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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혜영 Jan 27. 2024

그만합니다

연구

연구를 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원을 가야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대학원에 갔다. 대학생이 죄를 지면 간다는 대학원에 자진해서 들어갔다.

입학할 때 나는 지도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연구하고 싶어요 돈 욕심은 없어요”

대학원을 들어가서 보니 연구는 하고 싶다고 그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했다. 돈 욕심이란 걸 가져야 한다고 깨달았다.

연구를 하기 위해 돈을 벌러 갔다. 돈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받는 질문은 꿈이 뭐냐? 였다. 나는 꿈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대신 월급은 얼마 받을 수 있냐고 되물었다. 나는 월급을 받아야 연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꿈을 설명하기에는 꿈일 뿐이었다. 돈이 있어야 연구를 할 수 있다고 2년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으니까...


월급 받는 곳에서 내게 사업단에 들어가라 말했다.

나는 이유는 말하지 않고 싫다고 답했다.

월급 주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집안이 잘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20대 여자애가 겁없이 싫다고 말하면 안된다.“


이 말을 듣고 나서 고민하며 며칠을 보내다 결국 월급 받는 일을 그만두었다. 2개월 만에 7kg이 빠졌고 알 수 없는 이유로 40도의 고열과 복통 때문에 응급실 신세를 진 것이 3개월째 되던 시점이었다. 응급의학과 당직의는 급격한 체중 감량과 높은 염증 수치에 암을 의심했지만 다행히 아니었다.

집안이 잘 사는 것 같지도 않다는 말은 매번 들어도 별 타격이 없던 단어인데 응급실 신세 이후 월급 받은 지 4개월에 접어들 무렵에는 이 말이 너무나 크게 다가와 나를 짓눌렀다. 연구는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집안도 잘 살아야 할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나는 4개월이 되는 시점에 월급 받는 곳을 나왔다.

당장 급여가 없는 신세는 백수이다. 나는 백수인 상태로 동네 부동산을 기웃거렸다.

임대아파트였다가 분양을 받은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잘 사는 것처럼 안 보여서 그런 말을 들었겠지 싶어서 집을 바꾸고 싶었다. 부동산을 아무리 가도 내가 가진 잔고로는 살 수 있는 집이 없었다.


청약 사이트를 들어갔다. 로또청약도 가진 자들의 버블파티였다. 나는 시골 한적한 어느 구석 이름 없는 건설사의 아파트 청약을 시도했다.

어쩌다 당첨..

4개월 다닌 월급 받는 곳에서 나온 뒤 5개월이 지난 시점에 나는 인감도장을 만들어 집을 계약했다.

계약금을 모아서 계약을 하고 5개월 후에 받아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연구와 돈 사이에서 서성거리며 마음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돈을 벌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력서를 넣고 약 한 달 후 나는 정말 돈을 벌러 갔다.

면접관이 물었다. 약 7개월 정도 쉬다가 갑자기 다시 일을 하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차마 집을 계약해서 잔금 치를 돈을 벌기 위해서라 답하지 못했다. 기억도 안나는 이유를 둘러댔다.


입사 후 돈 같지도 않은 돈을 번다는 말을 들으며 돈을 모았다. 도시락을 싸고 술자리도 안 가면서 건강상 저염식을 해야 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못하는 것이 오히려 도시락파에 대한 좋은 구실이 되었다. 그러나 회사에는 건강상의 이유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아픈걸 곧 죽어도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돼버렸으니까. 전 직장에서 말했다가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 한다는 소리를 듣고 결심했다. 회사는 돈 받고 일하는 곳이니까 아프다고 말하면 돈은 주고 일은 시키지 말라고 받아들이나 보다. 그럼 나는 아프지만 건강한 척해야겠다 다짐했다. 대신 “돈 모아서 집 살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 돈 모아서는 집 못 산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이미 계약했는데 왜 못 사”


청년희망적금이라 쓰고 청년절망적금이라 말하는 통장을 깨고 열심히 모은 돈을 합쳐 잔금을 치렀고 결국 등기를 냈다. 내 명의로 된 작은 달팽이 집이 생겼다. 그 돈 모아서 집 못 산다 말한 회사 사람들에게 집을 샀다 말했다.

“아 목표가 있어서 돈을 아꼈구나”


집안이 잘 살지도 않는데 라는 말을 듣고 집을 한 채 샀다. 이제 연구를 해볼 수 있으려나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었다. 연구는 돈으로도 할 수 없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아이가 순진하여... 너같이 가난한 집 아이는.... 부잣집 아이가 아니고서야”

“가난한 집 아인데 아버지가 부잣집 아이처럼 키웠나 보지”


아 연구비가 있어도 집을 사도 나는 재벌집 막내딸 정도는 되어야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나 보다 생각했다. 부잣집 아이가 아니라서 순진하게 세상 물정 모르고 연구하면 안되는 것이다.


내 이름 뒤에 붙어있는 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을 떼어 던졌다. 나는 더 이상 연구원이 아니다. 연구원 계약 해지일은 2024.1.29.

브런치 직업분류에 연구자는 있지만 내가 앞으로 할 일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그냥 회사원이다. 나는 연구하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연구원으로 마지막 송별식을 가졌다. 하나 챙겨 온 쿠키가 가방에서 산산이 부서져있었다. 아 슬픔에 짓눌려 부서진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인가 내 미래를 대변하는 것인가?


연구를 하지 못하는 시절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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