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헌 단편소설집_9
우리 동네 높은 곳에는, 커다란 초록빛 그물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우리 동네를 통째로 잡아 낚아 올리려는 듯, 거대하고 광활한 그물이었다. 그 존재는 우두커니 홀로 도시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연속적으로 나열된 얇은 철 기둥에 덩그러니 축 쳐져 힘 없이 걸린 모습으로 그 그물은 존재했다.
신기하게도 그 존재는 동네 어디에서든 보였다. 우리 집 주방 싱크대 위 조그마한 덧창문에서도, 쇠창살이 쳐진 학교 체육관 비품창고 창문에서도 , 녹이 낄 대로 낀 오래된 집 앞 슈퍼 후문 골목에서도. 그것은 정말 동네 어딜 가나 보였다. 마치 언제나 가족사진 오른쪽 끝자락에 걸쳐 있던 두꺼운 아빠의 손가락처럼.
그래서 나는 그놈을 보며 말했다
”내가 어디로 가든, 저 놈은 나를 따라오겠구나 “라고.
그래서 나는 그 초록그물을 우러러보아야 했다. 어렸을 적, 강렬한 햇빛을 적의 없이 손으로 가려가며 살펴봤던 그 존재.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매우 커다랗고 비대했으며 웅장했다. 때로는 누군가 저 높은 언덕을 거실 삼아 거대한 초록색 모기장을 설치한 듯했다. 누군가 하찮고 귀찮은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방어막을 저 언덕 너머에 무자비하게 펼쳐놓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찼을 때, 나는 그것을 “골프장”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초록빛 그물망을 보며 자랐다. 그만큼 (그러니까 내가 그 골프장을 쳐다본 만큼) 그 골프장도 나를 쳐다봤으리라. 내가 학교 담벼락을 넘어 싸구려벽화가 그려진 분식점을 갈 때도, 육교 밑 허름하고 오래된 돌담에서 담배를 피울 때도, 시장 뒷골목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와 달콤하고 쓰고 짭짜름한 첫 키스를 할 때도, 그 초록 그물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겠지.
내가 어느 정도 키가 크고 나서는 혹시 나만 그 초록빛 그물을 의식하나 싶어, 주변에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저 골프장의 이름은 뭔지, 실제로 쓰긴 하는 건지, 이렇게 낮은 빌라촌들 사이에 저게 언제부터 존재하고 있던 건지. 나의 질문에 엄마는 하던 요리를 계속했고, 아빠는 보던 유튜브 숏츠를 계속 봤고, 동네 친구들은 모두 각자 집중하던 pc방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바빴다.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골프장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베란다 창문에 붙어있던 스티커 취급을 하는 듯했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 악의 없이 창문에 붙여놨을 그 스티커.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햇빛을 받아 색감을 잃어버린 얇디얇은 스티커처럼 그 초록빛 그물망은 한없이 무해하고 잊힌 존재처럼 취급당했다.
오직 나의 물음에 반응한 것은 형뿐이었다. 형은 가끔 주말이 되면 집에 들어왔다. 들어와서 신발을 벗고, 좁은 주방 옆 (이제는 내 것이 되어버린) 형 방에서 곤히 누워 잠만 잤다. 한 번은 평일임에도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잠들고 있는 형이 보였다. 나는 하교 후 교복을 채 벗기도 전에 그의 튀어나와 있는 왼쪽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형, 저 골프장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아?”
형은 고개를 돌려 반쯤 뜬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이를 대하는 표정이었다. 형은 다시 돌아 누우며 말했다. 무슨 골프장.
“왜 저기 동네에 튀어나와 있는 골프장”
“그건 잘 모르겠는데.”
형은 나 때문에 잠이 깼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서 수돗물을 떠서 마셨다. 그러곤 나의 방이 왜 이렇게 더러운지, 싱크대 안에 방치된 설거지 그릇들은 왜 이렇게 짜고 시큼한 냄새가 날 때까지 쌓아두고 있는지 , 그러곤 마지막으로 엄마는 어디 갔는지 물었다.
