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홍수 시대’, 진부하지만 꽤 적절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각종 뉴스와 보고서, 인사 소식, 찌라시 등 날라오는 새로운 소식들이 넘쳐납니다. 개중에는 아침을 열어주는 시, 음악 등 낭만적인 것들도 있습니다. 하나하나 의미를 담은 정보임이 분명한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 지나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출퇴근길 10분 동안이라도 책의 향기를 맡으라며 도서요약본을 전달해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경영·경제 트렌드나 자기계발 관련 서적들이 대부분이죠. 저는 몇 부분을 발췌해서 보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쭉 훑는 독서를 즐기는 편이지만, 맛보기 쇼핑하듯 잠깐 접하는 게 꽤 쏠쏠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전해준 것은 <넷플릭스 성장의 비결, 파워풀>. 아, 낯이 익습니다. 한때 기업문화 업무에 깊숙이 담갔던 몸이 책 제목을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과거 추억이 된 시절에 봤던 책이라 그런지, 그때 소비만 하고 소화시키진 않았던 것인지 몰라도 제대로 기억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래서, (웬만해선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꺼내 보지 않는 타입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와 <파워풀>을 펼쳐봤습니다.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를 다룬 <파워풀>. 빨간 색깔이 강한 자극을 줍니다.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 코로나 19시대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기업 넷플릭스. <파워풀>은 넷플릭스의 최고인재책임자(CTO, Chief Talent Officer)로 14년간 일했던 패티 맥코드가 쓴 서적으로, 성과 창출 및 성장의 밑바탕이 된 넷플릭스의 기업문화 특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재들이 가진 힘을 실제로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자유와 책임’을 그 핵심으로 꼽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기업이 ‘직원 참여’와 ‘권한 부여’를 통해 활기찬 문화를 만들고자 하면서, 여전히 하향식 의사결정의 지휘-통제 체계를 버리지 못하고 고수하는 상반된 움직임을 지적합니다. 직원 참여 자체를 회사의 목표로 관리하는 오류로 인해 진짜 목표인 고객 응대나 높은 업무성과 창출은 뒷전이 되고, 권한을 부여한다면서 실제로는 너무 많이 우려해 직원들을 겁쟁이로 만드는 점을 꼬집습니다. 회사의 일은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 자신이 힘을 가지고 출근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그들이 실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와 관련 넷플렉스는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관료주의적 정책과 절차를 모두 없앴습니다. 그리고 비즈니스를 혁신하는 접근법으로 넷플릭스만의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모든 직급의 직원들이 자유와 책임을 훈련받도록 코칭했습니다. 판단력, 소통능력, 임팩트, 호기심, 혁신, 용기, 열정, 정직, 이타성 등 탁월함의 기준을 제시하는 동시에, 일하는 방법을 가이드한 것입니다.
넷플릭스의 성장을 이끈 기업 철학이자,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문화의 핵심인 ‘자유와 책임’을 만들어낸 여덟 가지 방법이 <파워풀> 책을 통해 하나하나씩 전개됩니다.
넷플릭스 자율과 책임 관련 8가지 가이드. 하나씩 서술하기엔 너무 길어 제목만 따왔습니다.
이 책을 읽었던 2년 전 그때 기억이 났습니다. 넷플릭스는 그때도 엄청 주목받는 기업이었기에 관심을 두고 살펴보았습니다만, 솔직히 당시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모습과 특별한 차이는 없는 것 같았습니다. CEO를 비롯해 제가 속한 부서에서 ‘일 중심의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추진했던 일련의 방안들과 유사했었지요.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들이 좇는 조직문화 트렌드가 그만그만하구나’ 여기고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경영층이 직접 솔선수범하시니 우리도 금방 비슷해지겠거니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니 넷플릭스의 기업문화가 참 대단하단 걸 느끼게 됩니다.(결과 중심적인 판단입니다만)냉소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낸 반면, 우리는 ‘대기업 관료주의’란 의식의 파놉티콘 속에서 변화 흉내만 냈을 뿐이었습니다.
