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니는 회사는 구성원의 행복을 목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구호로만 그치지 않으려 애쓰지요. ‘행복도 이익처럼 일로써 관리해야 한다’며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행복 수준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정말 스트레스 쌓일 정도로 신경 써서 설문에 응답하고 나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 이후엔 퇴근!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활동을 하는 시간입니다.
제가 행복을 느끼는 활동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책을 꺼냈습니다. 자전거 라이딩, 수원 부모님 댁 방문, 교외 산책이나 짧은 여행 등도 떠올려 봤지만, 출근길 다 읽지 못한 책 독서를 마치고 간단히 느낌을 남기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사실, 밖이 너무 더웠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카페만큼 행복한 주는 곳은 드뭅니다.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를 읽었습니다.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란 노란색 표지의, 이기주가 쓴 책입니다. 파스칼의 <팡세>, 몽테뉴의 <에세>나 <배꼽> 같은 느낌의 ‘이기주 생각 단선’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일상의 여러 순간 속에 작가가 느낀 단상이 조용하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얘기하듯 글로 전개됩니다. 어디서 들어봤을 법하고, 누구든 (적어도 저는 수도 없이) 생각해봤을 이야기들이 이기주의 언어로 정제되어 마음속을 파고듭니다.
<언어의 온도>를 비롯한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을 아껴 글을 쓴다’는 작가소개를 마주칩니다. 이 말이 딱 맞는 작가 같습니다.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들이 연달아 히트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기주 작가의 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는 마음에는 들었는데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낮다고 여겼다는 게 정확할 겁니다.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에서 나오는 탁월한 식견은 다소 부족한, ‘시류에 부합한 생각을 말랑말랑한 문체로 잘 편집해낸 책’ 정도로 생각했지요. 하지만 작품들을 찬찬히 다시 돌이켜보면 깊이가 없는 건 저였고, 그동안 제 자격지심이 그의 가치를 깎아냈던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고찰과 식견을 자랑할 수 있는 많은 말들을 늘어놓을 수 있었음에도 ‘할많하않’의 태도로, 갈고 다듬어 문장으로 옮겼음이 분명합니다. 이번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를 읽으며 이를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기주 작가의 책들. 대중적으로 잘 읽히면서도 생각을 담아낸, 말보다는 꾹꾹 눌러담은 글이 인상적입니다.
책의 제목부터 제게 많은 생각과 마음의 울림을 줬습니다. 아픈 어머니가 병원을 데려오는 아들에게 “시간을 뺏는다”며 미안해하는 일화를 다뤘는데요. 이를 통해 우리는 의미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특히 사랑은 내 시간을 상대에게 기꺼이 건네주는 것임을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그 사람이 내 일상에 침입해 시간을 훔쳐 달아나는 것처럼 여겨진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이라는 감정과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 9페이지 中)
먼저 이 책을 읽은 아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며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한 걸 굳이 곱씹어보지 않더라도, 저는 참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 사랑하는(또는 사랑한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인해 시간 뺏기는 것을 특히 아까워합니다. 고객에게는 내주지만 가족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잘 몰랐는데, 그렇답니다.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다가 “근무시간인데 무슨 일이냐”는 아들의 무뚝뚝하고 날카로운 대답에 펑펑 우셨을 정도니 정말 심한 편이지요. 덕분에 부모님과 전화 통화는 며느리가 도맡고 있습니다. 가끔 제게 볼일이 있는데도, 아내에게 전화해 얘기하고 있는 걸 옆에서 들을 때면 ‘내가 가족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구나’ 싶습니다.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지요. “조용한 카페에서 함께 책 읽고 싶다”는 아내의 말을 네댓 번을 듣고서야 마지못해, 그마저도 “집에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시간 아깝게…” 말하며 선심 쓰듯 움직입니다. 정신 차리려면 아직 먼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언급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일본 영화 속 대화 장면(91쪽). 저는 누구를 위해 시간을 쓰고 있는 것일까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 속 여유의 말이 떠오릅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장미를 위해 소비한 시간이야.”
이기주가 전하려는 메시지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지요. 저는 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건네주고 소비했던 시간을 왜 아까워하게 됐을까요? 정말 사랑하지 않거나, 그 감정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문득 ‘언제든 기꺼이 줄 수 있다고 머릿속에서만 여겼기에 실제는 아무 때도 주지 못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의 소리가 귀를 때립니다. 제대로 나를 돌아보고 실천에 옮겨야겠습니다. 스트레스 쌓이게 했던 행복 상태 점검도 설문도 이 같은 측면에서 큰 가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 속 4개의 큰 주제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만든다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비슷한 종류의 아픔을 겪었기에 ▲우린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므로에 담긴 짧은 글들이 사랑과 사람, 삶에 관해 명상에 잠기듯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람의 일생을 돌아보는 기분이랄까요? 순식간에 읽어내리는 짧은 독서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잠시 마음을 기울이면 이기주의 앤솔로지와 함께 삶의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 듭니다. 이것으로 책과 함께 한 금요일의 독서 후기를 마칩니다. ‘The’와 ‘More’가 함께 한 ‘더 행복데이’였습니다.
※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이, 회사 동기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왔습니다. 회사의 내일과 우리의 미래를 향한 걱정과 위로가 함께 한... 엄청 길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 ‘절정보다 아름다운 것’에 나오는 말처럼,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린 살아가는 동력을 얻습니다. 동기도 저도,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