“엄마는 일 나갔어”
엄마는 얼마 전 아빠가 정년 퇴직한 이후, 가정주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동사무소와 구청, 시청 같은 곳들을 들락날락거렸다. 엄마가 가정주부로 30년을 넘게 산 이후의 일이었다. 형은 좁은 주방 식탁의자에 앉아 다리 한쪽을 올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 형은 나보다 먼저 성인이 됐고, 자연스레 먼저 서울로 올라가 취업을 했다. 그리고 가끔씩 주말마다 본가로 내려오던 형은 마치 무엇인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 어딘가 변해 있었다. 마치 어디선가 강한 햇빛이 비추더라도 그림자 하나 생기지 않을 것처럼,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형은 이내 말을 이었다.
“저거 골프 연습장이야, 골프장이 아니라.”
너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을 거다 아마. 형은 그렇게 대충 말하고, 또 자기 방(이제는 내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또 내가 서있던 주방에서 거실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여전히, 앙상한 철골에 축 처져있는 그 초록빛 그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아는 나에게 말했다. 편지를 써달라고. 글씨가 빽뺵하게 욱여넣어져 약간 더 무거워진 편지를. 때로는 자신이 세상에서 지극히 혼자라고 느껴질 때 너의 편지를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나중에는 내가 행복할 때마다 너를 가끔씩 잊을 수 있도록.
“나는 편지 같은 거 잘 못써. 글씨도 아주 악필이야. 써도 아마 못 알아보고 하찮게 여길걸”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진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거야.”
그럼에도 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그러곤 나는 단순히 그녀의 연락에 ‘쉽게 답장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가 다양한 메신저를 보내오면 편지마냥 며칠 뒤에 답장하는 식이었다. 나의 연락을 그녀가 정말로 애타게 기다려온 편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말이다.
“서울의 날씨는 어때 준우야”
나는 그 연락을 받자마자 읽었지만, 별다른 답장을 하지 않은 채 며칠을 삭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면, 그녀의 연락은 저 아래에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굳이 찾아 방금 온 연락을 답장하듯 말했다.
“여기는 좀 추워”
그럼 그녀 또한 내 연락에 쉽사리 답장하지 않았다. 그 기간이 짧게는 이틀, 길게는 2주도 넘어갔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불편하고, 무례하고, 수동적으로 서로를 공유했다. 이번에는 내가 연락(편지)을 기다려야 하는 차례일 때, 나는 이따금식 그녀의 연락을 떠올리며 메신저 창에 들어가 보곤 했다. 그러면 그녀와의 채팅창은 역시나 저기 아래에, 여러 쓸데없는 광고 메세지들과 회사 업무 단톡방 같은 추잡한 연락들 밑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연락을 눌러봤을 때 절반의 확률로 1이 없어져 있었고, 또 남은 절반의 확률로 읽히지도 않은 채 메신저가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가 나의 편지를 읽었나 확인하고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곤 또다시 그녀와의 연락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서아는 내가 유일하게 연락하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유일하게 쉽게 잊어버리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서아는 어렸을 적부터 매우 소심한 아이였고, 나 또한 그랬다. 내가 집안에 어떤 다양한 것들을 피하고 싶어 공원의 그네를 타고 있으면, 어느샌가 서아는 내 옆 그네에 앉아 있었다. 서아는 일정한 간격으로 끽끽 소리를 내며 나의 그네에 호응했다. 그녀는 반박자 느리게 (혹은 빠르게) 그네를 탔다. 서아와 내가 그네를 타고 있으면, 마치 세상이 일정한 리듬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끼익 끽 끼익 끽. 일정한 녹슨 소리가 스타카토처럼 온 동네에 퍼져나갔다.
서아는 그때부터 내 옆에서 존재했다. 오래된 경기도 변두리 동네라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같은 반을 몇 번 하기도 했는데, 반 안에서 우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문 앞에서 마주쳐도, 급식 줄을 설 때 바로 앞과 뒤에 서있더라도, 이동 수업 때 바로 옆자리에 앉더라도 우리는 서로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우리는 마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몰라야 한다는 존재처럼 서로를 대했다. 그리고 우리는 하교 후, 집 앞 오래된 빌라들이 다 같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놀이터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오랫동안 이해했던 존재인마냥 대화하곤 했다.
