보증금 줘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든 보증금 찾아서 돌려주려 했었는데 말이야. 어떻게든 주려고 했는데… 아마 못 줄 거 같아. 미안해 누나. 내가 미안해”


헌이는 아마도 울고 있었다. 콧물과 침을 흘려가며, 굳이 서러움을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바닥에 떨어질 때, 아마도 한강으로 몇 방울 떨어졌을 거라고 기주는 생각했다.


“헌아… 너 잘못이 아니야. 왜 네가 그래”


“내가 경찰이었으면. 정말 그랬으면 그 사람이 우리에게 그랬을까? 내가 당당하게 붙어서 경찰이었다면…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내가 보증금을 더해서 다른 곳을 갔더라면”


헌이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 때문에 기주가 고통받았다는 듯이.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기주는 그런 헌이를 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자기 자신의 표정은 항상 볼 수 없으니까, 타인에게 평가되어 나에게 돌아오니까, 자신의 표정은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기주는 아마도 자기 자신 또한 눈물과 콧물을 흘려가며 울고 있을 거라고 유추했다.




기주는 여전히 공무원의 삶답게 또다시 반복적인 일을 해야 했다. 남들의 사건 사고를 행정적으로 처리하여 공식화하는 일. 오늘도 1건의 고독사가 기주가 담당된 동네에서 발생했다. 넘어온 사고 파일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사망한 사람의 가족관계 증명서, 등본, 근로 계약서 등등 모두 10년 이상 되어 말소되기 직전의 오래전 자료들이었다. 그러곤 같이 첨부된 사진 파일을 켰다. 그곳에는 하얀 매트리스 위에 검게 그슬린듯한, 마치 무엇인가 검게 타 녹아내린 듯한 사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어떤 문자메세지 화면이 캡쳐된 파일 또한 함께 넘어왔다. 오래된 기종인 듯 예전 오래된 스마트폰의 문자 메세지 화면이었다. 그곳에는 광고 메세지가 떠 있었다.


“@@엑스, (광고) 최대 55%, 선물 대첩 특가”


여러 하트 이모티콘이 두서없이 붙은 그 광고메세지였다. 그리고 다음날, 어떤 사람은 그것에 답했다.


“ㅡㅡ”


대답 없는 기계에게 남긴 그 문자가, 고독사한 누군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문자였다. 그러곤 기주는 또다시 적어야 할 것이다. 어떤 날짜에, 어떤 시간에, 어떤 불분명한 사유로 그가 어떤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리고 아마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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