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공동체 마을 잔디밭 앞 황토집, 제일 우측 방. 이곳에서 오늘로 여섯 번째 밤을 맞이한다. 둘째 날 까지는 너무 빨리 저버리는 해가 당황스러웠다. 저녁 7시도 안된시간에 이렇게나 칠흑같은 어둠이라니. 도시에서도 비슷한 시간에 해가 졌을텐데, 해가 지는 것보다 먼저 여기저기 조명이 켜지니 자기 전까지는 온전한 어둠을 마주할 일이 별로 없다. ‘해가 지면 어두워진다.’는 당연한 사실, 그걸 이나이 먹고서 새롭게 체감하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어둠 속에서 마음이 분주하다. 아궁이 불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씻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잘 준비도 하고, 이제 자 볼까 하고 누워도 시간은 아직 9시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뒤적 뒤적 책을 골라 읽다보면 어느새 잠이 온다. 집에서는 대부분 새벽에 한 두번 정도 화장실 때문에 잠에서 깼다. 그런데 이 곳은 화장실이 멀어서 저녁에 의식적으로 물을 적게 마셨더니 며칠은 새벽까지 통잠을 잤다. 불편함이 가져다준 뜻밖의 편안함. 부디 이곳에 있는 내내 그랬으면 좋으련만.
치치치치치치, 추추추추추추, 초초초초초초.... 뭐지? 자다가 번쩍 눈이 번쩍 떠진다. 주변이 아직 어둡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옆에 누은 동료를 살핀다. 치사하게 이 새벽에 혼자 비닐에서 뭘 꺼내 먹고 있나? 아니다. 그는 어제 마신 막걸리와 잠에 취해 쌕쌕 소리까지 내며 자고 있다. 치치치치추추초초초... 또? 어둠 속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벽에서 뭔가 내려오며 소리를 내고 있다. 그것이 움직일때 마다, 추추추추추추... 방 안의 어둠보다 더 진한 색에 얇고 길쭉한.... 뭘까? 치치치치치치..... “지네, 지! 네! 다!” 놀라서 목소리가 째지고, 그 소리에 동료가 발딱 일어난다. “어디, 어디, 어디?” 방 불을 켜고 지네를 확인한다. 나는 재빨리 가방을 뒤져 지난 목공수업에서 만든 젓가락을 꺼낸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젓가락을 더 길게 만들걸’ 아주 잠깐의 후회. 그 사이 지네가 바닥 가까이 내려왔다. 까슬한 흙바닥보다 벽에 있을 때 더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다. 젓가락을 적당한 너비로 벌려 단단히 잡고 지네에게로 다가가, 다가가, 다가가, 휙! 지네가 몸을 꼬아 젓가락에 휘감긴다. 으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마당으로 나가 지네를 던진다. “내가 당신 생명을 살린거에요. 알죠? 평생 기억해줘야 해.” 동료에게 진하게 생색을 내며 다시 잠자리에 눕는다. ‘아, 조금 더 멀리 던졌어야 했나?’ 불안함반 아쉬움반, 다시 잠에 든다.
다음 날, 내 평생 두고두고 회자될 거사(?)를 아침 식사 시간에 장황하게 늘어 놓으려 했는데, 먼저 식당에 나온 동료가 이야기를 해버렸다. 에이, 김샌다. 실감나게 잘 할 자신이 있는데. 그래야 이 거사가 더 빛나는 건데. 이거 저작권법 위반인가? 아, 어제 일은 그에게도 거사였을 것이니 공동소유가 맞겠다. 그런데 동료보다 조금 더 당황스운 건, 공동체 식구들의 반응이다. 무려! 지네를! 캄캄한 새벽에! 동료가 물릴수도 있었는데! 그걸 내가 살린건데! 이 이야기를 듣고도 마치 ‘어제 저녁에 먹은 된장이 짜서 밤에 물이 많이 먹혔다.’ 정도의 반응이라니. 게다가 여기 오고 지네와의 두번째 만남인데. “걔네들이 하나 나오면 꼭 하나가 더 따라 나오더라고요.” 달님의 말. 아니, 이건 또 무슨 말씀. 그걸 이제야 말씀해 주시다니요! 부부처럼 한 마리 뒤에 한 마리가 따라온단다. 아... 부부였구나... 며칠 전 낮잠 자려고 누웠던 우리를 경악시킨 그 친구의 아내? 남편? 이었구나. 생각해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어제 지네를 발견한 자리와 지난 번 발견했던 자리가 거의 비슷했다. 내던져진 남편(아내)을 따라 그가 지나간 자리를 그대로 가다니... 지네 부부의 모습에서 큰 깨닭음을 얻는다. 그래, 남편만 바라보고 그대로 따라가면 똑같은 꼴을 못 면한다. 각자도생, 각자의 의지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자! 역시 이곳은 배움의 장, 변산공동체 학교! 그런데요 달님, 지네는 일부일처제가 맞나요? 혹시 다부제나 다처제라 몇 분 더 오셔야 한다면, 이왕이면 낮에 좀 와 주십사 당부드리고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