나는 놀이터에서 서아가 옆에 오면 나쁜 버릇처럼 반복하며 말했다. 언젠가 이 동네를 뜰 거라고. 그럼 서아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항상 확신이 넘치던 나를 주저하게 하는 순수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 안에 어딘가에서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답은 어딘가 안갯속을 헤매는 느낌이었고, 무엇인가 손에 탁 잡힐만하면 어느샌가 그것은 도망가버렸다. 그러고 손을 펼쳐보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왜 서울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그녀에게 말했다.
“골프장 보기 싫어서.”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저기 봐봐, 지금도 있잖아
나와 서아는 동시에 구석진 하늘을 쳐다봤다.
“넌 저게 신경 쓰여?”
서아는 진심으로 궁금한 말투로 물었다. 나는 갈색 페인트가 이곳저곳 벗겨진 벤치에 앉아 또 그 초록 그물을 바라봤다. 그 초록색 그물은 여전히 내 시야 구석에 튀어나와 나를(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아는 진심으로 내 말을 믿은 듯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식날, 처음으로 번호를 주고받았다. 이전까지는 서로 단톡방에서만 존재하는 사이였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 친구 추가를 하지 않아서 서로의 프로필이 “?” 로 뜨며 옅은 검은색으로 덮여 있던 상황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갈 때쯤, 서아는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 당시 동네 친구들이 준 다양한 색상의 졸업식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휴대폰 좀 줄래?”
서아는 오래된 내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그러고 전화를 끊고 나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서울로 가면 꼭 연락해”
그렇게 그녀와 나는 헤어졌다. 그녀의 품 안에는 어떠한 졸업식 꽃다발도 없었다. 그녀의 왼손에는 빨간색 뻣뻣한 커버가 달린 졸업장과 반 아이들이 돈을 걷어 공동으로 구매한 휴대폰 키링만이 왼쪽 손가락에 걸려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서울로 올라갔다. 항상 서아에게 말한 대로.
‘서울 일자리’
나는 아주 오래된 스마트폰으로 ‘서울 일자리’ 검색했다. 깨진 강화유리 필름을 통해 다양한 일자리들이 내 눈에 비췄다. 서울 근교 물류센터, 한의원 주말 근무 간호조무사, 서울 백화점 여성복 중간매니저… 범위를 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일자리가 수도 없이 나열됐다. 그중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은 물류, 상하차, 냉동창고같이 단순히 몸을 요하는 매우 한정적인 선택지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별다른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2월 말, 겨울바람이 아직은 강하게 휘날리고 있던 무렵에 나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래서 동네에 40분가량 떨어져 있는 버스터미널로 찾아가 말했다
“서울이요”
“서울 어디요?”
티켓 안내원은 말했다. 껌을 씹고 있는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나는 내 머리 위에 달린 터미널의 종착지를 살펴보았다. 남행, 포항, 부산, 울산, 강릉. 그리고 동서울. 나는 동서울에서 시선을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영등포, 영등포로 주세요”
영등포는 동서울 칸의 첫 번째에 있던 이름이었다. 나는 그때 잠시 마음속으로 서울의 크기를 가늠했다. ‘중간에 한강이 있고, 그 위가 강북, 그 아래가 강남. 그리고 내가 가는 영등포라는 지역은 서울의 동쪽에 있는 곳이구나’라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어째서 동서울이 영등포라고 적혀 있었는지 물어볼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뭐가 됐든 서울은 나에게 “잘못된 도시”로 내게 처음 다가왔다.
나는 서울로 올라가 다양한 일들을 했다. 오전 7시부터 2시까지는 장난감 공장에서 포장 업무를, 4시부터 밤 11시까지는 택배 상하차 오후반 작업을 했다. 그러곤 체력이 좀 남는 날은 새벽시간까지 대리운전을 했다. 그러면 서울의 하루는 금세 지나갔다. 몸 쓰는 일은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별달리 힘들건 없었다. 그냥 정해진 일들을 하면 됐다. 오전에는 노란 박스에 일정하게 정리된 장난감을 순서대로 넣고 라벨링을 하면 됐고, 오후에는 밀려오는 박스들을 빠레트에 이쁘게 올리기만 하면 됐다.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건 공장 내부에 있는 보이지 않는 먼지들이었다. 오후가 지나 눕기 시작한 햇빛이 공장 천장의 조그마한 창문을 뚫고 들어오면, 그제야 그 먼지들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치 우주에 있는 은하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던 그 먼지들은 셀 수도 없이 공중 햇빛에 둥둥 떠다녔다. 그것들은 다양한 박스에서 나온 가볍고 날카로운 먼지들이었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코를 풀면 항상 휴지에는 검은색 잔해가 서슴없이 묻어있었다. 마스크를 쓰기에는 공장 안은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뜨거웠고, 그래서 나는 그 검은 은하계 우주 잔해들을 코 뒤로 훌쩍 넘겨가며 일을 해야만 했다.