야심에 찬 변화시도는 HR 부서의 규율과 관리정책에, 기존 생활이 익숙했던 구성원들의 반발에 번번이 부딪혔습니다. 패티 맥코드가 지적한 것처럼 직원 참여를 수치화해 관리한다거나, 권한을 부여한 구성원 관리를 위한 추가적인 관리제도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수평적 문화조성을 추진하기 위한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가 강화되며, 결국 고객이 아닌 의사 결정자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는 새로운 방식과 문화를 만들어내는 건 정말 신의 ‘창조’처럼 어려운 영역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처음 그때는 과욕이었는지 몰라도, 그때부터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서, 조금씩 끈질기게 기업문화 변화를 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더 구성원 행복과 성과가 이어지는, 우리 회사만의 문화가 만들어져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극도로 솔직해져라’, ‘격렬하게 토론하라’ 주제는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극도의 솔직함을 실천하는 것은 관계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간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뒤에서 험담하는 일을 막습니다. 더불어 구성원 간의 이해와 존중의 문화가 구축됩니다. ‘예의’와 ‘배려’란 이름으로 감추거나 에둘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대단한 솜씨처럼 평가되지만, 진실이 전해지지 않으면 좋지 않은 관계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겉으론 웃지만 뒷담화가 난무하는 조직에서 누가 일에 집중할 수 있을까요? 솔직함의 방향이 일을 향하도록 동료에게 시작할 것, 그만할 것, 계속할 것 한 가지씩을 말하는 회의를 육성ㆍ정착시켰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요. 또 제 생각과 상통하는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극도의 솔직함을 습관화하라는 저자의 제안에 지지표를 던집니다.
이와 함께, 사업 결정과 관련 격렬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된 관습이나 집단주의를 이겨낸 새로운 발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담당자 한두 명이 이미 결정한 사안을 가져와 설명하고, 거기에 관심 없던 구성원들이 그저 듣고 끝나는 회의는 의미도 없고 시간도 아까울 뿐입니다. 야생성이 살아있는, 관심과 진심이 어우러진 토론이 필요합니다. (저도 그렇게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이 같은 활동의 내재화ㆍ생활화를 통해 넷플릭스 구성원의 탁월성은 더욱 강해졌고, 포지션에 대한 적합성 향상과 가치에 맞는 최고의 보상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구성원은 회사의 상황에 대해 '극도의 솔직함'으로 전해듣기 원합니다. (도서 87 page 中)
‘멋지게 헤어져라’는 부분도 주의 깊게 보게 됩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회사가 구성원의 장기간 고용보장을 장담해주지 않습니다. 인생을 책임져 주지도 못합니다. 신입사원 모집을 앞두고 CEO께서 우스갯소리를 겸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말라”고요. 다른 회사에서 이직 오퍼를 던질 정도의 능력 있고 매력적인 인재를 뽑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인재가 쭉 다니고 싶은 회사가 되도록 회사 차원의 노력을 계속해야겠지만요.
이처럼 회사와 구성원은 한 몸이 아닙니다. 좋은 파트너일수도 있지만, 자신의 재능과 열정이 회사의 비전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업 처지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관리자가 구성원에게 최선을 다하며 업무에 대한 수시 피드백을 해주되 혹 맞지 않으면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구성원 역시 개인적인 힘을 더 발휘할 방법을 찾는 것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시기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멋지게 헤어질 기회를 치게 되는 것이죠.
그동안 이 회사가 저를 무척 필요로 하고, 그 이상의 기여를 하며 근무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냉정히 돌아봐야겠습니다. 회사가 저를 의지하는 게 아니라 제가 회사를 기대고 있진 않은지, 회사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게 혹시 저는 아닌지 말입니다. (쓰다 보니 ‘멋지게 헤어진다는 것’. 참 멋진 말이면서도 무척 무서운 말일 수 있겠구나 생각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 점점 더 재택근무나 텔레워크와 같은 원격지 근무 및 공유 오피스, 자율좌석제 등을 통해 개인의 전문성에 기반한 비대면 형태의 일하는 형태가 확대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는 그 시발점이 됐고요. 넷플릭스가 보여준 자유와 책임 문화는 이와 같은 앞으로의 환경 가운데 기업의 성패, 구성원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경쟁요소가 되리라 생각 듭니다.
구성원의 내재된 힘을 실제로 발휘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 지속 가능 경영을 꿈꾸는 기업들이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