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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Jun 05. 2023

그들이 온다

 카톡!

넋을 놓고 있다 갑자기 울리는 알림에 핸드폰으로 시선이 간다. 

「마이쮸~~ 어제 얼굴이 안 좋아 보이던데..... 걱정돼서요...... 」

유난히 ‘ ~ ’ 과 ‘ ... ’을 많이 쓴 걸보니 나무언니다. 

몇 번을 썼다 지웠을 언니의 조심스러운 마음이 여백 속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네, 바닥을 기는 중이예요. 내 안에 조금 정리가 되면, 얘기 들어 달라 손 내밀게요.」

단톡방에 짧게나마 상태 알림을 한다.

무슨 일이야? 말해줄 수 있어? 만날까? 누구도 묻지 않는다.

「마이쮸 힘들었구나. 토닥토닥」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리다.」

「나는 늘 마이쮸 편이에요!」 

잠시 뒤 하나둘 올라오는 그들의 메시지.

하아;;; 이 사람들, 정말.     


 그들과 함께 마이쮸라는 별명으로 14년째 사는 중이다. 마이쮸는 딸에게 옛이야기 속 곶감 같은 간식이었다. 우엥~ 울다가도 마이쮸 사러 갈까? 하면 뚝 그치는, 그런 존재. 아이를 대안학교에 입학시키며 어른들은 별명을 하나씩 지어야 했는데-학교 안에서 부모, 교사들은 별명을 사용하고 아이들과 평어로 대화한다― 그때 문득 생각나서 지은 별명이 마이쮸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나를 좋아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제저녁, 스치듯 인사를 나누고도 단번에 나의 불편함을 알아봐 준 그들은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친구, 선배, 후배의 엄마들이다. 아이들이 하나둘 졸업할 무렵 우리 가족을 포함한 다섯 가정이 단 두 동으로 지어진 규모가 작은 아파트에 하나 둘 모여들어 살고 있다. 의정부에서도 살짝 외져 있는 우리 아파트는 바로 뒤에 제법 큰 산이 있어 사계절 내내 뒷배란다 전망이 좋고 공기도 꽤 좋다(는 건 내 생각). 앞으로는 부용천이 흘러 배산임수가 될 뻔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사이에 대형병원이 있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경기 북부권역 응급의료센터를 느릿느릿 걸어도 5분(장례식장은 3분, 굳이)이면 간다. 나는 703호, 앞머리를 살짝 올려주면 왜 그런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바로 이해가 가는 마빡 언니는 1503호, 마빡 언니네 바로 위층 1603호는 우리들 전담 상담사 소담 언니네, 나무가 가지 뻗듯 늘 안테나를 뻗치고 주변의 힘듦을 제일 먼저 알아채는 나무 언니는 1002호, 살아있는 만화캐릭터, 보기만 해도 웃음 나는 라바 언니는 502호에 산다.      

「진달래 폈을 거 같은데 뒷산 가실 분?」 

「비도 오는데 전 부쳐서 딱 한 잔씩만 할까요?」

「밤을 잔뜩 사 왔어요, 껍질 까서 다섯 등분합니다. 7시, 놀이터로!」

「소담 언니~ 생일 밥 먹읍시다.」

다섯 명이 모인 단톡방은 대충 이런 일로 북적인다. 통을 들고 가 방금 깨를 뿌려 마무리한 반찬을 덜어오고, 가볍게 한잔하자는 집에 갈 땐 각자의 집 반찬이나 과일, 아껴둔 간식을 들고 가 결국 거하게 차려 먹게 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나 두 시간을 훌쩍 넘게 수다를 떨고도 구체적인 이야기는 카톡으로 이어서 하자며 올라오기도 한다. 아이를 세상과 잘 부비는 사람으로 키워보자며 대안교육을 시작했는데 덕분에 우리는 언제든 부빌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에게 든든한 동반자로 살고 있다.      


 ‘페미꿍꿍’, 최근 언니들과 만든 페미니즘 공부 모임이다. 미리 정해놓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난 뒤 서로가 만나게 되는 돌부리를 들고 와 2주에 한 번씩 나눔하고 있다. 대부분 꺼내 놓는 돌부리들은 ‘내 것이 네 것’인 경우가 많은데, 그걸 확인할 때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괜한 연대감이 생겨 조용히 위로받기도 하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누군가의 돌부리를 바라보며 그동안 내가 쉬이 지나쳐 버린 수많은 돌부리의 존재에 아득해지기도 한다. 매번 세 시간은 넘기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여성인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안의 가부장제를, 정상가족이라는 타이틀의 허울과 그것을 힘겹게 벗어던진 언니가 찾게 된 꿀 같은 자유를, 고전 속 춘향이를 통해 돌아보게 된 혼인 관계에서 나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영화 속 겨털 그득한 그녀의 겨드랑이를, 그 겨드랑이를 애무하는 또 한 명의 여성을, 갱년기를 만나고 점점 눈에 띄게 기능이 떨어지고 아파지는 우리의 몸을, 그렇게 맞이하게 되는 우리의 노년을 이야기하기에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알람처럼 라바 언니가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하고 그제야 서둘러 다음번 모임을 기약한다. 

 지난주 모임에서는 소담 언니의 제안으로 그동안 ‘페미꿍꿍’이 나에게 어땠는지를 나누었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이 보이고, 점점 더 커지는 민감성 때문에(덕분에?) 세상이 조금 더 까슬거리고 조금 더 갑갑하고 조금 더 깜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머리로 나누는 만큼 가슴으로 기대고 보듬는 시간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다음 주부터는 모임 후반부에 <5분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5분 동안 나를 건드리는 무엇이든 적어보고 낭독하는 시간이다. 아직 해 보지 않아 유용성은 미지수지만 글방 활동을 통해 꾸준히 ‘쓰다’로 ‘싸다’를 경험하고 있어 막연한 믿음이 생긴다. 각자가 싼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의 건강 상태가 보이고 우리는 그에 맞는 살핌을 줄 수 있겠지. 진달래 산행, 비 오는 날 부쳐 먹는 전, 다섯 등분한 밤 봉지, 잊지 않는 생일밥... 함께 하는 공부모임 그리고 글쓰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손과 마음과 시간을 쏟아 부비적거리는 중이다. 내게로 와닿는 서로의 체온에 안심하면서.     


 며칠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나 싶은 날,

「마이쮸, 별일 아니길...」

「기운 없어 보이던데 밥은 잘 먹나...」

나무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다.

언니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 얼른 통화버튼을 누른다. 

“괜찮아지고 있어요... 언제나 그렇듯 밥은 잘 먹어요.”

“다행이야, 긴 얘기는 천천히 해요. 무엇보다 잘 먹어야해.”

전화를 끊고 나니 핑 눈물이 돈다.


「똑똑! 마이쮸가 돌아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신 분 저희 집에서 한 잔 할까요?」

「오~~ 저요!」

「조금 늦어도 달려갑니다, 딱 기다려요.」

「집에 안주될 만한 거 좀 들고 갈게.」 

카톡!  

카톡!

카톡!

내 편이 온다. 

그들이 오고 있다,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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