서울은 일할곳이 넘쳤지만, 자는 곳이 문제였다. 쉽사리 자고, 씻고, 발 뻗고 누울 곳이 변변치 않았다. 모텔 일주일 숙박이 찜질방 2~3주 가격과 비슷했고, 고시원 한 달 치와 대등했다. 그래서 나는 주로 찜질방 야간권을 끊으며 생활했다. 공장 근처의 모텔방을 반년 단위로 계약할까 했지만, 결국 찜질방에서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공장 2개와 가끔씩 뛰는 대리운전의 수익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마음 놓고 여유를 즐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시원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는 항상 어두워 보였다. 창문에 붙어있는 빛바랜 “고시원”이라는 글자도, 안에 여러 개로 쪼개져 있는 무심한 방과 그 방 밖에 나와 있는 여럿 삭은 슬리퍼들도, 그 안에 햇빛 하나 없이 형광등 밑에서 서로 얼굴조차 모르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두 다 한 없이 어두워 보였다. 차라리 24시간 불빛이 켜져 밝음을 강요하는 찜질방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큰 등산 가방을 등에 매고 다녔다. 전날 입었던 속옷과 내일 입을 속옷, 얇은 겉옷과 모자, 양말 같은 것들을 가방에 넣고 움직였다.
“너 공부하니?”
그런데 그 여자는 나의 가방을 보고 처음 그렇게 물었다. 그 여자는 오전 장난감 공장에서 선 분류작업을 담당하던 어린 여자였다. 몇 톤짜리 트럭에서 뒤죽박죽 정리된 장난감들이 포장이 잘되었는지, 하자는 없는지 육안으로 구분하고 체크하고, 보고하는 업무였다. 그 여자는 나이가 어림에도 일을 굉장히 꼼꼼하고 차분하게 잘해 공장 내에서 평판이 좋았던 여자였다.
그녀는 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너 갈 곳이 없는 거구나 맞지?”
나는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적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아무리 많아봐야 나보다 2~3살 많은 앳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그러자 그녀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는 오후 2시에 근무가 끝나고, 하나뿐인 시내로 나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나에게 말했다. 자신의 집에 놀러 오라고,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다고. 나는 고개를 돌려 등 뒤로 메고 있던 내 가방을 살짝 쳐다보았다. 부피가 크게 부풀었지만, 한없이 가벼운 가방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그녀의 집에서 살았다. 그녀의 집은 공단 변두리 들판에 무턱대고 홀로 튀어나와 있는 빌라였다. 그 빌라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주변의 평탄화 안된 흙밭과 그 앞에 한적한 이차선 아스팔트 도로와 수거를 기다리는 주황색 음식물 쓰레기통 3개밖에 없었다. 송전탑 너머 저 멀리 보이는 논에서는 항상 탄 냄새가 풍겨왔다. 마치 화장실 노란색 전구를 켠 듯 집 주변 하늘은 항상 탁하게 노랬다. 나는 그녀와 그런 곳에 살았다.
나는 그녀를 어느새 누나라고 불렀고, 그 누나는 나를 꼬맹이라고 불렀다. 누나는 나의 삶에서 고작 그 정도 짐밖에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자신의 집에 나를 위한 여러 물품들을 들여왔다. 시내 옷가게에서 여러 반팔티들과 셔츠, 반바지와 작업용 긴바지를 사 오곤 했다. 또 철물점에서 숟가락 2개를 더 사 왔고, 큰 두루마리 휴지와 남성 전용 스킨, 면도기, 남자 향수 같은 것들을 들여왔다. 그녀는 마치 내가 그런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처럼 대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 부분은 맞는 예측이자 합당한 대우였다.
“너 고향엔 뭐가 있어?”
