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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Lim Mar 11. 2020

당신은 지영이가 아니었던가?

<82년생 김지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는 모든 지영이에게

요즘 코로나 19에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지만 최근 3~4년 간의 큰 Issue는 불평등한 세상, '기울어진 운동장'에 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영화 각색 작업에서부터 캐스팅, 배우들의 말, 영화 내용 및 평가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과거엔 말할 수 없었던 공공연한 비밀들을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됐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개봉시기에 이상하게 바빠서 영화관에 못가고 IPTV로 접하게 됐습니다. (당시 상영관도 적고 상영기간도 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17년 책으로 만났던 작품을 영화로 다시 접하는 기분이 묘합니다.  그해 초 소설을 읽고 회사의 한 포럼에 추천도서로 소개했는데, 영화로까지 상영될 줄은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제게 작품을 알아보는 대단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것저것 소개하다가 운 좋게 하나 걸렸을 뿐이란 것, 예... 저도 압니다!^^)


영화의 매력이 느껴지네요!

책 속의 이야기를 충실히 풀어내는 동시에, 여러 사람과 통로로서 배우 공유의 역할이 잘 담겼다는 생각입니다. 남편과 언니를 적절히 활용한 구성의 맛이 깔끔하고 깊이 있습니다. 동명의 원작 책으로 이어지는 에필로그도 좋고요~


독서할 땐 마음으로 상상했던 주인공 김지영의 삶이 화면을 타고 제 가슴으로 전해져옵니다. 김지영 뿐만 아니라 영화 속 인물들 한 명 한 명의 시각과 마음도 말입니다. 몇몇의 대사들은 감정을 울컥하게 만듭니다.


 "미숙아 그러지 마"
 "팥빵은 네가 좋아했지"
 "다 그렇지 뭐. 다들 조금씩 양보하면서 사는 거지"

 

작품을 접하며 제 곁에 있는 지영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책 <82년생 김지영>. 120만부 판매를 넘어섰다니 참 대단합니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쉽게 갈 수 있는(또 어머니가 그렇게도 원하셨던) 교대에 들어가지 않고 경영학과를 선택하더니만, 대수롭지 않아보이는 기업들의 입사에 줄줄이 낙방하더군요. 이름 모를 작은 업체 두어 곳에서 일하다 결혼해선 '두 아이의 엄마'가 직업이 됐습니다.

"교대 가란 부모님 말씀 안 들어 고생"이라던가 "오빠가 그렇게 이력서 봐주는데도 떨어진 건 노력 부족"이란 말을 무심코, 쉽게, 빗방울처럼 많이 해왔네요.


과거의 비뚤어졌던 인식들을 바로잡으려는 변화가 무척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이자 다수자가 아니면 '역차별'이라는 용어 자체를 꺼내놓기 어렵다는 걸 우린 인식해야 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는 능력 없으면서 무척 운 좋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어중이떠중이가 저일지 모릅니다(아마도 맞을 겁니다!). 불평등이 일반화된 사회에서의 수혜자가 나였고, 연이어 입사한 동생의 남자 동기들이었음을, 나아가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남성들임을 돌아보게 됩니다.

언젠가 제가 누군가를 채용하거나 평가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땐 동생의 모습을 한 번 떠올려봐야겠습니다.


지영이의 아픔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담담히 서술해 독자의 가슴을 물들였던 게 책이라면, 지영이의 병든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가족과 관객(텔레비전으로 봐놓고 '관객'이라는 게 조금 우습네요~^^)을 울게 하는 게 영화 <82년생 김지영>입니다. 참 괜찮은 작품이라 평합니다!!


이 시대의 여성에게, 또 여전히 불평등을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들에게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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