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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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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Mar 07. 2020

그때 우리 사랑은 컬러였을까

<먼 훗날 우리> 뒤바뀐 색깔을 되새기며

[영사기]는 '영화를 보고 사람을 기억하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개인적인 영화감상을 간단히 남길 거고요. 작품 속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이나, 작품을 통해 떠오른 사람에 대해 함께 적어보려 합니다.


- 이번 글은 지닌해 페이스북에 적었던 게시물을 편집, 브런치 작가를 신청할 때 첨부용으로 올린 것입니다. 감상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영화 구성에 대한 스포일러를 상당히 포함하고 있음을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나가기엔 애매하고 책만 읽기엔 뭔가 아쉬운 금요일 밤, 넷플릭스에서 영화 한 편을 선택했습니다.

<먼 훗날 우리>.

넷플릭스 영화 <먼 훗날 우리>. 이런 포스터도 있었군요!

명절 귀향길 기차에서 만난 진쳉과 샤오샤오. 같은 고향 친구를 만났다는 것에 무척이나 반가워합니다. 이들이 운명같은 연인이 될 것이란 건 너무 뻔하죠. 


20대 남녀, 기차에서의 운명적 만남! 제 나이 또래 분이라면 '비포 선 라이즈'가 떠오르실 겁니다. (다른 분은 모르겠고, 전 그냥 이 영화가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갔습니다.) 영화와 함께 아련한 20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비포 선 라이즈'(1995년작). 기차에서 만난 사랑, 이 영화를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때도 지나면, 또는 위기가 닥치면 식는 법. 지독히 계속되는 가난은 그들을 지치게 합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어떻게든 떨쳐내려는 진쳉과, 어려운 환경보단 둘 사이 관계를 우선시하는 샤오샤오. 커져버린 갈등 속에 결국 둘은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번엔 비행기 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개발한 게임이 대박을 쳐 일등석에 앉은 진쳉과, 여전히 가난한 듯 이코노미석에 자리한 샤오샤오로 말이죠.


자칫 불륜물이 될 수 있었던 이 영화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둘의 사랑과 이별 과정에 얽힌 감정들을 담담하면서도 때론 격정적이게 보여주곤 다시 헤어지는 전개를 택합니다.


보통 현재를 컬러로, 과거를 흑백으로 나타내는 기법을 많이 쓰는데 이 영화 속에서는 둘이 다시 만난 현재의 모습이 흑백입니다. 그렇게 또 헤어지며 엔딩 크레딧이 시작될 때 우울감이 마음에 퍼지네요!!


 "I miss you."
 "나도 보고 싶었어."
 "아니, 내가 널 놓쳤다고."

놓친 사랑 이야기. 만화 같은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제 타입의 영화는 아닙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흑백의 편집은 아련함과 우울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는 그 부분부터 새롭게 시작입니다.


진쳉이 만든 게임 속 캐릭터는 이언과 캘리. 이언이 캘리를 만나기 위해 모험(?)을 이어가는 게임이죠. 사실 영화 속 주인공 둘의 과거 대 속에 이미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이언이 캘리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영원히 무채색일거야"


아쉽긴 하지만 서로를 격려하고서 헤어진 그 마지막 순간 영화는 다시 컬러를 찾습니다. 과거는 흑백으로, 현재는 원색으로요. 상처와 원망이 가득한 상태에서의 재회 그 자체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지만, 진정 사랑했던 시간 속의 향기를 되돌아보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걸까요? 그래야 비로소 이언이 캘리를 찾은 것처럼 삶의 색깔도 돌아온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 헤어진 연인이 상대를 향해 메시지를 전하는 쿠키 영상들이 이어지면서, 또 (영화 속에서는 늘 무뚝뚝했던) 자식을 향한 아버지 사랑이 영상을 통해 드러나면서 이 작품의 여운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 속 깊숙히 퍼져옵니다.

'영원히 사랑할 거였으면...' 헤어지며 끝나는 영화는 아무래도 좀 아쉽습니다.

그때에 가서야 '컬러 배치 참 잘했구나' 느꼈습니다. 이 우둔함 하곤~^^ 그 시절의 우리는 참 아름다웠다는 것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영화에 집중한 것일 뿐인데...
"쿠키영상들 보고 왜 그리 격하게 공감해? 이야기 전할 누군가가 생각나나 보지?"
아내의 기습적인 지적! 정신 차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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