그녀는 자기 전 항상 나에게 무엇인가 물었다. 정확히 내 키가 몇 센티인지, 머리는 언제부터 반곱슬이었는지, 피부는 원래부터 그렇게 하얬는지, 그리고 너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 곳인지. 그녀가 내가 살던 곳을 ‘고향’이라고 부르자 우리 동네가 매우 멀게끔 느껴졌다. 마치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곳인마냥. 그리고 그날따라 그녀는 나에게 집요하게 물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골프장이 있어.”
나는 이어서 말했다.
"초록색 그물망이 덮여있는”
“골프장? 너네 동네 잘 사는 동네야?”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덧니처럼 이리저리 일정하지 않게 툭 튀어나온 낮은 빌라들과, 그 속에서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초록색 그물망. 상상 속에서도 그 골프장은 여전히 크고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높았다. 그리고 여전히 한없이 홀로 서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그 초록색 그물을 자세히 생각하려고 하니, 나는 왠지 모르게 그것이 작아졌나 했지만 정확히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바깥 달빛이 비치고 있는 창문을 쳐다보았다. 그곳의 창문에서는 어떠한 초록색 그물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 그녀를 팔 안으로 품으며 말했다. 이제 잠에 들자고, 내일 일찍 공장에 나가야 하니까. 그렇게 나는 누나를 껴안고 어둠 속에서 골프장을 잊으려 노력하며 잠에 들곤 했다.
서아는 내게 말했다. 서울은 정말 추울 거 같다고.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있으면, 더 춥게 느껴질 거 같다고. 내가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지 5일이 지난 후의 답장이었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로 나는 서아에 대한 별다른 근황을 들을 수 없었다. 서아는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았고, 마땅히 “가족”이라고 불릴 사람도 없어 보였다. 같은 초중고를 나온 내 친구들 중 대다수가 그녀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쩌면 내가 서아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아와 연락을 하면서도, 그녀의 근황은 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서로 나름대로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했지만 아주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에 한정되어 있었다. 주로 그날의 날씨와, 식사, 잠과 같은 같은 시시한 대화들밖에 없었다. 그것조차 서로 읽고 답장하는 시간의 텀을 고려한다면, 아마 그녀의 근황을 듣게 되더라도 우리에게는 몇 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근황이 아니라 과거였고, 나는 평생 그녀의 근황을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나는 금요일날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고 했다. 서울은 매년 여름이 되면 한강 둔치에서 불꽃놀이를 했고 나는 그것을 주로 남들의 sns로 지켜보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누나는 그래서 그날 오전부터 매우 들떠 있었다. 마치 자식에게 처음 이유식을 먹일 때의 엄마처럼, 나에게 처음 불꽃놀이를 실제로 보여줄 생각에 신나 보였다. 나는 그것에 호응하기 위해 그날 오후는 상하차 센터에 나가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무단으로 출근을 하지 않은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관리반장에게 하루 빠지고 싶다고 말하면 될 일이지만 별달리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중간에 무단으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아 나 또한 그들 중 한 명으로 취급해 그러려니 할 것이라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그날 오후의 한강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마치 거대한 해류처럼 사람들의 움직임이 일정하게 일렁였다. 나와 누나는 이리저리 치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누나는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불꽃놀이를 봐야 하는 사람처럼 나의 옷을 붙잡고 인파를 뚫고 앞서갔다.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온몸이 다른 사람과 뒤 섞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섞임은 어느 한강다리에 다다르고 나서야 멈췄다. 아치형으로 된 흰색 철근이 도로와 인도를 나누고 있는 다리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없이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앞선 사람의 목덜미에서 시큼한 땀냄새가 느껴졌고 바짝 붙어 있는 뒷사람의 숨에서 맥주 냄새가 옅게 느껴졌다. 더불어 습기 가득한 바람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한강의 비릿한 물냄새와 수많은 인파가 뱉어대는 다양한 높낮이 말소리까지. 무엇인가 그날의 한강은 이것저것 여기저기 뒤섞여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냄새와 소리 속에서 한없이 대기한 이후에, 공중에 폭죽 하나가 터졌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폭죽이었다. 나와 누나를 포함한 모든 인파가 소리가 퍼진 곳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봤다. 그러곤 본격적인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검은 하늘에 주황색과 노란색, 빨간색 불빛들이 이쁘게 자수를 놓았다. 폭죽이 새로 터질 때마다 환호성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폭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한 개의 폭죽이 터질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강렬하게 터지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진동이었다. 연달아 폭죽이 터질 때는 그 진동이 코와 눈을 넘어 뒤통수와 척추를 따라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나는 잠깐 서아가 생각이 났다.
