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걷는다.
지금 사는 지역은 눈을 치우질 않아서 차가 다니는 도로만 눈이 녹고 인도는 날이 풀려 저절로 녹을 때까지 눈이 있다. 작년 12월 말 즈음 내린 눈이 1월 첫째 주까지 녹지 않고 남아있었는데 어느덧 녹아내려 걷기가 수월해지니 다시 또 눈이 왔다.
퇴근길, 눈이 내려 미끄러운 길을 천천히 걸어온다. 내 걸음은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눈이 많아서 그런지 원래 느려서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눈이 내 터덜터덜 걷는 발을 가려줬다. 내 무거운 마음은 다 눈 때문이라고 나는 빙판길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이라고 그럴듯한 핑계로 가릴 수 있었다.
모자를 쓰고 한참 찬바람을 맞고 집에 돌아오면 발이 꽁꽁 얼어있다. 조금이라도 덜 미끄러운 눈이 쌓인 부분을 밟고 와서 그랬다. 집에 와서 언 발을 녹이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시끄러운 마음이 고요해진다.
겨울, 이 계절마다 내 머리와 마음속은 많은 생각들로 소란해진다. 그 소란스러움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내 말은 없어지고 아우성만 속에 남는 것이다. 그 소음을 잠재우기 위해서 나는 걷는다. 땅을 보며 혹은 물을 보며 혹은 하늘을 보며 걷는다.
6년 전 겨울, 그때도 정기검진 이후 많은 생각에 잠겨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추워서 모자를 쓰고 있었고 아파트에 들어와서 집까지 50m도 채 안 남은 거리에서 갑자기 퍽!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자동차 사고가 난 것인가? 생각하며 몇 발자국 더 걸어오다 보니 어지러웠다. 자동차 사고 소리라고 하기에는 가까이에서 소리가 났는데?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서있으며 이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그 순간 머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퍽! 소리의 정체는 내 키만 한 나무 가지에 내가 머리를 부딪혀서 난 것이었다. 패딩 점퍼에 붙은 모자를 써서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인지 생각에 너무 잠겨서 그런 것인지 내가 다치면서 만들어낸 소리였던 것이다.
집에 가서 보니 앞머리에 혹이 날만큼 꽤 쌔게 부딪혀서 얼얼하고 어지러웠다. 엄마는 뭔 생각을 하며 걷다가 이렇게 된 거냐면서 놀라움과 속상함에 얼음주머니를 가져왔다. 그 옆에 있던 아빠는 서둘러 옷을 입는 척을 하시더니 “나무 가지 안 부러졌나 확인해 보러 가야겠다. 너 머리 단단해서 나무 가지 부러졌을지도 몰라” 하며 장난을 쳤다. 어릴 때 차 사고로 내가 아빠 차 유리를 머리로 박았는데 내 머리는 멀쩡하고 아빠 차 앞유리만 깨진 전적을 말하면서 아마 나무가 무사하지 못할 거라 했다.
나는 소란스러운 엄마와 장난스러운 아빠를 뒤로하고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대고 내 방에 누워 또 생각했다.
“심장이 잘못되는 것보다 그걸 생각하다 먼저 죽겠군 생각을 그만해야겠다. “
다음날 학교 앞에 있는 신경과에 갔다.
“걷다가 나무에 부딪혔는데요 머리를 다쳤어요”
“아니 뛰다가도 아니고 왜 걷다가 부딪혔나요?”
“생각하다가 다치는지도 모르고 다쳤어요”
“아이고....”
다행히 피가 좀 고여있지만 며칠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어지럽고 아픈 것은 당연한데 그것도 차차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다치고 나서 바로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나는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 멍한 상태가 되어 “너는 슬프지 않냐?”는 물음에 “내가 며칠 전에 머리를 다쳐서 그런 듯 해”라는 대답을 하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다음에는 겨울마다 가는 정기검진에 다녀온 후에도 그렇게 생각에 잠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걸으면서 생각정리를 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지금 사는 곳에 나무는 다 키가 작아 내 키만 하니까 걷다가 가지에 다치지 않기 위해 잘 살피며 걷는다. 그렇게 나무에 머리를 쌔게 맞고 나니 정신을 차린 것이다.
“너 안 죽어 지금 안 죽어 별 일 아니야 괜찮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