왜 하필 그 순간에 서아가 나를 스쳐 지나갔을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서아 또한 이 불꽃놀이를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인파의 중심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다. 홀로 어두운 집안에서, 방에 불을 끄고 휴대폰의 생중계 화면으로 이 장면을 보고 있다. 그러자 나는 왜인지 모르게 아주 잠깐 외로워졌다. 그 외로움은 폭죽이 더 크게, 더 큰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올 때마다 더욱더 내 몸에 퍼져갔다. 그것은 내가 손 쓸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마치 내 가슴 한편에 어두운 공백이, 폭죽으로 인해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무엇인가 펑 터지면, 주변이 확 밝아지며 나의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공백이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곤 또다시 금세 모든 것이 어두워지고, 다시 무엇인가 터져 내가 공허해지기를 반복했다.
폭죽은 그렇게 나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계속 터졌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사람들의 환호성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적어도 수만 명 정도 되는 인파의 깊은 주름 속에서,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서아 생각을 해야만 했다.
공장 사장님은 나를 꽤나 이뻐했다. 아주 어린놈이 벌써부터 일을 할 줄 안다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들이 너처럼만 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다양한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나를 이뻐했다. 그래서 사장님은 주말마다 거하게 술자리를 하고 나면, 나를 불러 운전을 시키게 했다. 마치 ‘너는 믿을 수 있는 놈이야’라고 당당하게 몸짓으로 말하듯이. 주말 밤마다 사장님의 연락을 받고 나갈 준비를 하는 나를 보며, 누나는 “그 개새끼”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그것이 나에게 하는 말인지 반장님에게 하는 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단순히 그가 나를 이뻐해 준 만큼, 내가 보답을 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주말에 새벽부터 사장님을 따라 운전을 해야만 했다. 사장님은 하나뿐인 거래처와 약속이 있다고, 나에게 아침부터 운전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라고 하자, 그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무엇인가를 검색했다. 그러곤 내 눈앞에 자신의 폰을 들이밀었다. 그린 cc , 경기도 외곽 변두리에 걸쳐있는 골프장이었다. 내일 이곳에 갈 거라고, 내일 아침 7시에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사장님을 태우고 운전을 했다. 그 골프장은 높은 고도에 있었다. 차의 엑셀의 약간의 뻑뻑함이 느껴질 정도로 구불구불한 길을 몇 번이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곤 어느 정도 고지에 다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툭 하고 넓은 평평한 대지가 나왔다. 골프장 입구의 커다란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꿈의 그린, 골프장
나는 그 안내판을 따라 왼쪽으로 차를 돌렸다. 골프장의 지상 주차장에 도착하자, 사장님은 나를 보며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저기 카페에 잠깐 있으라고, 거래처와 오전 한 라운드만 치고 올 테니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내가 향한 골프장 2층 카페는 매우 높은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드넓은 유리창에는 골프장의 초록색 물결이 반짝거리며 비췄다. 이쁘게 정렬된 밝은 색 잔디와 어두운 잔디들의 조화가 그러데이션을 이루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더불어 중간에 보이는 큰 호수 같은 물 웅덩이와 넓게 뻗어진 나무들은 누가 세심히 그린 것 마냥 조화로웠다.
그곳은 보이는 것보다도 더 크고, 넓고, 편안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나는 그곳을 보러 이곳까지 힘들게 온 사람인 마냥 그 경치를 보며 단순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커피 두 잔과 간단한 빵을 먹었다. 그러곤 계속 경치를 구경했다.
‘저런 게 진짜 골프장이라는 거구나’
나는 그것을 속으로만 말했다.
사장님의 예측과는 다르게, 거래처와의 ‘한 라운드’는 훨씬 더 늦게 끝났다. 나는 그때까지 카페에서 있다가, 거래처의 저녁식사 자리까지 함께 했다. 골프장 주변 국도에 위치한 복지리 가게였다. 나는 복 국의 뽀얀 국물을 먹으며 사장님을 지속적으로 눈으로 살폈다. 사장님이 너무 술에 취해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는지, 혹은 거래처 앞에서 볼품없이 쓰러지지는 않는지.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이상하게 오늘 봤던 그린 CC 골프장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이 한동안 내 기억 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식사자리는 거래처와 사장님이 완전히 곯아떨어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시계를 확인하니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완전히 드러누워버린 사장님을 어깨에 메고 보조석에 앉힌 뒤 안전벨트를 체결했다. 나는 내비게이션에 사장님의 집을 찍고 곧바로 출발했다. 사장님의 차는 참으로 크고 부드러웠다. 엑셀은 밟는 데로 유려하게 앞을 치고 나갔다. 골프장을 내려가는 구부정한 길들이 마치 부드러운 파도를 타듯 즐거울 정도였다. 나는 어느새 그 드라이빙을 즐기고 있었다. 누나가 집에서 나를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고 그에 따라 자동차의 엑셀은 더욱더 무겁고 뻐근해져 갔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사장을 바라봤다. 사장은 폭탄주에 곯아떨어져 조그만 덜컹거리면 머리가 분리되어 앞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자고 있는 사장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엑셀을 더 밟아버렸다. 비싸고 예민한 그 차는 한 템포 빠르게 반응하며 앞으로 치고 나아갔다.
전조등에 비친 노란색 표지판에는 곧 앞에 있는 도로가 커브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내리막 커브길이었다. 나는 원래대로라면 엑셀을 놓아야 하지만, 묵직하게 밀렸던 그 발을 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핸들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곤 커브길에 따라 액셀을 밟으며 핸들을 돌렸다. 차는 비싼 세단 답지 않게 성난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두 손에 있는 핸들을 더욱 꽉 잡게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텅 소리와 함께 차량이 미끄러졌다.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량은 끼익 소리와 함께 커브길 중간에 서 버렸다. 약간 빨라진 심장소리가 내 귀에 두근거렸다. 나는 옆에 앉은 반장님을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고, 단순히 왼쪽 앞으로 고꾸라져 있던 머리가 오른쪽으로 고꾸라졌을 뿐이었다. 나는 잠시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확인했다. 그 속엔 어둠을 향해 직선으로 뿜어대는 자동차 전조등과 반사된 빨간색 브레이크등만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곤 조심히 엑셀을 또다시 밟았다. 그러자 바퀴가 헛돌더니 무엇인가 밟은 듯 물컹거렸다. 그것이 앞바퀴가 지나고 뒷바퀴에도 느껴졌을 때, 나는 또다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사장님의 머리가 앞뒤로 덜컹거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깨지 않았다. 다시 쳐다본 백미러와 사이드에는 어둠밖에 없었다. 나는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습기가 가득 섞인 풀냄새와 시원한 밤공기가 순간 차 안에 후욱 밀치고 들어왔다. 창문 밖은 덜덜 떨리는 고급세단의 엔진소리와 풀밭에서 나는 일정한 벌레 소리만이 존재했다. 사장님은 여전히 술에 절여진 채 고개를 떨구고 자고 있었다. 나는 알콜냄새를 내뿜으며 곤히 자고 있는 반장을 보고, 또다시 사이드미러를 보고 백미러를 쳐다봤다. 그러자 백미러 왼쪽 구석에 시뻘게진 내 얼굴이 보였다. 나는 복지리 가게에서 사장님이 주신 맥주와 거래처 사장이 준 고량주를 5잔 넘게 마신 상황이었다. 백미러 속에는 시뻘게진 내 얼굴과, 짙은 어둠과 차 뒷면을 비추는 직선의 자동차 전조등 빛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빛 속에는 칠흑 같은 어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창문을 닫았다. 그러곤 액셀을 밟고 그 커브길을 빠져나왔다. 아주 살짝 바깥 바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여전히 엑셀은 묵직했고, 핸들은 부드러웠으며, 반장님은 여전히 고개를 떨구며 자고 있었다.
나는 누나에게 말했다. 잠시 고향에 내려가 있을 거라고, 다시 올라올 때 연락을 하겠다고. 누나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눈빛은 그녀가 나를 처음 쳐다봤을 때의 그 눈빛이었다.
“너 다시는 안 돌아올 거 같아.”
누나는 말했다. 그러고는 이어서 말했다. 그냥 느낌이 그래. 너 안 돌아올 거 같아.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그 집을 떠났다. 그것이 누나와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가 잠시 일을 쉬겠다고 하자 사장님은 매우 아쉽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퇴직금 및 밀린 월급 등 여러 정산해야 할 것들이 존재했지만 나는 굳이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사장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늘어난 여러 옷들과 향수, 로션 따위의 생활 용품 같은 것들은 모두 누나의 집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 그렇기에 나의 짐은 별달리 많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래 가방에 들어있었던 얇은 속옷과 모자, 양말들만 챙겼다. 나는 부피는 크지만 가벼운 가방과 함께 버스 터미널에서 앉아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동네는 그대로였다. 오래된 빌라촌, 얇은 골목들, 무수히 나열된 불법주차된 차들까지. 내가 떠났을 때와 동일했다. 오래된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치고 집에 들어가자 낯익은 냄새가 났다. 식은 음식냄새와 오랫동안 집안에 스며든 세월의 냄새가 오묘하게 뒤섞여버린, 그런 냄새. 역시나 여전히 집안은 그늘져 있었고 고요했다. 나는 가방을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모자를 벗고 잠시 둘러보았다. 이전과 똑같은 모습의 집이었다. 오래된 티비, 물이 샌 자국이 있는 벽걸이 에어컨, 오래된 창문의 먼지와 그것을 비추는 바닥의 햇빛. 모든 게 여전했다. 그러곤 거실 창문을 보았을 때, 여전히 초록색 그물을 뒤집어쓴 골프장이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그 골프장을 향해 걸었다. 초행길이었지만 그 골프장은 동네 어디에든 보이는 곳에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그곳을 향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곳을 바라보고 걷기만 하면 됐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는 30분도 안 돼서 그 골프장에 도착했다. 초행길을 걸은 것 치고는 너무나 가깝고 간단했으며, 허무할 정도로 쉬운 거리였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렇게 가까이 다가가본 적이 없었다. 멀리서 지켜볼 뿐, 왠지 가까이 다가가면 멀리 가버릴 것 같아서. 실제로 그것을 본다면 왠지 안될 것만 같아서. 주변에 노는 형들이 많고 가면 불량배들과 동네 깡패들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해서. 그래서 가까이 가지 않았었다. 가까이서 본 그 골프장은 형 말대로 정말 골프 연습장이었다. 고작 2층으로 구성된, 일방적으로 공을 치고 앞으로 멀리 날아가는 것을 지켜봐야 되는 연습장. 그곳은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도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아 보였다. 관리실로 보이는 1층은 불이 꺼져있었고 초록색 그물망은 이곳저곳 구멍이 뚫려 황망해 보였다. 드넓은 주차장에는 여기저기 나무 목판과 철근 같은 자재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널려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 갓길에는 오래된 라면봉지와 먼지를 뒤집어쓴 부탄가스 같은 것들이 덧 없이 쌓여있었다. 저 멀리서 바람이 불어오자 오래된 창고 냄새가 풍겼다. 그 골프장은 너무 작고 초라하고 한편으로는 외로워 보였다. 내가 이전에 우러러봐야 했던 그 존재가 맞나 의심해야 할 정도였다.
나는 잠시 그 앞에서, 그만 또 서아 생각을 해버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온 서아의 연락에 한 달이 넘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이제 곧 내가 편지를 보내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내 자신도 그녀에게 답장을 해야 할지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메세지를 방치했다. 곧이곧대로, 마치 정말로 편지가 나에게 전달되다가 없어져 버린 것처럼.
아니, 사실은 내가 답장을 받아야 하는 타이밍이었던가?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모든 게 확실치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메신저를 뒤적거릴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앞으로 확실한 건 하나뿐이었다. 서아와 연락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럼으로써 이제는 그녀의 연락을 영영 받을 수 없다는 것. 푸른 하늘, 왼쪽 빌라 끝자락에 걸려 있던 흐릿한 달이 어느새 오른쪽 초록색 골프망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곧 있으면 노을이 질 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골프 연습장 바깥에 홀로 서있었고, 그러곤 또다시 서아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